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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꼭 우리 아들 같아요"

일일호프 이야기

by 김룰루

야학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대학가에 있는 호프집을 빌려서 일일호프를 열었다. 일일호프의 목적은 수익 창출이다. 장사를 해서 얻은 수익은 야학 운영에 요긴하게 활용된다. 야학은 항상 돈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일일호프는 몇 안 되는 수익창출 방법 중 하나다. 야학을 위해 도와주신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

그 해에도 예년처럼 일일호프가 열렸다. 당시 학생들도 일일호프에 오셨는데 중등반 학생인 애은씨도 여기에 계셨다. 애은 씨는 늘 발랄하시고 학급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셨다. 이 날, 조금 취한 애은씨는 이 말씀을 하면서 날 안아주셨다.


"국어 선생님은 꼭 우리 아들 같아요"


애은씨는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 그러다 보니 국어 수업을 따라오는 데 버거워하신다. 글이 읽는 게 어렵다면 다른 과목도 소화가 힘들 것이 뻔했다.


"애은씨, 38쪽 읽어보실까요?"

"네... 친구... 들... 은... 아 친구들은. 서...로... 서로?"


애은씨는 글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은 후에 조합해서 단어의 뜻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시다.


"애은씨, 요즘 글 읽기 연습 꾸준히 하고 계세요? 매일매일 무엇이든 꾸준히 읽기로 약속하셨죠?"

"선생님, 나는 국민학교도 검정고시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하는 게 힘들어요."

"그래도 노력해보셔야죠. 오늘부터라도 읽기 연습 하루에 20분씩 해주세요. 신문이 됐든 동화책이 됐든 뭐든 좋습니다."

"아이고 나 모르겠다. 선생님 나 그냥 포기할래요."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그때는 대학생이라 나도 철이 없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지금도 철이 없긴 하다만)


"애은씨, 지금 공부 안 하시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뒤처질 거예요. 나중에는 다른 어머님들은 고등반에 다 가실 건데, 어머님만 저랑 단둘이 공부하겠어요. 그러길 바라진 않으시죠?"


내 말을 들은 애은씨의 눈빛이 흔들렸다. 살면서 누군가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본 적이 손에 꼽히는데, 이 날이 그중 하나다. 충격을 받으셨던 걸까. 아니면 자존심이 상하셨을까?

그 뒤로 애은 씨는 글 읽기 연습을 꾸준히 하셨다. 몇 달 지나자 제법 글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소리 내어 읽을 때도 제법 자연스럽게 잘 읽으셨다. 수업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다시 그날의 일일호프 이야기다.


"국어 선생님은 꼭 우리 아들 같아요"

"아 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못하거든. 꼭 바른말을 하는데, 선생님도 그래요 호호호"


아차. 그날 내가 드린 말씀이 마음속에 박히셨나 보다. 아들 같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는데, 내가 냉정한 말투를 가졌다는 소감이셨나 보다.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애은씨에게 미안함 마음이 컸다.

너무나 다행히도 애은 씨는 다음 검정고시에서 당당히 합격하셨다. 그렇게 원하시던 중학교 학력을 취득한 것이다. 애은씨가 합격하지 않았다면 나는 잔소리만 늘어놓고 독설을 퍼붓는 선생님으로 전락할 뻔했다. 합격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일일호프 날 예은 씨는 날 꼭 안아주신 걸 보면, 다행히도 마냥 내 말씀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으셨나 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저런 실례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대학생이어서 허용되었던 것이다. 어린애가 하는 말이니 어머님들도 귀엽게 받아들이셨겠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자식의 말을 들어주신 셈일까. 애은씨도 나를 자식 같다고 생각했으니깐. 버릇없던 나를 잘 따라주셨던 애은씨, 감사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좀 더 의미있게 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다시 써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1be434e664e749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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