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기똥찬 떡볶이집이 문을 열었다. 경북 영주에 있는 유명한 가게의 분점이라고 한다. 눅진한 소스가 찰지게 붙은 쫄깃한 쌀떡. 첫 입에 알았다. 이 집은 내 지갑을 탈탈 털어갈 것임을. 매일같이 그 집 떡볶이 먹기를 열흘. 진한 풍미도, 찰짐의 충격도 이제는 아는 맛이 되었다. 처음의 감동은 온데간데없고, 떡볶이는 그저 배를 채우는 수많은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불과 2주도 되지 않아서 말이다.
야학에서 검정고시 국어 공부를 가르친 지 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뿌듯함 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은 공기마저 향기로웠다. 내가 가르친 50~70대 어머님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녀들과 함께 나도 가치 있는 삶을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야학의 경험을 브런치에 기록해서 작가님들의 응원을 받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 야학에 어떤 학생이 있는지, 이번 시험에 합격한 분은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고 붙을 수 있었는지. 이 감동실화들을 나만 알기 싫었고, 동료 작가들에게 부지런히 날랐다.
아무리 맛있는 떡볶이도 언젠가는 혀가 익숙해지듯, 내 봉사활동도 그랬다. 언제부턴가 야학 가는 길은 평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더 이상 새롭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매너리즘에 빠지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주기도 점점 길어졌다. 글을 적고 싶었으나, 반복되는 수업에서 더 이상 글로 담을만한 새로운 경험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는 야학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아직 내 앞의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 사회 선생님이 도시화에 관한 수업이 내 마음에 박혔다.
"여러분, 요즘 예전과 다르게 아파트에서 이사 온 주민이 떡 안 돌리죠?"
만약에 내가 사회 수업을 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이사떡 보다 더 쉽게 도시화와 개인주의를 설명할 수 있었을까. 사회 선생님은 공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그녀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내 생각을 가지고 브런치에 글을 써 내려갔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 써지던 글이, 그날은 앉은자리에서 3000자를 써 내려갔다.
비로소 알았다. 좋은 글에 필요한 건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반복되는 오늘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 애정이었다. 흔하디 흔한 사회 수업시간의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자 손 끝, 혀 끝의 감각이 살아났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오늘 수업할 문학 작품에 따라서 수업 분위기도 달랐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질문에도 다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수업이 재밌어졌고, 그러자 우리 학생들의 성적도 올랐다.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 독특한 이벤트를 쫓았는데, 요즘은 나만의 생각을 푹 삭혀서 묵은지를 담으려고 한다. 화려한 글감에 목을 매지 않으니, 브런치에 올리는 글도 다시 많아졌다. 독자들도 새로운 내 글을 맘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브런치와 함께라서 우리의 수업은 날로 맛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