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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의자매 결성

야학 여고 동창생

by 김룰루

그날은 평소보다 20분쯤 일찍 야학에 도착했다. 한창 앞 수업이 진행 중인 시간이다. 이상하게 그날은 교실이 시끄러웠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 내가 있는 곳까지 들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신 걸까. 내 수업에서 저렇게 화기애애했던 적은 없었는데?! 궁금했지만 차마 교실문을 열어보지는 못했다. 무슨 소동이 있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이제 내 수업 시간이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학생분들이 꽃을 한 송이씩 들고 계셨다.


"선생님, 아유 이것 좀 보세요. 담임 선생님이 우리한테 꽃을 선물하셨네요. 아이고 감사해라 호호"


앞 시간은 담임 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작은 이벤트로 학생분들이 그렇게 까르르 웃으셨다보다. 자세히 보니 학생분들은 모두 꽃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계셨고, 교실 벽 한쪽에는 이런 푯말이 붙어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 학생들을 의자매로 만드셨다.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4분을 의자매로 엮으셨다. 그것도 반 강제로. 꽃 로비(?)와 함께. 이제 학생분들은 선생님께 신세를 졌으니, 쉽사리 공부를 포기하기 못하실 게다. 담임 선생님 다운 발랄한 시도다.

왜 이런 이벤트를 하셨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위기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학기초, 우리 초등반은 18명으로 시작했다. 원래는 지원자가 더 많았는데,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선착순으로 학생을 받았다. 줄여서 입학시킨 게 그 정도다. 하지만 2주 만에 절반 가량이 공부를 포기하셨다. 그리고 현재는 단 4분만이 공부를 이어나가고 계시다. 공부가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 해보지 않은 것을 하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든 습관이 생기는 게 제일 어렵다. 매일 저녁 드라마를 포기하고 야학에 오셔야 한다. 그래도 중등반이나 고등반은 중도하차하는 학생 비율이 낮다. 이미 초등반에서 어느 정도 저녁에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가장 공부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게 초등반이다. 사실 초등반 학생들이 초반에 많이 빠져나가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그래서 올해도 이런 현상이 생길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아무래도 다른 선생님들보다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신 게 아닐까.(사실 내가 초등반 담임이었을 때는 지금 담임 선생님처럼 학생수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ㅠㅠ). 담임 선생님은 더 이상 학생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을 거다. 그날은 한 달 정도 사정상 수업을 결석하셨던 학생분이 다시 첫 등교한 날이었다. 그런 그날을 위해 만든 작은 이벤트다.

의자매라는 표현은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야학에서 만난 인연은 실제로도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지곤 한다. 야학은 검정고시를 마치면 끝나지만, 졸업 후에도 서로 연락을 이어가신다. 종종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끼리 모임을 가지신다고 한다. 서로를 '여고 동창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동창생들은 야학 행사가 있으면 졸업 후에도 참여하신다. 졸업식 때 졸업생 분들이 꽃다발을 들고 같이 축하해주시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기부금을 모아서 주시기도 한다. 학생일 때는 원칙상 금품을 받지 않다 보니, 졸업 후에 주시는 경우가 많다.

요즘 야학에 오시는 학생들은 단순히 학력취득만이 목적은 아니다. 야학에서 배운 공부를 토대로 대학 공부를 이어가시기도 하고, 복지 관련 자격증을 따서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기도 하신다. 실제 우리 야학 학생이었다가, 졸업하시고 선생님으로 횔동중이신 분도 계신다. 각자 사회에서 활동을 하실 때, 이곳에서 만난 동창생들이 서로 자극이 되어줄 수 있다. 야학을 졸업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야학 후 인생에서 이 '의자매'라는 인연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워진다. 야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급우들은 성인이 돼서 만난 동기다. 희소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공부길에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서로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졸업 후에도 부디 이 인연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담임선생님이 만드신 깜짝(?) 이벤트가 학생들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이제 결석도 마음대로 못하는 관계가 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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