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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는 약속이 없다

제 야학 생활을 소개합니다

by 김룰루

"오늘 시간 돼?"

"미안한데,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다른 요일에 보면 안 될까?"


매주 수요일은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야근과 회식도 수요일에는 힘들다. 야학에 수업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요일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업무가 지체돼서 저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미리미리 일을 해낸다. 해가 넘어갈 때쯤, 회사 앞에서 초록색 3413번 버스를 탄다. 둔촌동 주택가로 조금만 들어가면 오피스텔이 나온다. 야학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들어간다. 지상에서 수업하고 싶지만, 곳간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매주 야학에 가지만, 야학 가는 길은 묘하게 긴장된다. 누군가를 내가 가르친다는 게 아직도 어색해서 그런가. 혹시 무의식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걸까.


내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반은 초등반이다. 우리 야학에 있는 3개의 반 중에서 가장 기초반에 있다. 매년 4월에 검정고시를 치고, 이 검정고시에서 합격한 학생들은 중등반으로 올라간다. 내가 이곳에 있는 목적은 학생들의 검정고시 학습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대부분 50대 이상 어르신들이다. 머리가 백발인 80대 분도 계신다. 각자의 사정으로 유년시절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분들과 공부를 하고 있다.


7시 10분, 야학에 도착해서 수업 준비를 한다. 학생들은 보통 일찍 오셔서 수업 준비를 한다. 학생들 간에 나누는 수다타임은 정겹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해진다. 학교보다는 사랑방 느낌에 가깝다. 가끔은 나도 끼어서 같이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곤 한다.


7시 30분,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수업내용은 쉽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만 준비하면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다.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은 인생 배테랑이다. 가끔 내가 피곤한 날은 학생들이 기가 막히게 눈치챈다. "선생님, 어째 평소 하고 느낌이 다르네요."라고 말씀하시면 속이 뜨끔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할수록 더 힘을 짜내야 한다. 이런 말 들어봤는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했던가. 힘이 넘쳐서 밝게 수업하는 게 아니라, 밝게 수업하다 보니 힘이 생긴다.


8시 50분, 수업을 마친다. 2교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야학을 나온다. 오늘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는 안도감이 든다. 퇴근길과 달리 길이 조용해졌다. 인적 없는 길의 적적함과, 오늘도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이 섞여서 묘한 기분을 만든다.


이 생활은 매주 반복된다. 몇 년 하다 보니 야학에 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상 중 하나라서 평소에는 무덤덤하다. 숨 쉬는 것에 감사함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문득,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이 들기도 한다. 학기 초보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이 많아졌을 때,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새삼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개인 일정을 쪼개서 야학을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드라마를 포기하고 책상에 앉아있다. 늦은 저녁, 저마다의 핑계를 뒤로하고 이곳으로 모인다.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내 일주일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가 이 야학일지도.


학생분들께 이런 너스레를 자주 떤다.


"저의 목표는 여러분들을 모두 검정고시 합격시키는 겁니다. 그럼 학생이 없겠죠? 내년에는 저도 편히 쉬고 싶네요. 반드시 내년에 합격하시고 저 좀 놀게 해 주세요!"


애석하게도 내 목표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학생들이 모두 합격해서 졸업하거나, 다음반으로 가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신입생이 꾸준히 들어온다. 아직은 날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쉴 수 없어서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내가 아직은 더 필요하구나.


야학 이야기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내 5년간의 경험들을 곱씹는다. 야학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쓰다 보니 무심코 지나갔던 상황들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매주 다른 내용을 공부하고,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 글쓰기는 더 깊게 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 봉사활동은 나의 결과물이 남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글로나마 내 활동의 결과물을 남겨놓을 수 있으니 좋기도 하다. 이 글들은 비단 나에게만 좋은 글을 아니었으면 한다. 독자들도 잠깐이나마 내 글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맞았으면 좋겠다. 복잡하게 흘러가는 세상이지만, 내가 야학에서 얻는 에너지를 독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각자의 삶에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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