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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Nov 09. 2022

유퀴즈 방송출연이 야학에 가져온 변화

 연한 말이지만, 야학은 비영리기관이다. 수익사업을 하지 않고, 해서도 안된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한다는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학생에게는 기부금받지 않는다. 심지어 과자 하나도 받지 않아야 한다.(사실 과자는 마지못해 받는다. 거절하는 것도 힘들다. 부디 안 주셨으면 ㅠ) 혹 기부금을 주려고 하시는 학생분들이 계시지만 정중하게 거절한다. 대신 졸업하고 나시면 그때 마음껏 주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편이다.


 그러면 야학은 돈이 필요가 없나? 절대 그렇지 않다. 시설임대료부터 시작해서 비품비, 전기세, 수도요금, 책값 등 필요한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야학은 그야말로 적자 기관이다.


 우리 야학의 주요 수익원은 정부의 지원금이다. 성인문해 지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지원금이 있는데, 우리 야학은 이 혜택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사업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지원자격을 준수해서 운영 중이다. 이 지원이 없었으면 우리 야학은 진작에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지원금은 시설임대료와 교육비(책값, 문구류 등)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 밖에 들어가는 비용(관리비, 행사비, 하다못해 소풍 갈 때 도시락 살 돈, 심지어 에어컨 수리비까지!)에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후원자 분들이 계시다. 이분들의 후원금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고, 개인 기부금은 불규칙적인 소득이라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매년 적자인 상태이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돈을 까먹으면서 운영하고 있다.


1년 전, 까먹을 돈도 이제 얼마 안 남았을 때의 일이다. 건물이 낡아서 곰팡이가 슬고, 더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월세 보증금을 올려서 이사를 하면 여윳돈이 거의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즈음, 우리 야학에 계신 기훈 선생님께 '유퀴즈'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방송사에서는 '수확'이라는 주제로 야학 선생님의 얘기를 인터뷰했다. 기훈 선생님은 10년 동안 우리 야학에서 과학을 가르치셨다. 학생들을 가르쳐서 검정고시를 합격시킨다? '수확'이라는 주제에 이보다 적합할 수가 없다.                                                                           




 훈 선생님은 연예인도 아닌데 방송을 어찌 그렇게 잘하셨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풀어가셨다. 유재석, 조세호의 매끄러운 진행도 좋았다. 평소에도 즐겨보는 방송이었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출연한 게 꿈같이 다가오기도 했다.


 20여분 가량의 이 짧은 방송이 우리 야학의 재정 상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방송을 계기로 kt 사회복지문화재단에서 큰 기부금을 받았다. 이 기부금 덕분에 곰팡이에서 자유로운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 기부금도 늘었고, 기훈 선생님은 방송에서 퀴즈를 맞혀서 받은 상금을 야학에 주셨다.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문의도 많아졌다. 여러모로 참 힘든 상황이었는데 방송으로 인해 빠르게 해소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단지 매스컴의 힘만으로 우리 야학이 다시 일어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퀴즈가 바보도 아니고 아무 사람이나 인터뷰를 하겠는가? 그것도 연예인도 아닌 사람을. 기훈 선생님이 10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했기 때문에 방송사에서 그분을 선택했다.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야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방송은 우리 야학을 사회에 알리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 거다.


 그러므로 '인생 한방 역전'을 믿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대박사건이 한방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기에서  홈런 한방을 날리는 야구선수에게는 무수히 많았던 훈련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 인생의 한방을 위해서 긴 훈련을 즐겁게 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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