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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Dec 07. 2022

졸업하면 공부가 끝인 줄 알았죠?

야간학교에서 열린 송년회

 끝은 또 다른 시작.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말인데, 야학 송년회에서 다시금 이 말의 의미를 새겨본다.



 3년 만에 열리는 야학 총회였다. 매년 연말이면 한 해동안 야학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자축하는 시간을 갖는다. 코로나 때문에 이 총회는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올해 드디어 열렸다. 플래카드와 다과, 그간의 기록들을 담은 사진들로 야학을 꾸몄다. 이 행사를 며칠 전부터 준비한 선생님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오늘 총회에는 선생님과 학생들, 예비교사, 졸업생들이 참석했다. 특히 졸업생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셔서 미리 준비한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송년회에서는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 현재 활동하는 교사 소개, 야학에서 사용한 예산에 대한 보고, 한 해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처 몰랐던 야학의 사정들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분들에게 한 마디씩 듣는 시간이 있었다. 졸업생들은 손사래를 쳤지만, 고집 센 교장선생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꺼이 한 분도 빠짐없이 졸업생 분들께 발언할 시간을 주었다. 졸업생 분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조리 있게 말씀하셨다.


졸업생분들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저는 2012년에 야학을 졸업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이 공부했던 학급 학생들과 어울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들이 보이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이곳을 졸업하고 나서도 공부를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송통신대를 가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검정고시를 혼자 공부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6번 시험을 쳤는데 다 떨어졌어요. 도저히 혼자서는 안될 것 같아서 야학에 왔어요. 여기서 같이 공부하다 보니 한 번에 합격했어요. 야학을 졸업한 지금도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시장 지나갈 때마다 예전 야학 건물을 물끄러 쳐다봐요. 내가 저기서 공부했었지 하고요. 그때 참 재밌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저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당시 선생님들의 이름을 호명하시고는) 지금까지도 감사함을 잊지 못하네요. 제 아들도 이제 다 컸거든요. 얼마 전에 진지하게 야학에서 선생님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봤는데 너무 바빠서 도저히 못하겠대요.(웃음)"


 궁금했다. 야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어떻게 사는지. 우리가 만들어낸 졸업장이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시는지. 공부를 한 뒤에 삶에 변화가 있을지. 후일담을 들으니 대학교에 진학하신 분들이 제법 있었다. 자식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선택하시는 전공은 사회복지 또는 문학이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야학을 졸업하시고 지금 야학 선생님으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다. 이분은 본인이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종종 교사회의 때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전달해 주신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어렵게 시작하신 공부를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걸 보니 흐뭇하다. 송년회를 기회로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으니 감사했다. 10년 전 부산에서 나와 공부했던 학생들도 지금 이렇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그분들 대신 오늘 참석하신 졸업생분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활동하는 보람과 학생들의 감사함이 등가 교환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어머님의 말씀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어렸을 때 학교를 안 갔다고 제가 그 시간에 논 건 아니거든요.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살았어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열심히 살았죠. 그런데요. 돌이켜보면 여기서 공부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나를 위한 시간이었어요. 다른 사람 생각 안 하고 나만을 위해 쓴 시간이요. 저는 일하느라 바빠서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을 가진 못했어요. 하지만 자신감, 고등학교 졸업장을 내손으로 따냈다는 자신감은 두고두고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는데 이 자신감이 큰 힘이 돼요. 어깨 펴고 다닌다고요 호호"


 그래 이 말이 맞다. 공부를 이어나가지 않으면 어떤가.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 이거면 됐다. 이것만으로도 야학에서 공부한 시간이 충분히 가치가 생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시험에 합격하신 분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등교에서 졸다가 와서 얻어낸 졸업장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는 노래방에서 가사를 읽는데 어려움이 없으시고, 손주들이 영어를 물어봐도 기죽지 않으실 텐데? 자신감이 샘솟지. 솟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나는 내년에도 자신감을 뿌리러 야학에 가야겠다. 올해가 끝나면 내년이 시작되듯, 졸업 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러니까 끝은 또 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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