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우리 야학에서 수업을 시작한 선생님 F. 선생님 F는 나와 180도 다른 사람이다. F는 매사 적극적이다. 나는 월급 따박따박 받는 안정적 삶을 원하는 월급쟁이인데,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사업가다. 야학의 대소사에 '안 되는 이유'부터 찾는 나와 달리, F는 '되게 하는 방법'부터 생각한다. 최근에 그는 우리 야학 유튜브 홍보 계정을 만들었다. 나는 '동영상을 누가 지속적으로 올리냐'며 고개를 흔들었으나, '요즘 기술이 발달해서 금방 해요'라며 F는 손수 본보기를 보이신다. 고프로를 들고 이곳저곳을 누빈다. 우리 야학에서 수업을 시작한 지 불과 3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호감을 사버린 그야말로 우리 야학 '핵인싸'다.
모든 게 나와 다른 F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야학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 F는 타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수년간 해왔다. 그 야학이 망하면서 자연스레 활동을 접었다가, 7년 만에 봉사활동을 다시 하고 싶어서 우리 야학을 찾아왔다. 나도 대학생 때 야학 활동을 했었고, 7년이 지나서 다시 야학에 방문했으니 이 점이 F와 닮았다. 그리고 F의 이 말은 내가 야학에 돌아온 이유와 정확히 일치했다.
"저는 야학이 취미예요. 죄송하게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숭고한 뜻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한 시간 반동안 실컷 떠드는 내 얘기를 들어주다니. 어디서 제 얘기를 집중해주겠어요. 야학에서 수업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요."
나도 F선생님처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야학에 갔다. 24살, 학교에서 날이 선 채로 살았다. 당시 난 학생회에 있었다. 친한 사람들은 군대나 휴학으로 학교에 없었고,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손발을 맞춰야 했다. 쉽지 않았다. 몇 없는 동기들은 어찌나 대가리 꽃밭인지, 대책 없이 허허거리는 착한 선배 역할만 하고 있다. 4학년 선배들은 훈수 두는 시누이 같았다. 신입생 환영회였나? 행사를 준비하면서 내 쌓여있던 화가 폭발한 적이 있는데, 다들 그걸 보고 내 말을 듣는 거다. 이게 약발이 먹히자, 그 이후로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는 '일을 잘하는데, 싸가지는 없는 애'라는 평을 들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그런 건데, 내게 남은 게 싸가지 이미지라니. 열받고, 슬펐다.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사실이었거든. 나에 관한 뒷담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학교 밖을 벗어나, 새롭게 나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야학에 찾아갔다. 싹수없는 애는 은퇴하려고. 이제 착하게 살 시간이었다. 이미지 관리도 할 겸. 야학이면 '내가 이렇게 좋은 일 하며 살아요.'라는 걸 보여주기 너무 좋잖아? 그 당시에는 교내 커뮤니티에 각종 야학에서 경쟁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야학들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을 선택했다. 학교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치이며 피곤했으니까, 더 이상 여러 사람들과 엮이기 싫었다. 그렇게 야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착해졌냐고? 그럴 리가 ㅎㅎ.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나의 착한 모습'을 발견했다.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면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싶었다.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학생들이 시험에 떨어지면 내가 송구해하고, 오랜 시간 결석하는 분은 걱정이 되고,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과 고민하고. 학생들의 열정도 배웠다. 낮에 힘들게 일하시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었다. 이렇듯 학교에서 사용해보지 않았던 감정들을 썼다. 학교에서 날이 서있는 것도 나지만, 야학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나였다. 그렇다. 평소에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곳에서 찾아냈다. '착함'의 정의를 다시 해본건 덤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회사원이 된 지금도 그렇다. 사회에서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려고 야학에 찾아간다.
결과적으로 야학 활동이 내 삶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다. 일방적인 나의 희생이었다면 1년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선생님 F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다.
'얼마나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길래 수년동안 봉사활동을 하실까.'
가끔 이런 칭찬을 듣는데,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런 칭찬을 들을까 봐 봉사활동 사실을 숨긴다. 착한 사람이 되기 싫다. 낭만가 칭호는 사절이다. 야학에서는 그렇다.
여기도 종종 운영의 위기가 오는데, 그럴 때마다 야학을 다시 살려낸 건 철저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온정과 눈물만 있었다면 진작에 문을 닫았을 거다. 돈이 궁하면 정부 정책이나 기업들의 후원 동향을 살핀다. 구청장을 찾아가서 돈을 내놓으라고 졸라 본다. 문제가 있는 선생님과는 싸움도 감내한다. 어린 선생님을 만만하게 보는 학생에게는 대신 목소리를 높여준다. 찬반이 갈리는 사안은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돌파한다. 이렇듯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줄 아는 욕심이 있는 사람, 현실에 치열한 사람들이 야학을 지켜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F선생님을 응원한다. 자본주의의 한가운데에 있을 만큼 세속적인 사람이니깐. 며칠 전 F선생님께 '선생님 뜻대로 우리 야학을 잘 이용하시길 바라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나도 그분을 적절히 활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