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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Sep 01. 2023

엄마들의 What's in my bag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학생들과 영화관 나들이를 왔다. 야학에서 단체 영화관람을 온 건 처음이었다. 이번 학기에 유독 다사다난했던지라,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영화관을 가자고 하면 다들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시큰둥하다. 평소에 영화를 안 보신다는 분들이 많았다. 공부하는 거 아니니까 결석하겠다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분은 '영화 한 시간쯤 보다가 나가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는 분들도 계셨다. 생각보다 냉담한 반응을 겪으니까, 영화관 나들이가 여태껏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에는 '우리는 죽어라 공부만 하고. 언제 노냐'같은 푸념을 하셨는데. 막상 놀러 가자니까 발을 빼신다.


 미리 영화관에 가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우리 학생들은 약속된 시간보다 한참 전에 이미 영화관에 도착해 있었다. 학생들이 일찍 오신 덕에 매점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상영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간식을 사 오면 좋겠다.


 "자, 드시고 싶은 거에 손들어주세요. 콜라 드실 분?"


 학생 두어 명쯤 손을 들었다. 선생님들은 거의 모두가 콜라를 주문했다.


 "콜라 두 분밖에 안 계세요? 그럼 물 드실 분?"

 "선생님, 저는 집에서 물 가져왔어요."


 물을 챙겨 오신 분들이 꽤 많이 계셨다. 영화관까지 물을 챙겨 오실 줄이야. 소풍 때도 그랬다. 선생님들은 얼음물을 박스채로 준비했는데, 학생들은 대부분이 보리차물을 준비해 오셨다. 필요가 없어진 얼음물은 짐이 됐다. 학생들의 가방은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 뭘 그렇게 무겁게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는지. 물티슈, 비닐봉지 같은 것들. 편의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들인데, 꼭 그렇게 가방이 무겁게 들고 다니신다. 그래도 싸들고 오시는 물건들이 요긴한 건 사실이다. 당이 떨어질 만하면 커피믹스가 등장한다. 이 가방은 만물상자처럼 필요한 게 척척 들어있어서, 도라에몽 가방 저리 가라다. 가끔 가방을 대신 들어드리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작은 체구로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다니다니.




 사실 우리 엄마도 비슷하다. 가족여행을 가면 잡동사니를 챙기는 건 엄마가 도맡는다. 그리고 '이걸 왜 가져가는 거야'라는 핀잔을 받기 일쑤다. 없으면 없는 데로 놀면 되지, 무겁게 싸들고 갈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내가 지적을 해도, 이게 다 쓸모가 있는 거라며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야학 학생들을 보니 이건 엄마들의 특성인 것 같다. 엄마들이 젊었던 시절, 그녀들이 아가씨였던 그때는 이러진 않았을 거다. 뾰족구두에 어울리는 작은 핸드백 속에는 거울과 화장품이 있었을 거다. 그러다가 가족이 생기고, 아이들이 생기고. 자연스레 그녀들의 가방도 무거워졌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짠해졌다.


 "선생님, 이 팝콘이 설마 11000원이에요? 그럼 나 환불할래요."

 "콜라 두 개랑 팝콘 세트 가격이에요. 안심하고 드세요~"


 학생들에게 우리 엄마가 보인다. 영수증은 어떻게 보셨는지, 가격 걱정부터 앞서신다. '이거 우리 집 앞에 마트 가면 훨씬 싼데'라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여기까진 말씀하진 않으셨다. 내가 아들이 아니라 선생님이라서 자제하신 걸까. 가격을 걱정한 거 치고는 상당히 잘 드신다. 영화가 시작도 안 했는데 팝콘을 절반 넘게 드셨네.




 이날 본 영화는 밀수였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해녀들의 영화다. 영화 말미에 해녀들과 악당들의 바닷속 액션신이 백미였다. 학생들은 아침마당 속 방청객 만큼이나 맛깔난 추임새를 넣으셨다.


 "그렇지 그렇지. 잘한다."

 "그래 저 해초로 유인해서 저놈을 가둬버려야지."

 "뒤에 상어 온다. 조심해!"

  

 학생들의 추임새 덕에 영화가 더 재밌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보다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통쾌한 해녀들의 활극에 스트레스가 풀린 것 같았다. 중간에 집에 간 사람도 없었다. 다음에 또 영화 보러 오자고 조르는 분도 계셨다. 하기 전엔 손사래 치다가, 막상 하고 나면 좋아하기로 엄마들끼리 약속을 한 걸까. 이것이 바로 엄마들의 표현방법? 그렇다면 우리 엄마랑도 싫어하는 나들이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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