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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Apr 19. 2023

검정고시 고사장 동행기

 야학에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둘의 관계는 '상생관계'다. 교사와 학생 모두 이득이 되는 곳이 야학이어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만으로는 야학이 유지될 수 없다. 이곳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도 아니고, 돈을 받는 회사도 아니다. 친구는 우정이 이어주고, 연인은 사랑이 이어준다. 야학은 그런 필수적인 게 있나? 관계 지속의 이유가 딱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윈윈 하는 관계가 되어야 이 장소가 계속 문을 열고 있을 수 있다.


 교사는 야학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얻어간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 곁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어가거나,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이는 운동과도 비슷하다. 땀이 흠뻑 나도록 달리면 분명 몸이 지친다. 하지만 몸이 지치는 대도 활력이 생기고, 체력도 좋아진다. 잠도 푹 잘 수 있다. 이 활동이 그렇다. 야학에서 얻은 긍정적인 에너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힘을 준다. 긍정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다. 가장 주의해야 할 관계는 일방적인 베풂 관계다. 마치 수업을 적선하러 오는 것 같이 행동하는 교사는 지속적인 활동이 힘들다. 반대로 자신의 기력을 모두 야학에서 쏟아내듯 엄청난 열정을 발휘하는 선생님도 오래 활동하기 힘들다. 그런 분도 금방 지친다. 무엇이 되었든 교사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야학에 오는 길이 재밌다.


 학생은 무엇을 얻어갈까. 유년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학교 경험과 지식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요즘 들어 느끼는 생각인데, 학생들이 가져가는 것 중에서 '정'이 가장 크다. 공부야 학점은행제, 복지관, 구청 수업 등 배울 수 있는 곳이 널렸다. 우리 야학 선생님들의 수업이 매우 훌륭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 아마추어 선생들이고, 바쁠 때는 휴강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다른 기관에 비해 수업의 질은 좋을 수가 없다. 이럼에도 학생들은 선생님들과 급우들에게 정이 쌓여서 학교에 나온다. 짬을 내서 수업에 오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함, 같이 고생하며 공부하는 급우들과 전우애가 쌓인다.


 감사함이 넘치면 미안함이 된다. 미안함은 부담스러움으로 이어진다. 간혹 성실하지 못한 교사에게 미안해서 건의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분은 '저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데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조용히 야학에 오는 걸 포기하기도 하신다. 이렇듯 학생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야학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교사와 학생 둘에게 적당히 이득이 되는 정도의 유대감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다만 그날은 학생분이 미안해할 만했다. 나 같아도 그랬겠다. 얼마 전 검정고시날 이야기다. 우리 반에서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학생분은 한 분이었다. 한 분을 위해서 담임선생님은 새벽부터 차로 픽업을 해서 고사장에 데려다 드렸다. 우리 야학에서 가장 어린 대학교 1학년 선생님이 쿠키와 초콜릿을 준비해 오셨다. 자신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능을 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수험생에 대한 공감도가 우리 중에 가장 높다.


 시험은 9시쯤 시작해서 11시 40분에 끝났다. 교사들은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학생분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밥 먹을 시간이니 당연히 식사를 하는 건데 학생분은 미안해하셨다. 고사장 근처에 중국집이 눈에 보여 들어갔는데, 가격이 동네 중국집보다 두 배쯤 비싸더라. 메뉴판을 보고 학생분이 놀라셨다. 학생분은 거기서 가장 싼 11000원짜리 유니짜장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어보고 싶다면서. 분명 얻어먹기 미안해서 가장 저렴한 걸 시키신 거다. 학생분이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검정고시 고사장에 선생님들이 따라가는 건 학생에 대한 예의기도 하고, 한 학기 동안 고생한 자신들에 대한 기념이기도 하다. 점심값도 내가 내는 게 아니라, 야학 공금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맛있는 걸 먹어도 된다. 하지만 이날처럼 학생이 한 명이었으면 미안함을 느끼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학생분이 덜 미안하시라고 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어머님이 시험 치러 오신 덕에 우리 야학이 정부 지원금도 받고 기부금도 들어오죠 하하."


 이 말은 하지 않는 게 나았으려나. 멘트가 영 구렸다. 다른 선생님들의 살가운 응원과 대조되었다.


 며칠 뒤, 시험결과가 궁금해서 학생분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시험 결과 어떻게 됐어요?"

 "선생님, 저 시험 잘 쳤어요. 한 과목 빼고 다 80점 이상이에요."

 "축하드려요. 중등반 가실 거예요?"

 "아 왜 자꾸 중등반 올라갈 거냐고 묻는지 모르겠네. 당연히 올라가야죠. 이제 정들어서 못 그만두죠. 가족들한테도 공부한다고 선언해놨는데."


 학생들이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 고마워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무겁지 않게 활동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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