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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13. 2023

돈,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

 야학은 학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드리는 게 기본 취지이기 때문이다. 기부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기부를 할 수 없다. 기부를 원하는 학생들께는, 참으셨다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 기부해 달라고 말씀드린다.


 부산에 있던 야학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 달에 만원씩 모아서 주시곤 했다. 그때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해서 야학이 많이 궁핍했다. 선생님들이 월 1만 원씩 모아서 월세를 겨우겨우 충당했으나, 나머지 부대비용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기부금이 없으면 당장 야학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원칙에 어긋나는 건 알았지만 눈 질끈 감고 그 돈을 받았다.


 학생들이 모아서 준 돈이 실랑이가 된 적이 있었다. 10대 학생들이 우리 야학에 입학했었는데, 어머님들이 그 학생들에게도 만원씩 주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셨나 보다. 미성년자가 돈이 어딨겠는가. 어린 친구들이 난처했을 것이다. 결국 어린 친구들은 돈을 주지 않는 것으로 학생들끼리 정리되었다. 하지만 만원 때문에 괜히 그 친구들이 눈치는 보지 않았을지. 이런 경험만 봐도 학생들에게는 100원도 받지 않는 게 맞다. 야학의 경제적인 문제는 선생님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지, 학생들에게 돈을 받으면 그건 학원이나 다를 게 없다.


 돈뿐만이 아니다. 선물도 곤란하다. 특히 간식. 누구는 맨날 먹을 걸 들고 오면, 다른 학생들은 부담이 된다. 혹시 본인도 뭐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뭘 자꾸 들고 오신다. 선물의 방법도 점점 지능화된다. 하루는 미영 씨가 캔커피 한 박스를 사 오셨다. 날도 더운데 냉장고에 넣어놓고 마시자고. 무거운 걸 가져오시면 거절하기가 힘들다. 다시 가지고 가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때로는 자식을 이용하신다.


 "아니 선생님. 우리 딸이 선생님들 드리라고 쿠키를 가져왔더라고요. 딸이 준 건데 안 가져올 수도 없고 참"


 이렇게 거절하기 난감할 때가 많지만, 어쨌든 우리의 원칙은 콩알 하나 받지 않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선물이 하나 있다. 루는 수업을 마쳤는데 미순 씨가 하교하지 않고 교실에 남아계셨다. 내가 얼른 집에가시라면서 인사를 드리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신다.


 "선생님, 이거 내가 오늘 먹을라고 가져왔는데 깜박하고 안 먹었네. 집에 가져가서 드세요."


 미순 씨에게 지퍼백에 든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키친타월에 돌돌 말아져 있어서 내용물이 안보였지만, 상황상 간식인 것 같다. 경주분이셔서 그런가. 전형적인 경상도의 '오다 주섰다(주웠다)' 바이브다. 집에 가서 펼쳐보니 그것은 견과류 강정이었다. 땅콩, 해바라기씨, 검정깨를 물엿에 버무려서 말려낸 수제간식이었다. 내가 주전부리 좋아한다는 걸 말한 적이 없을 텐데? 이건 분명히 직접 만드셨다. 모양이나 맛이 기성품이 아니다. 맛을 봤더니 우리 엄마가 만든 것과 똑같아서 놀라웠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강정 레시피를 공유하시나? 괜히 코끝이 찡했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그렇게 배웠다. 거추장스럽지 않아도 괜찮다. 간지럽지 않아도 된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기프티콘보다, 상투적인 안부인사보다, 그날 받은 수제 간식이 내 마음을 더 움직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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