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에서 저질렀던 가장 미안한 잘못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때 내가 25살이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은 무릇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한참 어린 선생님일지라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야학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 고심해서 학생상을 만든 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이런 모범적인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렇게 변해주길 바랐다. 이 모습에 부합하는 학생은 모범생으로 인식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애은씨는 나에게 지적을 가장 많이 당했던 학생이었다. 유독 학습이 더뎠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못 따라오는지 유심히 그분을 들여다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애은씨가 글을 읽는 속도가 느렸다. 글 읽기는 가장 기본이라서, 이 점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공부를 아무리 해봐야 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애은씨, 교과서 38쪽 읽어보실까요?"
"철...수...는.. 어...어러서...브터? 부터?"
"애은씨, 요즘 글 읽기 연습 꾸준히 하고 계세요? 매일매일 무엇이든 꾸준히 읽기로 약속하셨죠?"
"선생님, 나는 국민학교도 검정고시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하는 게 힘들어요. 어려서 공부를 했어야지 원 따라가기 너무 힘든데."
"그래도 노력해 보셔야죠. 저랑 책읽기는 맨날 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오늘부터라도 읽기 연습 하루에 20분씩 해주세요. 신문이 됐든 동화책이 됐든 뭐든 좋습니다."
"아이고 나 모르겠다. 선생님 나 그냥 포기할래요. 못하는 데 어떡해"
"애은씨, 지금 공부 안 하시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뒤처질 거예요. 지금도 어머님이 제일 뒤처지잖아요. 나중에는 다른 어머님들은 고등반에 다 가실 건데, 어머님만 저랑 단둘이 공부하겠어요. 그러길 바라진 않으시죠?"
'지금도 우리 반에서 제일 뒤처진다, 혼자 상급반에 못 갈 것 같다'라는 내 말에 애은씨는 말없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셨다. 그녀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 각성하고 있다는 걸. 그 뒤로 애은 씨는 글 읽기 연습을 꾸준히 하셨다. 몇 달 지나자 제법 글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소리 내어 읽을 때도 제법 자연스럽게 잘 읽으셨다. 수업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내 쓴소리가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지적을 계속했다. 그녀가 공부에 적응할 수 있길 바란 내 배려였다.
일일호프에서 애은씨와 술자리를 가졌다. 당시 야학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대학가에 있는 호프집을 빌려서 일일호프를 열었다. 우리 야학 학생들도 일일호프에 오셔서 술을 팔아주셨는데, 애은씨도 와주셨다. 이 날, 조금 취한 그녀는 이렇게 말씀하며 날 안아주셨다.
"국어 선생님은 꼭 우리 아들 같아요"
오호. 내가 애은씨를 각별히 신경 써서 케어해 드린 보람이 있구나. 친자식 같은 정을 느끼나 보다. 뿌듯했다. 하지만 애은씨의 다음 말이 반전이었다.
"우리 아들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못하거든. 꼭 입 바른말을 하는데, 선생님도 그래요. 어찌나 말을 세게 하는지. 호호호."
아. 칭찬일 줄 알았는데, 내가 지독하다는 얘기구나. 민망했다. 이것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그날 처음 알았다. 나의 지적들이 애은씨를 콕콕 찌르고 있었단 걸. 마냥 내 송곳 같은 말들이 그녀에게 도움만 되는 건 아니었단 걸.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때 애은씨에게 그러면 안 됐다. 자식뻘 되는 애한테, 공부 못한다고 구박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이었을까. 나는 왜 부모님 뻘인 분에게 굳이 자존심 상할 말을 했어야 했는지. 애은씨가 싹수없는 나를 잘 받아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학생 한 분을 잃을 뻔했다. 변명의 여지없이, 나는 선생님으로는 낙제감이었다.
그런데 애은씨는 왜 불만 한 번 없었을까? 한 번쯤 화를 내셨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굳이 들을 필요 없는 내 잔소리를 존중해 주신 이유는 뭘까. 애초에 나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다른 학생과 비교하면서 애은씨의 심기를 건드릴 때 '김룰루 선생님은 사람이 덜됐어'라고 비판했다면, 그녀는 우리 야학에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원래 그런 선생님이잖아'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버린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장, 단점이 있으니깐. 내 단점은 이해하시고, 장점을 위주로 봐주신 게 아닐까.
사실 나라고 항상 야학에 애정이 있는 건 아니다. 여기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잊을 만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튀어나온다. 잠수를 타버린 선생님, 납득할 수 없는 불평을 하는 학생, 수업을 방해하는 이웃 주민들. 같이 야학을 꾸려나가는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내가 지칠 때도 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10년 전 애은씨가 나에게 그랬듯이.
우리 야학은 1989년에 문을 열었다. 완벽한 사람만이 야학에 있을 수 있었다면 이곳이 30년 넘게 있을 수 있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실수도 저지르고, 상처도 주면서 삐걱거렸겠지.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나처럼, 이곳의 동료들처럼, 그냥 그런 보통 사람들끼리 아웅다웅하면서 커가는 곳이다. 그러니깐, 항상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다른 사람의 실수도 보듬어 줘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몇 발짝 더 자라 있을 것이라 믿는다.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함께 뿌듯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