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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Sep 22. 2022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이지"

 몇 달 전, 친구와의 술자리였다.  


 "요즘 뭐 하면서 지내?"

 "특별한 거 없는데. 낮에는 회사일 하고, 밤에는 집에서는 쉬지. 요즘 흥미 있는 게 없네."

 "하고 싶은 게 없어? 그거 늙은 거야. 너 예전에 춤 배우고 싶어 했잖아. 다음 주부터라도 당장 그거부터 시작해 봐"

 "이 나이에 춤은 무슨. 주책이지" 


 어릴 때부터 춤을 배워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배우지 못했는데, 친구는 그걸 알고 권유한 것이다. 춤. 잠깐 잊고있었다. 예전에 꼭 배워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아직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신나는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는 터라, 그에 맞는 춤을 추는 게 즐거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댄스를 배우러 가기가 영 쑥스럽다. 이제는 나이도 많고, 특히나 댄스학원에는 남자 수강생이 많지 않다. 주목을 받기 십상이다. 영 민망하다. 그래서 생각만 할 뿐, 학원에 발을 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이 때문에 춤을 못 배운다는 생각을 부끄럽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얼마 전 야학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반 국어 수업시간이었는데, 다른 학생들보다 한글을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늦은 분이 있었다. 단어를 한꺼번에 읽지 못하시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으셔서 겨우 해석해 내는 정도였다. 그분은 수업시간마다 주눅이 들었다.


 참고로 초등반 학생에는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다. 


 한글을 못 깨치신 분 : 쉬운 글자는 읽으실 수 있으나, 어려운 글자는 힘들어하신다. 글자를 읽는 것은 가능하나, 쓰는 것은 하지 못한다. 우리 야학은 한글반이 따로 없어서 이 단계의 분들은 안타깝게도 중도하차하시는 경우가 많다.

 한글은 알지만 익숙하지 않으신 분 : 한글을 다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글자씩 더듬더듬 읽는다. 단어가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읽으려면 '바', '나', '나' 세 글자를 읽은 뒤 조립을 해야 한다. 읽는 것이 가능하지만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이 경우에는 중도하차를 많이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시면 실력 향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한글에 익숙하지만 문제풀이가 어려우신 분 : 한글 사용에는 문제가 없으나 시험문제를 푸는데 힘들어하신다. 이 단계 분들은 문제풀이에 익숙해지시면 검정고시 합격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풀이까지 잘하시는 분 : 이 경우는 크게 걱정되는 것이 없다. 수업만 착실히 따라오신다면 검정고시 합격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다른 학생분들을 도와주는 역할도 하신다.


 오늘의 어머님은 2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분이셨다. 이 단계 분들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라 충분한 응원을 해 드려야 한다.


 "어머님~ 한글 읽는 건 빨리 늘지는 않아요. 그래도 꼭 꾸준히 글을 읽으셔야 해요. 아무리 비싼 과외를 받아도 소용없고요, 이 방법이 최고입니다. 3달만 매일 20분씩만 하셔도 많이 좋아지실 거예요. 꼭 집에서 아무 책이나 읽어주세요. 동화책도 좋고, 신문도 좋아요."

 "선생님, 내가 70이 훌쩍 넘었는데,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한다고 와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못하는 거 같아요."

 "어머님, 우리 반에서 1등 하려고 공부하는 거 아니잖아요. 다 같이 내년에 시험 합격하는 게 목표입니다~ 여기서 조금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얘기하다 보니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춤을 배우는데 나이나 성별이 중요할까? 내 목표는 춤을 배우면서 운동과 즐거움을 얻는 거였다. 그 강습에서 1등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야학 학생분에게 응원을 해 드리다 보니, 내가 왜 춤을 배워야 하는지 나 스스로 응원하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야학에 오는 학생들에 비하면 내가 춤을 배우는 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운 공부를 하러 저녁 드라마를 포기하고 여기 오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취미활동 따위에 이렇게 망설인다고? 그러면서 학생들을 공부하자고 설득한다? 앞뒤가 안 맞다.


 나는 어르신들이 늦은 나이에 배움을 시작하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이를 핑계로 도전을 망설이는 게, 내로남불로 느꼈다.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니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지만 몸을 움직이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다. 다음 수업은 뉴진 스라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다. Got me looking for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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