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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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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Nov 18. 2022

필요한 사람을 찾는 방법

 야학에서 교사 모집을 담당했던 적이 있다. 교사를 뽑을 때 가급적이면 '야학에 필요한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왕이면 더 많이 야학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으면 좋지 않은가. 물론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려고 하는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사람을 탈락시키지는 못한다. 봉사활동 기관에서 사람을 가려서 뽑는 것도 이상하고.


 사람을 선별해서 뽑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뽑을 때는 자연스레 이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야학에서 활동할지 모습을 예측해서 그려본다. 과연 필요한 사람일지, 내가 원하는 역할을 이 분이 해주실지. 그러다 보면 우려되는 점들이 보인다. 지원자를 처음 만나는 날, 상담을 하면서 으레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난다.


'다른 과목은 안되고 영어만 수업할 수 있다고? 왜 다른 과목은 못해? 까다로우신 분 아냐? 이런 분을 뽑으면 시간표 짤 때 비협조적일 것 같은데?' 

'이 분은 너무 소극적이야. 조용히 수업만 하시고, 야학 행사에는 참여 안 하실 것 같은데?'

'이 분은 너무 바쁘신 분인데? 1년도 못 채우고 바빠서 관두실 것 같은데?'

'집이 이렇게 멀다고? 야학에 올 수는 있는 거야? 자주 지각하는 건 아닐까?'

'직업이 사업가/사회운동가시네. 혹시 우리 야학을 자신의 직업에 활용하는 목적으로 온 거면 어떡하지?'


 괜히 걱정이 생긴다. 그래서 첫 상담시간에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겁을 주는 편이다.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지고 야학에 와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1년은 활동하셔야 합니다. 최소한!"

 "지각, 무단결근은 당연히 안됩니다!"

 "선생님은 수업만 하는 게 아니고요, 야학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교사회의도 한 달에 한 번 있습니다."

 "건물 청소, 비품 구입 같은 사소한 것도 선생님들이 직접 해야 합니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그 밖에 이러쿵저러쿵... 이래도 정말 활동하시겠어요???!! 혹시 활동하실 자신이 없으시면 나중에라도 카톡 주세요 :)"

 

 내가 이렇게 새로 오시는 분들께 겁을 준 건 이유가 있었다. 같이 활동을 하는 분들 중에서 '야학에 필요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되는 선생님들이 더러 있었다. 내가 교사 모집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사람을 더 뽑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나머지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들은 편견이었다. 평소에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선생님이 계셨다. 이 선생님은 너무 조용하게 활동을 하셔서 내가 이 선생님에 대해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수업은 잘 되고 있는 건지, 검정고시 준비에는 이상이 없는지 알 길이 없으니 불안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이 선생님의 수업을 담 넘어 들은 적이 있다. 이게 웬 걸. 수업 능력이 매우 뛰어나셔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었다. 수업 내용이 꽤 어려웠는데,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하셨다. 수업 분위기도 좋았다. 학생들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이 수업을 청강하고 그 선생님을 보는 내 시선이 바뀌었다. 이분은 묵묵히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


 얼마 전에 오신 신규 선생님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나는 이 선생님께 큰 기대가 없었다. 야학 사정상 급하게 뽑은 분이셨고, 그냥 문제만 일으키지 않고 활동해 주시길 바랐다. 그런데, 이 분이 첫 수업을 마치시고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주셨다. 자신이 첫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 들과 다음에 오실 신규 선생님들께 미리 알려주면 좋을만한 점들을 정리해서 알려주셨다. 야학을 오래 다닌 나는 미처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었다. 새로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 야학의 개선점들을 알려주시니 감사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배려였다.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이 분께서 해주셨다. 


 '필요한 사람'의 기준은 내 변덕스럽고 오만한 잣대로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필요한 사람을 구하는 법은 없다. 적어도 우리 야학 안에서는 그렇다. 여기는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어쩔 수 없이 와야 하는 학교나 직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선의를 믿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어본다. 물론 과거 사례들을 보면 절대로 필요하지 않은 극소수의 선생님들도 있었다.(반드시 쫓아내야 하는 사람들!) 다행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좋은 의도로 활동을 하고 계시다. 그러니까 그냥 믿기로 한다. 내 멋대로 필요한 사람을 정의하는 건 부질없다. 야학에 기여하는 각자의 방법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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