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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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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Feb 06. 2023

당연함과 감사함

 오늘 야학에서는 글 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따옴표의 사용법을 학생들에게 알려드렸다.


 "자 이 부호는 큰 따옴표고요. 글에서 큰 따옴표가 나오면 실제 등장인물이 말한 내용이에요. 그리고 다음 문장에는 작은따옴표가 있네요. 작은따옴표는 속마음이나 강조할 때 씁니다. 두 문장부호는 사용법이 달라요."

 "아~ 그렇구나. 이 점표시를 그냥 쓰는 게 아니었네요. 용도가 다 정해져 있구나.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글 내용을 정확히 알겠어요. 평생 이걸 모르고 살았네요."


 야학 수업을 하다 보면 '당연함'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 이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내 기준에서 당연한 것이지, 학생들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업을 해야 한다. 굳이 '이것까지 수업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한 것까지 수업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사실 오늘 수업한 따옴표에 관한 것도 알려드릴 계획이 없었다. 학생들이 알고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알려드렸는데,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며 신기해하셨다. 여태껏 따옴표를 볼 때마다 눈치껏 이해를 했었는데, 이제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된 김에 물음표, 느낌표, 말줄임표 등 다른 문장부호들도 설명하고 수업을 끝냈다. 오늘처럼 학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드리고 나면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기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신입 수학교사의 시범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x+1)(x+2) = 5


 자 괄호를 풀면 x2 + 3x + 2 = 5죠?


 10분가량의 시범수업이 끝나고, 참관했던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참관수업에서는 기존 선생님들이 학생의 입장에서 엉뚱한 질문을 일부러 한다.)


 "선생님, 괄호를 푸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 그 내용은 미처 수업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시범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괄호를 푸는 방법을 설명하지 못했다.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는 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설명할바에는 다음 시간에 알려준다고 하고 넘기는 게 현명하다. 우리는 당연히 괄호를 푸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야학 학생들은 모를 수도 있다. 괄호를 푸는 법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그다음단계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이렇듯 여러 선생님들이 이 '당연함과의 싸움'에서 방심을 하곤 한다. 그래도 괜찮다. 다음 기회에 다시 알려드리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연하다와 알고 있다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두 단어가 같다고 착각을 한다. '-1 x-1 = 1'은 당연한 건데, 이게 왜 그런지는 나는 모른다. 고등반 수학선생님이 이 질문을 받고 한 시간 동안 왜 저렇게 되는지 열변을 토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수학선생님이 아닌 게 다행이다. 난 설명을 못했을 텐데. (아, 한 시간 동안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그냥 외울게요."라고 반응하셨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뭐가 있을까. 별로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본다. 들여다보면 감사한 일 투성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단골 가게, 아직 건강을 지키고 있는 우리 가족들, 나를 신뢰하는 야학 학생들, 여전히 나만큼 철이 없는 친구들까지. 내가 가진 것들은 당연한 것이라 치부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만 머릿속에 가득 찬 건 아닐까.


 살다 보면 '당연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가치를 잊는 것들이 많다. 편리함을 당연시 여겨 조금만 계획에서 어긋나면 짜증을 낸다. 우리 회사에 돈을 주는 고객님들께 '저번에 알려준 건데 왜 모르세요?'라고 파업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야학 수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상기하게 된다. 이렇게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고, 무의식 속 자고 있는 감사함을 깨워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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