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에는 수업을 하지 않고 야학 행정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야학 운영에 관여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할 일이 많이 생긴다. 동료 선생님들에게 역할을 줘야 하고, 이해관계자들도 상대해야 한다. 부탁은 청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내가 원체 아쉬운 소리를 못해서 더 힘들다.
예전 일이다. 동료 선생님들께 검정고시 원서 접수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4월과 8월, 일 년에 두 번 있는 시험 중 우리 야학은 공식적으로 4월 검정고시만 준비한다. 8월이면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 굳이 시험을 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시험은 실전감각이 중요한데, 8월 시험을 쳐보는 게 안치는 거보다 낫지 않나? 선생님들과 같이 8월 시험도 준비해 보자고 설득했지만, 결국 나 혼자 준비해서 시험을 치렀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절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사람들은 왜 나와 생각이 다른지, 나는 왜 쿨하지 못한 지. 속이 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발작 버튼'이 있다. 별 거 아닌데 유독 신경이 곤두서고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것들. 어떤 사람은 '너는 너무 예민해'라는 말이 발작 버튼이고, 누군가는 '넌 이 일에 재능이 없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욱한다. 나도 발작 버튼을 여러 개 탑재 중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거절당함'이다. 내 딴에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서 부탁했는데, 상대방이 매몰차게 거절하면 그게 그렇게 열받을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들어주기 어려운 요청이라면 말도 안 한다. 부탁하는 나도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야?'라는 투로 냉정하게 거절하면 나는 손절 버튼을 누르고 싶어 진다. 이렇게 내가 거절에 예민하다 보니, 부탁을 하기 전부터 지레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부탁에 주저하게 된다.
비단 야학에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 있다 보면 부탁을 할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이 부탁의 경중은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나는 들어주기 쉽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한 부탁이 다른 사람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최근 '거절당하기 연습'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1일 1 거절당하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사람들에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면인 사람에게 100달러를 빌려달라고 하거나, 도넛 가게에서 자신만의 특별 도넛을 만들어 달라는 등. 처음에는 부탁을 하는 게 너무 긴장되고 힘들었지만, 부탁이 거듭될수록 작가는 과감해졌다. 의외로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설사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내 사정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의 호의가 힘이 되었다.
저자는 '거절당하기 챌린지'가 손해 볼 일 없는 시도라고 했다. 부탁을 받아준다면 저자는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반면 부탁을 거절당하더라도, 1일 1 거절받기에 성공한 거다. 거절과 수락을 거듭 겪다 보니, 어떻게 부탁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지도 체득할 수 있다.
당분간은 나도 거절당하기 연습 중이라고 생각하고 살 계획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중히 요청해 보자. 거절당하는 걸 겁내지 말자. 마음 상하지도 말자. 거절을 당하지 않고 싶다면? 부탁을 하지 않고 살면 되겠지. 하지만 이게 가능한가? 어차피 해야 할 부탁이라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힘을 사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