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자 오늘까지 글 읽기 수업은 끝내고요. 다음 시간부터는 국어 문법 공부를 시작할게요."
"선생님, 겨우 이것만 배워서 되겠어요?"
흠칫했다. 왜 학생분이 저 말씀을 하셨을까? 내 수업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나? 글 읽기 수업이 너무 어려웠나?
"저는 글을 더 읽고 싶은데요. 책을 좀 추천해주세요. 아니 우리 딸이 책을 사준대서. 선생님이 좀 골라주세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내 수업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글을 읽고 감상하는 게 재밌으셨나 보다. 내 수업이 학생분에게 헛된 시간이 아닌 거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공부하는 엄마를 위해 책을 사준다는 따님의 정성도 예뻐 보였다. 학생분의 저 말씀을 불만으로 생각한 건 내 오해였다.
생각해보면 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에게 말이 전달될 때가 있다. 몇 해 전 추석 때 있었던 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사촌누나에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OO아. 언제 돈 벌어서 삼촌 용돈 줄래? 자 여기 용돈이다."
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놀랐다. 명절에 만난 친척에게 취업 얘기는 금기사항 아닌가? 우리 아빠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구나. 그 자리에 같이 있는 내가 다 민망했다. 그런데 누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누나는 웃으면서 아빠에게 대답했다.
"그러게. 시험이 어렵네. 삼촌아 조금 기다려봐. 빨리 시험 합격해볼게"
누나는 민감한 얘기에 이렇게 가볍게 대답하고 넘어갔다. 사실 아빠가 악의를 가지고 누나에게 취업 잔소리를 하진 않았을 거다. 딴에는 애정 어린 걱정이었을 거다. 그래도 분명 젊은이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아빠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미소로 답했다.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커뮤니케이션의 오류가 생긴다. 세대가 다른 경우 특히 그렇다. 아빠가 사촌누나에게 했던 명절 인사와 내가 오늘 들은 학생분의 요청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는 내 수업에 대한 불만으로 인식한 것이, 알고 보니 학생분의 공부의 욕이었다. 내 수업에 적극적인 모습에 대한 감사함과 내 오해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쁜 말을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오류일 거야'라고 웃어넘기는 아량을 가지고 싶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이런 의사소통의 오해를 만들고 있을 수도 있겠다. 부디 그런 일을 줄이기 위해 말 한마디에 배려를 심어서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무슨 책을 추천했냐고?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을 권해드렸다. 학생분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소설에 입문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읽으실지, 읽고 나서 어떤 감상을 느끼셨을지 궁금하다. 한 달쯤 뒤에 넌지시 읽어보셨냐고 물어봐야겠다. 커뮤니케이션의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