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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Aug 10. 2023

선생님은 몰라요! 6.25도 안겪어보고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긴장하자. 역사수업끝을 향해 달려간다. 현대사는 학생들에게 친숙한 내용이다. 나는 그저 책으로 역사를 배웠을 뿐인데, 학생들은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역사 사건들이 그저 공부내용 중 하나에 그치지만,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인생을 흔들었던 일생일대의 사건일 수도 있다. 한국전쟁부터는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바뀐다. 그전까지는 전래동화를 듣는 것 마냥 '아~ 그렇구나.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시던 분들이, 여기부터는 적극적으로 수업에 개입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경험을 목소리 높여 설명한다.


 그 당시 우리 반 왕언니인 혜원 씨는 호적 나이로 78세, 실제 나이는 81세셨다. 40년대생이라,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셨다.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을 수업하는데 그녀는 본인의 어릴 적 경험을 일장연설하셨다.


 "내 고향 양양 그 시골에서는 말이지. 6.25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북한군 비행기가 날아다녔어. 밭에 있으면 북한군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가고 그랬어. 그러면 우리는 무서워서 숨고. 북한에서는 6.25 전쟁을 남한에서 먼저 공격했다고 가르친다면서요? 말도 안 되지. 북한군이 쳐들어오는 거를 내가 봤는데. 내가 역사의 증인이에요."


 사실 관계를 떠나서 그냥 넋 놓고 듣게 된다. 교과서보다 훨씬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이야기다. 이럴 때면 지금 수업을 하고 있었다는 걸 잠깐 잊고, 학생들의 옛이야기로 수다를 떨게 된다.


 "언니 고향이 양양이구나. 나는 경주사람이거든. 나 어릴 때는 할아버지들이 곰방대에 담배를 피웠는데,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외국에서는 이 곰방대 같은 걸로 기찻길을 만든다'는 거야. 에라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나 싶었는데. 나라가 좋아져 가지고 우리나라도 구석구석 다 기차가 다니네 하하하"


 "아효 그러게요. 우리 어렸을 때는 여자가 공부가 뭐야. 먹을 것도 없는데. 남자 형제만 겨우 뒷바라지해서 학교 보내는 거지.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육성회비도 필요 없잖아. 그 돈 안 냈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그랬는데. 그런데 요즘 애들은 거꾸로 돼서 반찬투정을 해서 탈이잖아요. 먹을 게 지천에 널려서 부모들이 제발 한 입만 먹으라고 애들을 졸졸 쫓아다닌다니깐요. 참 세상 좋아졌어요 그렇죠? "


 그녀들의 이야기보따리에 나는 그저 맞장구만 친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숟가락을 얹지도 못한다. 인생 얘기를 나누다 보면 수업시간이 뚝딱 지나있다.



 여기까지는 훈훈했지? 그다음 진도부터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 5.16 군사정변부터는 단어 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긍정적인 단어를 썼을 때 발끈하시는 분도 있고, 반면에 부정적인 의견을 비췄을 때 서운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외줄 타듯 수업을 하는데, 이번에도 왕언니 혜원 씨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


 "선생님 그런데요. 요즘 젊은애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한다죠? 그 시절에 우리가 먹을 거 없을 때... (이하 생략)"


 다행히 내 수업에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선생님 C의 수업에서는 상황이 더 재밌었다고(?) 한다. 혜원 씨의 정치성향이 담긴 이야기에 다른 학생분이 반론을 내면서부터다.


 "에이 언니, 그건 아니죠.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죄 없이... (대강 정치얘기)"


 싸운 건 아닌데, 서로 조심하면서도 경계하는 묘한 기류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흘렀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C가 다음 수업을 들어가 보니, 학생들이 자리를 바꿨더란다. 같은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자리를 같이 앉아있더란다. 백 분 토론이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


 때로는 학생들이 급발진하기도 한다.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는데 '선생님, 저는 이 사건을 직접 겪어봤잖아요. 그게 아니에요.'라면서 교과서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생님들은 '아 그러시구나.' 정도로 둘러대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학생들의 말을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개인의 기억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고, 개인과 국가는 입장이 다르니깐 해석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당사자였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래도 부디 시험 칠 때는 교과서 내용대로 답을 적어주시길.


수업교재로 골랐던 스토리 한국사. 이야기처럼 역사를 설명해 줘서 좋았다. 추천!

 지금 우리 야학에서 제일 어린 선생님은 02년생이다. 한일월드컵 때 태어난 선생님에게, 한국전쟁 때 피난 가던 학생이 공부를 배운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든 사람들이,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사람에게 공부를 배우다니. 교사와 학생이 바뀐 것 같다고? 어차피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는 모두가 선생님이자 학생이다. 이런 생경한 장면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게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학생들은 손녀뻘인 선생님께 예의를 갖춘다. 예뻐는 하되, 우스이 여기지는 않으신다.


 야학은 이런 곳이다. 세상의 질서와 다르게 움직인다. '나이가 환갑인데 이제 와서 뭘 새로 시작해. 건강을 생각해서 집에서 편히 쉬세요' 같은 통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선생님 활동도 마찬가지다. '퇴근하고 수업을 해주러 간다고? 부업이야? 그거 하면 얼마 주는데?'라는 반응을 종종 등곤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억지로 하는 거였으면 절대로 저녁에 이곳에 다 같이 모일 수 없다. 일하느라, 가족을 돌보느라 낮을 다 보낸 뒤에야 공부할 짬이 난다. 이 고단한 일을 누가 강제로 할 수 있을까.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각자의 로망을 위해서 제 발로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공간이 하나라도 있어서, 내가 꾸려가고 있어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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