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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Aug 15. 2024

예술은 피난처이자 휴식처

버린드 드 브렉커 Berlinde de Bruyckere 전시 리뷰

출처 : Condé Nast Traveler

베네치아 본섬의 중심 산 마르코 광장에서 수상버스 2번을 타고 S. Giorgio 역에서 내리면 전시가 진행 중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도착한다. 하나의 섬 안에 오롯이 존재하는 팔라디오식 성당과 수도원.  베네치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종탑을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벨기에 출신의 작가 버린드 드 브렉커 Berlinde de Bruyckere의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 City of Rifuge III가 진행 중이다.


작가가 속해있는 갤러리 Hauser & Wirth의 소개에 따르면 작가는 밀랍, 동물 가죽, 털, 직물, 금속, 나무를 주 재료로 사용하여 유기적 형태의 섬뜩한 왜곡을 표현하며 인간과 동물의 연약함과 취약성, 고통받는 몸, 자연의 압도적인 힘으로부터 모티프를 얻는다고 밝혔다. 한편 플랑드르 르네상스 미술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유럽의 고전 미술과 가톨릭 도상학, 신화와 전통문화에서도 영감을 받아 현재 우리가 겪는 사건들을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였다. 그 안에서 주로 사랑과 고통, 위험과 보호, 삶과 죽음 등과 같이 이중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종교적 의미에 치우쳐진 작가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그의 작품은 신학적 주제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세속적 의미도 포함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중앙 복도 (신도들의 자리)에 위치한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하체만 드러낸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형태를 만난다. 심지어 하나도 아닌 셋으로 대천사 1, 2, 3으로 불린다. 우리가 아는 천사가 아닌데?

V. Eeman, 1999 / 출처 : MutualArt

대천사의 형상은 위 사진에서 보이는 1999년 작품 V. Eeman에서 시작된 인물이다. 

양동이 위 담요를 둘러싸고 상체를 모두 가린 채 시야를 차단하며 서있는 신원이 불명확한 인물. 이는 고문에 시달리는 정치범이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을 의인화한 것으로 그 의미와 형태가 확장된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천사들인 것이다. 

Arcangelo II (San Giorgio), 2023-2024

하늘에 올라가는 중인지, 육지로 착륙을 하는 중인지 알 수 없는 발돋움을 하고 서 있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 자 메신저, 인간을 보호하고 중보를 보증하는 존재이지만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는 다르게 낡디낡은 담요를 두른 채 성한 곳이 없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오고 가는 매개자로서의 모습이라기엔 신성 모독 수준의 외형이다. 


버린드의 대천사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만들어졌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대천사들은 팬데믹 기간의 간호사, 구조 대원, 의료진 등 사회적 맥락에서 고립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리얼한 신체 표현과 비현실적인 비주얼이 만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영적이고 신성한 초월적 영역인 하늘의 차원을 우리 눈앞에 실제 하게 하며 관람객의 발길을 연신 붙잡는다.

여전히 코로나는 존재하지만 락다운 사태는 끝난 지금, 누군가를 죽음에서 건져낸 자들의 영혼이 성당의 중앙 복도에서 편히 쉬길 바라는 작가의 바램 아니었을까. 

전시는 성구실로 발길을 유도한다. 의식에 쓰이는 도구나 의상을 보관하는 방 전체를 거대한 나무들이 자리한다.

City of Refuge I, II, III, 2023-2024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명을 다 한 나무들은 밀랍에 용해되어 동결되었다. 유기적 형태를 여전히 갖추고 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아 변화된, 자연적이지만 인조적인 양면적 상태가 공존한다. 

죽은 나무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나무의 결, 변형되어 새로운 형태를 갖춘 모습은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 움직임을 보인다. 나무의 삶은 끝났지만 인간의 손이 닿으며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된 것이다. 주로 작가가 연구하는 주제 중 삶과 죽음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작가에게 피난처에서 쉬어갈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닌 생명을 가졌던 모든 것에 - 그것이 자연일지라도 - 해당된다. 


성구실은 평소라면 그저 종탑을 오르기 위해 지나가는 닫혀있던 공간이라 볼 수 없었는데 비엔날레를 통해 방문 가능했던 점이 참 좋았다. 


Need II, III, I, 2023-24

수도원 안쪽 깊은 곳까지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리 캐비닛 안에 들어있는 신체들. 마치 실험체 같아 보이기도 한다. 

교회의 성가대석과 제단이 놓이는 자리인 내진에 위치한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성 베네딕토가 육체적 유혹을 이기고 신에게 복종하는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가시 덤불 속으로 몸을 던진 장면을 참고 한 것이다. 

영혼의 상처를 육체적 상처로 이겨내고 영혼을 흠집 내는 육욕적 생각을 태워버린다는 성 베네딕토의 이야기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책 Dialoghi에서 언급된 것이다. 


왜 하필 하체일까. 인간의 연민이나 감정이입은 얼굴의 눈과 표정에서 더욱 깊은 동요를 가능케 하는데 하체는 표정도 없고 그저 상태만 있을 뿐이지 않나 싶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이중적 메타포의 향연인 드 브렉커의 작품에서는 표정이랄 것이 없는 신체 부위가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an S, 2004 / Foot, 2008

절단되고 상처 입은 육체가 왁스와 용해되어 예술작품이란 것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마치 성물처럼 고이 모셔지고 진열되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삶이란 것을 부여받는 작업, 그야말로 예술로서 안식처로 돌아오는 작업인 것이다. 

Arcangelo glass dome IV, 2023

이 신체들은 만들어진 것이지만 진짜로 사람의 것과 같은 형상을 띄고 있으며 작가의 전체적인 작업을 - 죽은 말을 사용한다든지, 버려진 동물 가죽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 함께 돌아보면 생태계 최고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삶과 죽음, 영혼 있음과 없음, 현실과 허구 사이의 일시성에 주목하는 작업을 통해 오히려 현재를 인식하게 하고 일상에서 잊고 있던 연민이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연민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살다 보니 잊고 지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Anderlecht 시리즈, 2018-19

벨기에 안데를레흐트의 가죽 판매점에 방문했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여있는 작품들이다.

진짜 동물의 가죽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왁스와 에폭시, 청동, 때로는 동물의 털로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 적재된 난폭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목격한 도축 산업의 과정이 대량생산의 기계적이고 비인간화된 절차 속에서 동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그것이 '의식적 ritual 행위'가 된 지금의 현실을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가죽을 생산하기 위해 도축을 하고 가죽을 벗겨내며 등급을 매기는 일련의 과정들이 작가에게는 어떠한 의식적 행위로 다가왔고 가죽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이 씨를 뿌리는듯하게 느껴졌으며 이보다도 죽음과 삶이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밝혔다. 염을 치는 작업, 즉 죽음이 생명을 심는 씨 뿌리기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물활론적 사고를 차치하고서라도 염치기와 씨 뿌리기는 같은 제스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 생각되지만, 생명이었던 모든 것들은 위로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작품세계를 보면 이해가 간다. 

Liggende - Arcangelo I, 2022-2023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누워있는 대천사가 우리를 맞이한다. 본인의 관인지 혹은 죽은 누군가의 관인지 제단인지 모를 사각형의 받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천사가 누워있는 이곳이 그에겐 대피소이자 안식처가 되었을 뿐. 

시간과 공간의 모호함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알게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전시 내내 진열된 대천사의 발은 눕지 못하고 서있는 자세를 유지했는데 전시 마지막에서야 누워 있는 발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상 도시의 특수성으로 인해 5세기부터 피난처 역할을 했던 베네치아. 그 안에서 교회와 박물관들 또한 오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안전한 장소가 되어준 곳. 

피난처로서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전시 또한 포용과 개방의 장소로 변모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보호소를 자처한다. 


전시는 올해 11월 24일까지 계속되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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