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바티칸 (교황청) 파빌리온
118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베네치아. 그중 베네치아 본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주데카 Giudecca라는 섬에 여성 교도소가 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2번 수상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하는 그곳에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첫 참가를 한 바티칸 (교황청) 파빌리온이 자리하고 있다.
구글 맵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면 위 사진에 보이는 노랜 팻말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 앞에서 예약한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으면 교도관들이 나와 신분증을 가져간 다음 방문자 목걸이를 주고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맡기도록 한다. 핸드폰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가 준비가 되면 지체 없이 사물함 왼쪽 입구로 가 문을 열며 전시가 시작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 Con i miei occhi (나의 눈으로)는 구약성경의 욥기 42장 5절의 "내 눈이 주를 보았나이다" 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1의 "내 눈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에서 사용된 구절을 - 눈으로 상대를 사랑하지 않고 다섯 가지 감각이 사랑하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으로 사랑한다는 이야기 - 인용한 것이다. 본다는 것에 초점을 둔 전시는 단순히 시각을 통해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눈으로 본다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에서 행해지는 파괴적이며 예언자적인 상황을 문제 삼고 여기서 벗어나 다른 문화적 방향으로 시각을 돌려봄을 제안하고자 선택했다고 호세 톨렌티노 드 멘동사 추기경이 밝힌 바 있다. 시각을 초월한 마음으로 보는 것을 안내하고 있다.
선택적으로 정보를 보거나 인위적인 알고리즘으로부터 내 입맛에 맞추어진 정보를 당연하고 유일한 정보라고 보고 믿는 것의 파괴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부작용을 (이것을 예언자적이라 이해함, 미래에 당연히 수반되는 부작용이기에) 사회에서 삭제된 - 그러나 사회로 돌아올 사람들인 - 여성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함께, 어쩌면 그들이 기꺼이 예술의 명분이 되어 예술, 시, 인간성 그리고 돌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제일 첫 번째 기관인 눈인 시각을 주제로 사용하여 전시를 꾸린 것이다.
제일 처음 인상 깊었던 것은 두 명의 교도관들의 손에 쥐어진 열쇠 꾸러미였다. 아날로그 이탈리아지만 열쇠가 우리가 아는 그런 뾰족 열쇠가 아닌 정말 중세 철창을 닫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 같은 굵은 쇠 열쇠였는데, 그런 열쇠를 적어도 열 개 이상, 아니 스무 개쯤 들고 다니며 관람객의 동선을 확보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교도소는 생각보다 교도소 같지 않았다. 그저 베네치아 어느 동네 벽돌 골목 같은 모습. 배수관과 전기나 에너지를 컨트롤하는 두꺼비집 같은 것들이 초록색과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경쾌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도 했으니까.
제일 먼저 입장한 곳은 교도소 내 카페테리아였다. 이곳에는 수녀 예술가 코리타 켄트 Corita Kent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카페테리아 책상 내에 마련되어 있는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의 도록을 보고 있으니 교도관 외 두 명의 다른 인물들이 나와 인사를 한다.
교도소 내 재봉실에서 직접 만든 가운을 입었다는 두 여성은 이 교도소의 실제 재소자들이었다. 재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전시의 해설 또한 재소자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바로 우리가 있던 카페테리아의 코리타 켄트 작품을 설명해 주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했다.
다음 작품은 교도소 야외 벽에 걸려있는 시몬 파탈 Simone Fattal의 연작으로 화산암으로 만든 에나멜 판에 재소자들이 지은 시와 셰익스피어와 시 그리고 시인 에텔 아드난의 문장을 구현하여 재소자들의 자아의 발견 그리고 서사를 나타낸 작품이다. 본격적으로 확실한 글을 전달하려는 의도라기보다 개인의 이야기를 예술 작품으로 시각적 임팩트를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로 다가왔다. 어떤 패널은 잘 쓴 글씨로 쓰여진 반면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언어와 그림이 섞인 패널로 있었다.
제대로 읽고 싶었지만 관람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두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눈으로만 보면서 지나간 것이 아쉬웠다. 가이드는 인터넷에 치면 이 시들을 읽을 수 있다며 꼭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고까지 추천했는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안 나온다..
'보는 것'의 파괴성은 시몬 파탈의 작품이 걸린 긴 복도 끝에 위치한 클레어 퐁텐 Clair Fontain의 네온 작업에서 만날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차단된 이미지를 표현할 때 쓰는 금지된 눈 표시. 금지 표식을 인터넷 바깥으로 꺼내와 네온으로 구현하며 우리가 평소에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진실에 대한 비유를 나타낸다. 재소자 가이드가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구별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작품이며 정보의 선택적 수용이 주는 폭력에 대한 것이라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보다 더 와닿는 설명이 어딨을까 싶다.
문을 열고 다음 장소로 들어가면 우물이 있는 운동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으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밖으로 나와있는 다른 수감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들 태연히 행동하길래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여긴 수감복을 안 입네?" 같이 갔던 친구의 한마디. 그러고 보니 여기서 만난 모든 수감자들이 사복을 입고 있었다.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클레어 퐁텐을 만난다. Siamo con voi nella notte, 우리는 밤에도 여러분과 함께한다 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네온사인 작품이다. 1970년대 이탈리아 교도소 밖,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등장했던 문구로 자유로운 삶의 상징을 뜻하는 동시에 편견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는 교도소 내부에 설치되어 밤이 되면 파란 불빛을 내뿜으며 위의 사진과 같이 교도소의 밤을 밝히고 있다.
70년대의 상징보다도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가운데 삭제된 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비록 사회에서 밀려났지만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밤을 보내며 여전히 이곳에 있다고.
다른 전시장으로 가는 도중 작은 텃밭이 나오며 잠시 멈춰 설명을 듣는 구간이 나오는데 그곳은 교도소 내 유일하게 쇠창살이 없는 창문이 있다. 창살이 없어도 교도소 내부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 재소자가 힘을 주어 말하니 유일하게 창살이 없다는 점과 더불어 크게 와닿았다. 다른게 예술이 아니고 그 창문 하나가 굉장한 의미를 가진 예술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텃밭은 수감자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으로 그곳에서 나고 자란 채소나 식물들을 베네치아 장터에 가져다 팔고 때로는 크림을 만들어 팔며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베네치아 내 빨랫감을 세탁하여 보내는 것 또한 본인들의 일이라 하였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교도소 출구 앞에서 곱게 다려져 세탁소 티켓이 붙어있는 수많은 셔츠들을 보기도 했다.
실제 재소자들의 적극적인 연기 참여로 만들어진 마르코 페레고 감독과 할리우드 배우 조 샐다나 주연의 진정한 자유의 더 깊은 의미를 담은 짧은 비디오를 보고 나면 전시는 후반부로 치닫는다. 영상을 보고 나오니 한 재소자 가이드가 질문 있냐고 묻자 어떤 이탈리아 아저씨가 물었다. "영상 속 장면들 100% 실제에요?" 아마 감방 실내 모습이 나와서 묻는 질문이었겠지. 그리고 가이드는 단호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답했다. "네, 실제 그대로에요".
그리고 자리를 옮겨 마주하는 클레어 타부레 claire tabouret의 작품. 재소자들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날, 그들의 가족 등 개인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진을 토대로 그려진 초상화들이다. 묘사된 인물의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인생 요약본이라 할 수 있는 초상화는 이번 기회에 수감자들의 자아 발견을 돕고 본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며 인간으로서의 유일함을 기념하도록 한다.
바로 옆 작은 성당에서 소니아 고메즈 Sonia Gomes의 작품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수감자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재소자들을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닌 전시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여성 구치소이기 전에 원래는 수녀원이었던 곳. 개심(改心, 잘못된 마음을 바로 고침)의 수녀원이란 이름으로 지어져 운영되다 군 병원으로 사용되고 현재는 여성 교도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있는 5곳의 여성 구치소 중 한 곳, 개종자들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에 재소자들의 교향곡이 펼쳐진 것이다. 작품은 설치된 음향 작품과 함께라는데 내가 갔을 땐 음악 없이 설명으로만 채워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설치된 작품이 전시 마지막에 있으니 마치 개심을 통해 온전한 자유를 바라는 마음을 비유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느낀 점으로 담아두려 했다.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전시를 보기 전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것이 쉬이 일어나는 평범한 일은 아니기에 굳이 저들의 목소리를 예술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허나 동시에 분명 죄를 지어 들어온 교도소이지만 이 죄라는 것이 억울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죄였다면? 내가 숨 쉬듯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이유나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미래에 사회로 복귀해야 할 사람들의 재활 혹은 돌봄의 차원에서의 예술이라면 이해되겠다 싶었다.
보고 나오면서 '색다른 경험이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동시에 그런 내가 수치스러웠다. 감히 저들의 상황을 '색다른' 경험으로 분류하는 게 맞는 것인지. 사람은 경험하지 전까지 온전히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고작 한 시간 남짓의 전시로 이해가 가능한 것인지. 전시 전반의 예술적 활동에 수감자들이 동의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들 나의 시선이, 전시 제목처럼 나의 눈이 그들을 타자화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분명 큐레이터 부르노 라신의 인터뷰에서 재소자들이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 주인공의 자리에 선다 하였지만 오롯이 각 개인의 이름이 아닌 전시에 참여한 '재소자들' 이란 명명으로 불리는 것이 예술이 그들을 이용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의 상황이 누군가에겐 '신선한 경험'과 베네치아에서의 '투어'가 될 수 있는것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그러나 끝내 수감자들의 사회와의 접촉 시도라는 측면에서의 예술로 이해하기로 했다. 예술이 개입하여 외국인들보다 -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가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이다 - 더 가까운곳에 있지만 일상에서 그림자조차 삭제된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손전등을 켠 것이라면 말이다.
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바티칸 파빌리온
Con i miei occhi (With my eyes)
2024년 4/20~11/24
참여 작가 : 마우리치오 카텔란, 뱅투 뎀벨레, 시몬 파탈, 클레어 퐁텐, 소니아 고메즈, 코리타 켄트,
마르코 페레고&조 샐다나, 클레어 타부레
무료 / 예약 필수 (신분증 지참 필수) / 이탈리아어 진행
예약자 본인이 각각 진행해야 합니다. (아래 예약 페이지)
https://www.coopculture.it/en/events/event/con-i-miei-occhi-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