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가 추천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외부전시
베니스 비엔날레는 다 봤고, 그 외의 현대미술 전시를 보고 싶으신 분들 혹은 베니스를 여행하는데 미술 한 스푼 얹고 싶은 분들께 미술이론 전공자가 추천하는 전시 리스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미술사 및 미술이론 전공 중입니다)
<Lee Bae 이배 -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달집 태우기>
2024년 4.20~11.24 / Wilmotte Foundation /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 무료
서예 할 때 쓰는 먹을 하나의 조각으로 만든 거예요. 먹의 느낌을 주는 검정 화강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예는 먹으로부터, 먹은 숯으로부터, 숯은 불로부터 오는 그런 연결성을 생각하며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500
나쁜 것은 보내고 복을 부르며 풍년을 빌기 위해 태워지는 정월 대보름날의 행사 달집 태우기.
세계 각지에서 온 소원들이 태워지며 생성한 숯 가루가 먹이 되어 붓질(Brushstroke)로서 존재한다.
불-숯-먹의 순환이 대한민국 경북 청도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전시장 한 편의 노란 보름달이 소원들을 따스히 데운다.
이탈리아 제지 회사 '파브리아노'의 종이가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작가는 한 번의 붓질로 공간을 재탄생시켰다. 붓질이 먹을 통해 흔적을 낸 모습을 보면 작가의 힘찬 움직임을 상상케 한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먹이라는 재료와 서예 기법은 평소 아시아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 유럽인이라면 생경한 모습일 터. 전시를 구경하는 내내 프랑스 가족도 함께였는데 입구에 세워진 작품 Issu du Feu, 2004를 보며 한참을 토론하는 모습을 보았다.
체험형 전시에 가까운 이 전시에서 큐레이터의 반짝이는 역량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동양화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베네치아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Yu Hong 유홍 - Another One Bites the Dust>
2024년 4.16~11.24 / Chiesetta della Misericordia / 무료
1966년 중국 태생의 작가 유홍. 나에겐 그녀의 중국이라는 출신지가 강력한 어필이 되었다. 한방이 있는 중국 작가들. 그래서 실제로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였다.
작가는 인간의 탄생부터 살면서 마주하는 경험들 그리고 죽음까지 삶의 순환을 이야기를 한다.
본 전시의 장소는 기원전 939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들에 의해 설립되어 여전히 인간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고 있다. 태어나 죽기까지 인생의 순환을 함께하는 교회라는 장소적 특성이 어떠한 삶의 형태나 상황을 괜찮다 말하는듯하다. 자비의 교회 Chiesetta della Misericordia라는 이름만큼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적, 예술적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확대하여 가져왔다. 유럽 미술관에서 흔히 보이는 성스러운 황금색 제단화 위 구현된 것은 가톨릭 성인의 이야기가 아닌 폭력과 허무로 가득 찬 인간의 일상적 투쟁이다. 빠른 세계화로 인한 일상 속 급진적인 변화들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불안정성은 비틀어지고 알 수 없는 형태의 인물들에게서 느낄 수 있다.
전시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삶을 알기 전에는 죽음을 알 수 없다'이다.
<Daniel Arsham 다니엘 아샴 - VENICE 3024>
2024년 4.17~9.15 / Chiesa di Santa Caterina / 무료
작가의 주된 작품 활동의 주제는 허구적 고고학이다.
고대의 유적과 현대 유물들이 미래적 형태와 결합하며 새로운 시간대를 형성한다. 지금 여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또한 유물이 되어 쇠퇴할 것인지 미래로 갈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루브르 박물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등에서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익숙한 작품들을 선택했다. 이 조각에 사용된 재료들 - 장미석, 블루 칼사이트, 화산재, 하이드로 스톤 등 자연에서 온 물질- 은 유물 자체의 쇠퇴를 강조하고 자연 재료의 특징인 재생 또한 강조하며 쇠퇴와 재생이라는 순환 속 시간의 경계를 더욱 흐린다.
조각, 회화, 모자이크를 넘나드는 방대한 테크닉은 선택된 상징적 이미지들로 하여금 집단 문화 기억의 영속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대형 회화 작업물을 보고 있으면 아샴은 팔방미인이라 생각이 든다.
그림 앞에서 미스터리한 발굴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경험은 경건함 마저 느끼게 한다. 허구 속 재현이 실제로 느껴지게끔 하는 것이 아샴 작업의 목적이 아닐까.
지금도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현대 문명의 아이콘 (스타워즈의 캐릭터 C-3PO)의 천년 뒤 발굴.
그리고 고전 아름다움의 아이콘과 AI를 통해 구현된 미래적 아이콘의 병치는 (Fractured Idols 시리즈) 과거와 미래를 이으며 보는 이에게 시간여행을 선사하고 끝에는 관람자의 현재를 조명케 한다.
서울 롯데 뮤지엄에서 전시도 진행 중이다. 24년 10월 13일까지.
(지금까지의 세 전시장은 모두 모여있어 편리하고 빠른 이동으로 감상이 가능하십니다)
Berlinde De Bruyckere 버린드 드 브렉커 : City of Refuge III
2024년 4.20~11.24 / Abbazia di San Giorgio Maggiore /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 무료
감히 반드시 봐야 할 전시 중 하나라고 추천드릴 수 있는 버린드 드 브렉커의 전시.
하나님의 종이자 메신저, 인간을 보호하고 중보를 보증하는 존재인 대천사가 수도원 전체에 자리한다. 허나 그 모습은 인간과 천사 그리고 괴물 중간인듯하다. 담요를 둘러싸고 그 무게에 허덕이는 힘없는 영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권위를 잃어버린 모습의 대천사들은 신의 종노릇을 본인이 닳고 닳아질 때까지 수행하고 끝내 대성당에서 잠든 듯하다.
버린드의 대천사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만들어졌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대천사들은 팬데믹 기간의 간호사, 구조 대원, 의료진 등 사회적 맥락에서 고립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동물, 자연(나무), 인간의 형상을 한 - 주로 왁스, 동물의 털, 실리콘, 에폭시, 철 등으로 만들어짐 -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을 채우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아도 맥락이 있는 작품들로 굉장히 흥미로운 여러 가지 비유를 담고 있었다.
할 말이 많은 상태라 이쯤에서 정리하고 따로 리뷰를 작성해 링크를 걸도록 하겠다.
바티칸 파빌리온 - With my eyes
24년 4.20~11.24 / Casa di reclusione femminile di Venezia-Giudecca / 비엔날레 국가관 / 무료, 예약 필수
바티칸 파빌리온, 다른 말로 Santa sede 즉 교황청 파빌리온은 베네치아 주데카 섬에 위치한 여성 교도소에서 진행된다. 참여 작가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뱅투 뎀벨레, 시몬 파탈, 클레어 퐁텐, 소니아 고메즈, 코리타 켄트, 마르코 페레고&조 샐다나, 클레어 타부레이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내외.
함께 움직이는 교도관들과 전시 설명 전체가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만큼 온전히 이 전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다녀왔다.
실제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교도소 내부에서 작품들을 관람하는 형태인지라 여권이나 신분증을 맡겨놓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은 뒤 입장하게 된다. 두 명의 재소자들이 돌아가며 작품 설명을 해주는데 질문 시간도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으나 이것을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소개해도 될까 싶은 경험이었다.
이 또한 할 말이 많은 관계로 바티칸 파빌리온 리뷰를 따로 작성하도록 하겠다. (최대한 빨리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