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관 리뷰
이토록 새하얗던 폴란드관이 붉게 물들었다.
올해의 폴란드관은 오스트리아관과 마찬가지로 국가관을 대표하는 작가를 자국 태생 작가가 아닌 외국인 작가를 선정하여 우크라이나 예술가 집단 OPEN GROUP이 자리하였다. 전시 작품인 <Repeat after me II>는 2022년 선보였던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물 <Repeat after me>와 궤를 같이한다.
공간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마주하는 벽의 - 왼쪽엔 2022, 오른쪽엔 2024라는 - 붉은 네온사인을 지난다. 따라 들어가면 캄캄한 블랙박스 안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를 마주하게 된다. 비디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희한한 소리를 입으로 내며 자신을 따라 해보라 말하고 있다.
“붐! 붐! 붐!” 화면 아래에는 그들이 내는 소리를 따라 노래방의 가사처럼 단어들이 지나간다. 알 수 없는 소리는 리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분명한 건 행복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주인공들의 얼굴을 통해 단번에 알 수 있다. 주인공들이 선창하고 관객에게 제창을 요구하며 침묵 속에 하단 가사가 흘러갈 때엔 앞서 재현된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할 즈음에 영상이 끝난다.
그리고 짧은 설명과 함께 다음 영상이 시작되는데, 공습경보에 관한 설명이다. 이 소리들은 영상의 주인공들이 직접 겪은 전쟁 소리였다.
왼편 2022의 화면도 켜지며 다르지만 비슷한 소리가 재현된다. 2022는 2022년 2월 24일 새벽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던 해를 뜻한다. 해당 영상은 침공 직후 동 우크라이나를 떠나 서쪽 도시 리비우에 피난을 간 국내 난민들의 소리를 담은 것이다. 그와 마주 보는 2024의 영상은 2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흩어져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의 기억을 다시 담아 비엔날레에 가져온 것이다. 2년이 지났지만 주인공들의 기억 속 공습경보, 기관총, 대포 등의 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듣고 있을 진행 중인 이야기이다.
우크라이나를 떠나 비엔나, 베를린, 빌뉴스, 뉴욕 등지에 자리를 잡은 주인공들의 재현은 분쟁이 없는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의 고요한 일상 소리와 대조되어 매우 불안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모두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어느 곳도 완벽하게 안전한 곳은 없다 말하고 있다.
작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시작했지만 지금도 이유 없이 영상 속 주인공들과 같은 소리를 듣고 있을 어떠한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덤덤하게 배치된 글과 영상 속 주인공들의 눈은 어느 연극적 장치보다 강력하게 다가온다.
2022년을 지나 2024년, 전쟁은 누군가에게 일상이 되었다. ‘전쟁’과 ’ 일상’은 함께 배치될 수 없는 참으로 다른 명사이다. 일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나의 일상을 살아가며 잊고 있었다. 지금 안락하게 누리고 있는 이 일상이 부끄러워지는 경험이었다. 그들의 경험을 공유받은 내가 리뷰를 쓰며 그 경험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더 기억에 새기며 그들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부디 전해지기를 바란다.
하루에 많은 국가관을 가야 하기에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하는 비엔날레에서 제일 오랜 시간 발길을 붙잡았던 폴란드관. 어떠한 코멘트도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 글의 분량이 많이 나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게시를 하였다. 아무 기대를 안 하고 들어간 파빌리온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일주일이 지나도 진하게 남아 다시 찾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좋아 미술 이론 전공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미와 추의 여부가 무조건 좋은 작품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 시대성을 담는 분명한 메시지의 작품을 볼 때면 그 우아한 표현 방법에 감동받아 후련함마저 들게 되면 좋은 작품을 만났다 느껴지는데 폴란드관이 그랬다.
제목 사진 출처: Artbo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