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6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미술 박람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한 작품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원명 ThéâtreD'opéraSpatial)'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그림을 그려주는 AI 프로그램으로 그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리지 않은 이 그림이 과연 수상작으로 정당한가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대회에 출품하는 작품은 당연히 작가라는 '인간'이 개입한 작품일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인간이 그리지 않은 AI 그림을 과연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논란도 제기된다.
우승작인 제이슨 앨런이 출품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2022
하지만 논란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됐다.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AI가 그린 줄 인식하지 못했지만, 디지털아트 부문 규칙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을 창작 과정에 사용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고, 출품자도 출품자 이름을 ‘미드저니를 사용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이라고 해 미드저니 사용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되어, 출품자가 1등 상금 300달러(한화 약 42만 원)를 받는 것으로 이 소동은 정리되었다.
그러나 바로크 형식의 둥근 창을 중심으로 세 명의 출연자가 공연하고 있는 오페라 극장을 재현하고 있는 이 그림은, 사전에 심사위원이 ‘미드저니’라는 AI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출품자도 이 그림을 회화의 형식으로 그렸다면, 과연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최고상으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AI가 그렸다고 하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당연히 디지털아트 부문의 수상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대의 디지털 아트가 주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을 재현한다는 특징으로 볼 때 이 그림은 인터넷에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조합해서 만든 복제적 이미지를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기존 이미지의 잘 정돈된 또 다른 이미지인 것이다. 범용적으로 사용된 AI그림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미술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인 예술성과 창의성이 결핍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만든 결과물이 예술품인지 아닌지 논란과 더불어, 인간만이 예술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지지자들이 있듯이 인공지능 AI의 예술 활동을 창작의 영역으로 지지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시대 변화에 따른 AI의 출현이 우리들에게 논란을 초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오늘 이야기는 AI가 만든 예술작품에 관한 것이다.
구글이 개발한 AI 그림 프로그램 '딥드림'
독자들 누구나 AI 하면 구글의 알파고 (AlphaGo)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게 AI를 각인시킨 사건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서울에서 진행된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와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간 바둑 대결이었다. 바둑 AI 프로그램과 인간 바둑기사의 대국에서 결국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함으로써 AI의 우수성과 존재감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구글은 이보다 약간 앞선 2016년 2월 알파고에서 선보인 딥 러닝을 적용한 AI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인 ‘딥 드림(Deep Dream)’을 개발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재현케 했다. ‘딥드림’은 기존에 학습한 명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11명의 프로그램 엔지니어가 AI의 프로그램에 개입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그려냈다. AI가 재현한 29점의 작품은 그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선 경매에서 한 점 최고가 8000달러(1150만 원)를 비롯해 총 9만 7000달러(약 1억 3970만 원)에 판매되는 기록을 낳았다.
딥드림이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학습하고 그린 그림 .2016
위의 이미지는 당시 AI ‘딥드림’이 선보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학습한 다음 만들어낸 이미지다. 밤하늘을 AI는 괴기한 모양의 새(bird)로 인식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고, 건물 등의 이미지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닌 초현실세계의 어지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초기 AI의 그림 수준을 보여준다.
비록 구글 제국이라고 일컫어지는 거대 자본의 '딥 러닝'을 알리는 상업적 의도가 엿보이는 이벤트적인 성격이었지만, AI가 그린 최초의 그림들이 경매시장을 통해 미술애호가의 수집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만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AI의 첫 도전이었다.
진화한 AI, 예술작품의 영역에 도전하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더 진일보한 AI 그림 프로그램이 선보이게 된다. 바로 ‘아이칸’의 탄생이다.
‘아이칸(AICAN: AI Creative Adversarial Network)은 2017년 2월 미국 럿거스대학교 예술·인공지능 연구소(Rutgers Art & AI Lab)에서 만든 사람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AI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이다. 아이칸은 미술 분야에 적합하게 개량한 '창조적 적대 신경망(CAN: Creative Adversarial Networks)'이라는 새로운 자체 개발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했다. 인지 심리학자 콜린 마틴데일(Colin Martindale)의 이론을 응용한 '창조적 적대 신경망(CAN: CreativeA dversarial Networks)'이라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다.
우선 창조적이란 용어를 알고리즘에 적응한 과정을 쉽게 설명하면 이런 방식이다.
우리가 미술가라면 그동안 업적을 이룬 많은 예술가들의 그림에 영향을 받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기존의 형태와 주제, 스타일은 진부함을 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가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바로 이런 창조성의 원리를 새로운 AI프로그램인 아이칸에 적용한 것이다. 즉 AI로 하여금 기존의 이미지를 조합, 변조, 응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게끔 설계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칸은 두 개의 반대 세력과 싸우도록 강요하는 '창조적인 적대 네트워크(CAN: Creative Adversarial Networks)' 알고리즘을 통해 한쪽에서는 기존의 예술 작품의 형태를 익히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확립된 스타일을 너무 가깝게 모방하면 처벌받는 '적대성'을 갖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 방식으로 아이칸을 유명 작가들이 물감을 쓰는 스타일이나 점묘법과 같은 기존의 독특한 표현형식까지 딥 러닝을 통해 학습하게끔 했다. 이 학습에는 1119명의 화가가 그린 8만 1449개 작품의 이미지가 활용됐고, 거기에는 우리가 흔히 추상표현주의라고 일컫는 추상화까지 포함됐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칸은 기존의 AI와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이칸이 그린 '용을 죽이는 성 조지(St.George Killing The Dragon)
위의 그림은 2017년 11월 뉴욕경매에서 1만 6000 달러(2300만 원)에 판매된 아이칸의 첫 번째 작품인 "St. George Killing the Dragon"이다.
AI가 그림의 제목도 기존에 작가들이 그림 제목을 정하는 방식을 딥 러닝해 스스로 정했다. 그림의 내용도 상당히 반추상적이고, 현대적인 기풍의 그림이다. 이후 개최된 아트바젤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다수의 관람객은 작품이 심오하고 영감을 준다는 답변을 했고, AI의 결과물이란 말을 듣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최초의 AI 휴머노이드 로봇 화가 '아이다' 등장
2019년 영국에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형태인 AI 화가가 등장했다. 바로 세계 최초로 인간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화가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다(Ai-DA).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의 미술 딜러인 에이단 멜러(Aidan Meller)의 기획으로 출발해 리즈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자들이 합작해 만든 세계 최초의 AI 휴머노이드 화가 로봇이다. 이전의 AI 프로그램에 인간모양의 로봇이 결합된 형태인 것이다.
작업실의 인공지능 AI 휴머노이드 로봇화가 '아이다(Ai-DA)'
로봇 화가 아이다(Ai-DA)의 이름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있다. 영국 시인인 바이런의 딸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AI로봇 화가는 이런 이유로 여성복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녀는 작품을 만들 때 눈에 설치된 카메라로 통해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작업을 수행한다. 오노 요코와 칸딘스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그녀의 작업은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기존작가가 작업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것과 다르고, 웬만한 화가보다 훨씬 빠르다. 2020년에 개인 전시회를 개최해 100만 달러(약 14억 원) 이상의 작품 경매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예술의 영역에 파고든 인공지능, 그 미래는?
우리에게 ‘알파고’로 AI의 존재를 알린 AI의 시대는 자율자동차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미술에서도 AI를 활용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프로그램인 ‘미드저니’를 이용해 일반인이 작품을 만들어 미술박람회에서 우승을 하는 수준까지 범용화 되고,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들도 출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가 인류가 남긴 문명사의 첫 흔적이었듯이 기술발전이 낳은 AI의 작업이 예술의 한 부분으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AI의 그림은 아무리 심층 학습해 스스로 만든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미지를 재현한 생산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술작품은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예술가의 예술적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그림은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문명사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맥락과 같은 근원적인 정신이 없다.
휴대용 튜브물감이 인상파의 등장을 도왔듯이, 인공지능 AI가 예술과 발전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개념미술의 영역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