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호박찌개, 여름의 풍경

by 수련

한여름 유례없는 무더위가 한창이다. 불볕더위 속 숨 막히는 더위에 몸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일상의 의욕이 사라진 듯 입맛도 없어지고 아침이 길어진다. 이럴 때면, 전통시장을 찾는다. 시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어울려 정겹다. 시끌벅적한 소리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나고 몸에 힘이 솟는다. 다양한 여름철 식자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 골목 채소 가판대에 놓인 오이, 고추, 가지, 녹각 등 여름 채소들이 손짓한다. 특별히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초록의 동글동글하고 윤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연녹색의 호박이다. 애호박을 몇 개 집어 들고, 애호박 찌개를 저녁 메뉴로 정한다.


애호박 찌개는 간단하지만, 건강한 맛과 따뜻한 맛이 있다. 찌개용 돼지고기에 마늘, 맛술을 양념하여 들기름에 달달 볶는다. 쌀뜨물을 부어 국물이 끓어오르면 양파와 감자를 넣고, 중간 불에서 서서히 익힌다. 새우젓으로 찌개의 간을 맞추는 게 중요 포인트다. 새우젓을 넣는 방법은 새우젓을 깔끔하게 국물만 짜서 넣을 수 있고 곱게 절구에 찧어 넣기도 하고 새우가 통째로 보이게 그냥 넣을 수도 있다.


가끔 새우를 씹는 맛도 새우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단맛으로 느낄 수 있어 대충 찧어 넣는다. 새우젓과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을 더하고, 나박나박 크게 썬 호박을 넣고 대파를 올린다. 달큼한 호박이 고기에 스며들며 시원한 국물과 부드러운 육즙이 식욕을 돋운다.


고기와 호박을 한 숟가락에 담아 먹으면, 더위에 지친 몸을 담백하고 고소한 맛으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국물이 맑고 담백하지만, 청양고추와 마늘이 어우러져 칼칼하면서도 호박의 단맛과 고기의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퍼진다. 때로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사용하여 빨간색으로 만들기도 한다. 진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속이 뜨끈하면서 국물에 밥이 잘 배어들어 더욱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든, 그 맛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던 그 찌개의 맛과 닮아있다.


애호박 찌개를 끓일 때마다 고향의 기억을 떠올린다. 호박은 키우기 쉬운 농작물이다. 산밑의 비탈진 밭에 봄이면 아버지가 몇 개의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를 두세 개씩 넣어둔다. 계절이 바뀌면서 호박넝쿨에는 노란색 꽃을 피우고 꽃자리마다 연녹색의 호박이 달려있었다.


어머니는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며 밭에서 고추와 호박을 따와 호박전도 하고 찌개도 만들었다. 한여름 저녁, 안마당에 멍석을 펴고 둘러앉은 식구들. 장마철 습도가 높아 훅하는 더운 바람 속에서도 찌개는 후후 불어가며 뜨겁게 먹어야 제맛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그 따뜻한 찌개 한 숟가락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웃음꽃이 핀다.


달큼한 애호박 찌개는 다양한 영양성분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에 적합한 착한 음식이다. 수술 후 입맛을 잃은 아버지에게, 더위에 지친 아이에게, 아무 일도 없지만 헛헛한 하루를 보내는 내게도 이 음식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몇 년 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안산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애호박 찌개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맛을 궁금해했다. 한동안 회자 되면서 유행했다. 그 찌개는 특별한 재료나 화려한 조리법이 아닌 엄마의 손맛이 담긴, 모두가 한 번쯤 먹어본 따뜻한 음식이었다.


애호박 찌개는 광주식의 빨간 맛으로 맵게 만들어도 매력 있고, 당진의 새우젓 맛으로 담백하게 만들어도 맛이 있다. 그 국물이 떠오를 때마다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속이 편안하고 가족의 따뜻함을 품게 된다. 장맛비 내리는 날 식탁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애호박 찌개 냄비는 여름날의 풍경.








[애호박 찌개 만들기]

(재료)

둥근 애호박 1개, 돼지고기 앞다리 찌개용 400g, 들기름 약간, 양파 반 개, 새우젓 1 숟갈, 청양고추 2개, 고춧가루 1 숟갈, 마늘 1 숟갈, 맛술 약간, 쌀뜨물 900L, 후추 톡톡

(만들기)

1. 찌개용 돼지고기는 큼직하게 썰어 맛술, 들기름, 마늘, 고춧가루 1스푼을 넣고 버무려 중간 불에서 볶아준다.

2. 고추기름이 잘 어우러져 붉게 올라오면 양파와 감자를 넣고 한 번 더 볶는다.

3. 쌀뜨물 900L를 붓고 10분 정도 끓여주고 새우젓 1 숟갈, 소금으로 간을 한다.

4. 큼직하게 썬 애호박과 어슷하게 썬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뚜껑을 덮고 잔불로 익힌다(너무 오래 끓이면 호박이 물컹하므로 식감을 조절하여 끓인다).




*작가의 말: 입맛을 잃은 여름날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매콤한 맛과 새우젓의 맑고 담백한 맛이 있다면 어느 쪽 냄비에 마음이 먼저 끌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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