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동동 오이냉국과 여름의 기억
7월 초, 때 이른 무더위에 수은주는 35℃까지 치솟고, 숨이 막힐 듯한 열기가 이어졌다. 일주일 내내 이어진 열대야와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는 일상을 휘청이게 했고, 고향 서산과 당진에도 홍수와 산사태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 급변하는 날씨와 그로 인한 재난은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힘든 재앙으로 당황스럽다.
예전엔 여름이 이토록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 시절의 더위는 견딜 만했고, 오히려 여름을 온전히 즐기던 날이 있었다. 어린 시절, 식구들은 더위를 피해 여름밤마다 아버지가 볏짚으로 직접 짠 멍석을 깔고, 마당에 누워 별을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는 마당에서 한 편에 쑥을 태워 모깃불을 피웠고, 하루살이와 모기를 쫓았다. 집 뒤 대나무밭에서 불어오던 청정한 바람은 더위를 잊게 했고, 가족과 함께한 여름밤의 모습은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낮의 뙤약볕에 지칠 때면 마당의 샘물가에 모두 모였다. 펌프에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몇 번을 들썩거리며 지하수를 끌어올리면, 처음엔 물이 미지근하다가 곧 얼음장 같은 물이 콸콸 쏟아졌다. 우리는 빨간 고무 함지박에 들어앉아 물놀이하고, 오빠들은 뜨거운 등에 찬물을 끼얹으며 어푸어푸 시원하게 등목 했다. 텃밭에서 자란 오이, 참외, 수박은 찬물에 담가두었고, 저녁에는 스테인리스 양푼에 담긴 오이냉국이 밥상에 올라왔다.
아삭한 오이와 참외에 깨소금이 고소함을 추가하고, 새콤한 국물은 입안 가득 시원함을 느낀다. 한 그릇의 오이냉국은 땀으로 젖은 몸과 마음을 씻어내듯 상쾌하게 해 주었다. 국수 한 덩이를 퐁당 넣어 후루룩 말아먹거나,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함께 곁들이는 냉국 맛은 잊히지 않는 여름의 청량한 맛이다.
밤이 되면 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나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북극성, 특히 견우성과 직녀성이 음력 칠월칠석 때가 되면 가까워진다는 얘기를 들으며 우리를 별나라의 세계로 데려갔다. 하늘의 옥황상제는 예쁜 손녀가 있었다. 댕기를 곱게 내리고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베틀에 앉아 부지런히 베를 짰다. 다부진 어깨와 총명하게 빛나는 까만 눈과 송충이 눈썹을 가진 견우와 혼인을 시켰다.
그러나 둘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하였다고 한다.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와 직녀를 일 년에 한 번 칠월칠석날만 만날 수 있게 했다는 얘기였다. 칠석날에는 비가 내렸는데 만나서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며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했다. 은하수에 다리를 만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까치머리를 밟고, 오작교를 건너는 견우와 직녀를 상상한다. 매일 밤 들어도 다르게 들리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그 순간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둘 잠들곤 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잠든 우리를 품에 안고, 방으로 데려가셨다.
오늘은 이십사절기 중 가장 무덥다는 “대서”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폭염경보 문자가 뜨며 더위의 위용이 대단하고, 그 열기는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무기력함을 안긴다. 그 시절의 여름이 그리운 건, 그 더위 속엔 여유와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기 위해, 그때 먹던 오이냉국을 만들어 본다. 지하수 대신 얼음을 동동 띄운 물에 오이와 참외를 썰어 넣고 새콤달콤하게 간을 맞춘다. 수분이 많은 오이는 체온을 낮추고, 체열을 완화하여 빨간 얼굴과 뜨거운 몸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며 어린 시절 여름이 흑백영화처럼 눈에 보인다. 에어컨도 없던 무더위 속에서 대밭에서 내어주는 자연 바람을 맞는다. 아이에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며 웃음을 짓게 했던 가족의 온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지만, 서로를 챙기는 소중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당의 지하수처럼, 삶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려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 시절의 샘물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오이냉국]
오이 1개, 참외 반 개, 미역 한 줌, 청양고추 1개, 홍고추 1개, 다시마 육수 2컵,
조선간장 1. 식초 3, 소금 1, 매실청 3
1. 오이와 참외를 채를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짠다.
2. 다시마 육수 2컵에 조선간장, 식초, 매실청, 소금, 설탕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들어 냉장 보관한다.
(오이냉국에 미역, 가지, 콩나물 등 취향대로 추가 가능)
3. 먹기 직전에 채소와 국물을 섞어야 아삭한 맛이 더한다. 통깨, 청양고추, 실파 등을 넣고 얼음 동동 띄워 그릇에 담는다.
*겨자소스를 만들어 아삭하게 썰어놓은 채소에 올려서 섞어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시원하고 알싸한 맛을 즐기는 오이냉채도 추천합니다.
*여름철 입맛 돋우는 음식으로 오이를 이용하여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