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보랏빛 여름의 기억

by 수련

“엄마, 할머니가 해준 그 가지나물은 왜 그렇게 맛있었어?”

“글쎄 왜일까? 똑같은 양념으로 했는데….”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물의 맛을 담백하게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유년의 고향집풍경을 떠올려본다.


여름이면 엄마의 부엌은 숨이 찰 만큼 분주했다. 집 뒤의 대나무밭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면, 숲 속 매미들이 제 목청껏 울어댔다. 부엌은 온통 김으로 자욱했고, 그 수증기가 허공에 맴돌다 엄마의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마저 뜨겁게 데워져, 부엌 안에서 숨 쉬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엄마는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앞치마 자락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매번 끼니를 준비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무쇠솥에 밥을 짓고, 조기를 찌고, 나물을 삶았다. 솥뚜껑을 열 때마다 흰 김이 ‘훅’하고 뿜어져 나왔고, 그 속에서 밥이 익고, 계란찜이 부풀고, 가지가 숨을 죽이며 익어갔다. 그 냄새는 밥 냄새인지, 채소 냄새인지, 아니면 여름 부엌의 냄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뒤섞여 ‘맛있는 냄새’가 됐다.


삼복더위에도, 엄마는 이마에 땀방울을 주렁주렁 매단 채 밭을 오갔다. 가지는 밥솥에서 찐 다음 채반에 펼친 후 샘물 앞에서 조용히 식혀, 젓가락으로 결을 따라 조심스레 찢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가지 살의 부드러움이 마치 고운 실타래를 풀어내는 듯했다. 두 손으로 꾹 짜내 물기를 털고, 잘게 다진 고추와 마늘, 쪽파,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짙은 보랏빛 ‘가지나물’ 한 접시가 완성됐다.


그날도 나는 안마당의 가장 시원한 곳 물동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가지는 왜 꼭 이렇게 찢어서 무쳐야 해?”

엄마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이렇게 해야 양념이 골고루 잘 스며들지. 먹어보면 알아.”

“그냥 썰어서 하면 안 돼?”

“그럼, 맛이 달라. 음식은 정성을 들이고 손이 많이 가야 맛이 나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말속에는 경험으로 얻은 지혜가 있었다.


아이는 부드러운 계란찜을 더 좋아했지만, 엄마는 말했다.

“가지를 먹으면 눈이 맑아지고, 예뻐진단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어린 입맛엔 물컹한 식감이 낯설었지만, 성장하면서 그 담백한 맛을 배웠다.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되어 있었다. 그 부드러움 속에 스며든 은근한 단맛과, 알싸한 마늘과 깨소금의 조합이 얼마나 오래도록 그리워질 맛인지를.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엄마의 부엌을 닮아갔다. 가지에 칼집을 넣어 구워보기도 하고, 노랑, 빨강, 파프리카와 함께 볶아 색을 더했다. 가지 탕수육도 만들었지만, 딸아이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할머니 표 가지나물을 제일 좋아했다.

“간장에 마늘, 붉은 고추 넣고 무친 그 맛이 깔끔하고 계속 당겨.”라고 딸은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린 시절의 나와 닮은 입맛이, 세대를 건너와 다시 내 앞에 있다.


시장의 진열대에서 반짝이는 보랏빛 가지를 보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계산대 앞에서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가지를 왜 그렇게 좋아해?”

으음

“보랏빛이 반들반들하고 예쁘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 늘 생각나서야.”


그 말 뒤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밭에서 바로 딴 작은 가지를 ‘아삭’ 베어 물던 순간의 달콤함과 시원함, 그리고 부엌에서 피워 올리던 뜨거운 수증기의 냄새가 아직도 가슴속 깊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여름은 나의 여름이 되고, 나의 여름은 딸의 여름이 된다. 가지를 다듬는 손끝에서 세월은 소리 없이 흐르고, 그 보랏빛은 매해 여름마다 부엌에 피어난다. 단순한 요리법의 전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전달이고, 삶의 온기를 물려주는 의식이다.


보랏빛의 가지는 가격도 적당하고 알고 보니 여름 보양 채소로 혈행 건강에 좋고 장 건강, 다이어트, 눈 건강에 좋은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여름 식탁에 최고의 식자재다. 가지 반찬은 만들기도 쉽고 먹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어쩌면 가지를 먹을 때마다 어린 날 엄마의 부엌을 소환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안엔 땀에 젖은 엄마의 머리카락, 한여름의 매미 소리, 대청마루로 스며들던 햇빛, 그리고 흰 김 속에서 피어나는 밥 냄새가 들어 있다. 나는 안다. 오늘 나의 부엌은 여전히 뜨겁고, 가지는 그대로 보랏빛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사랑은 세대를 이어가며 변하지 않는 맛이 있다는 것을….





[가지나물 ]

재료: 가지 6개, 쪽파 3가닥, 홍고추 1, 청양고추 1, 마늘 5쪽,

양념: 간장 2스푼, 액젓 1스푼, 참기름 1, 고춧가루 1, 통깨


(조리법)

1. 가지는 꼭지와 끝부분을 자르고 길게 반으로 자른 후 이등분한다.

2. 물이 끓는 찜기에 넣고 뚜껑을 덮고 4분 정도 찐다.

3. 찐 가지는 채반에 펼쳐 식힌 후 손으로 찢는다.

4. 찢은 가지는 손으로 한 움큼씩 잡고 물기를 짜준다.

5. 쪽파, 홍고추, 청양고추, 마늘은 곱게 다져둔다.

6. 큰 볼에 간장, 액젓, 고춧가루, 참기름, 쪽파, 청양고추, 홍고추, 마늘을 모두 넣고 섞어준 후 가지를 넣고 살살 버무리고 마지막 통깨를 갈아 넣어 고소함을 추가한다.

가지2.jpg 가지나물
가지3.jpg 가지구이
가지4.jpg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여름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