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보양식

삶은 국물처럼 끓는다

by 수련

여름날의 보양식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 일주일. 더위와 열대야가 일상을 무겁게 짓누른다. 뉴스에서는 아스팔트 도로가 엿가락처럼 늘어졌다고 한다. 차도를 구분하는 황색 선이 녹아내렸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118년 만의 불볕더위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해마다 심해지는 여름의 열기는 이제 기상 예보가 아니라, 문득 가슴속에서 되살아나는 오래된 기시감이 되었다.


숨이 가쁜 건 사람만이 아니다. 정원의 꽃들도 혀를 늘어뜨린 강아지처럼 주저앉았다. 가로수 잎조차 헐떡이며 이 계절을 버텨낸다. 높은 습도에 가쁘게 몰아쉬던 숨결, 젖은 윗옷, 덜 마른 장독대, 매번 새롭게 오는 듯하지만, 여름은 언제나 나에게 그때의 얼굴로 돌아온다. 가족의 지친 체력은 자연스레 보양식을 찾는다.


솥 안에 닭이 들어가고, 김이 오른다. 요즘은 압력솥이고, 닭고기는 마트에서 산 냉장 포장이지만, 국물의 뜨거움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국물은 늘 혼잣말처럼 끓는다. 물소리인지 숨소리인지 모를 그 울림은 어머니가 무심히 던지던 어린 시절의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에어컨이 없던 그때 여름은 모든 것이 숨을 헐떡이는 계절이었다. 산그늘도 말없이 움츠리고, 장독대마저 장마 냄새로 뜨겁게 부풀던 날들. 감나무잎은 생기를 잃고, 사람과 짐승이 나무 그늘에 늘어지던 오후. 동생들의 웃음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배꼽이 등에 붙을 무렵 아버지는 뒷마당으로 가셨다. 봄에 마당을 종종거리던 병아리들이 어느덧 중닭이 되어, 세상에 무거운 깃털 하나 얹은 듯 그늘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중 한 마리가 생을 마감하는 날이 되었다.


닭 한 마리로 여덟 식구가 한 끼를 해결한다. 삼계탕보다 여럿이 먹을 수 있는 닭 육개장을 준비한다. 국물의 양을 늘리기 위해 봄에 삶아 말려둔 고사리와 고구마 줄기를 넣고, 마당 끝 텃밭의 대파를 한껏 뽑아 듬뿍 넣는다. 대파가 많으면 국물이 시원하고 달큼하다. 몇 점 안 되는 닭고기 대신 고사리와 고구마 줄기가 고기 맛을 채워준다. 아버지는 국그릇에서 고기 몇 점을 어린 자식에게 건네주시고, “많이 먹고 쑥쑥 커라.” 하시고 어머니는 “국물이 보약이다.” 하시며 묽은 국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여름날 오붓하게 둘러앉아 땀을 흘리며 먹는 뜨거운 국물은 더위에 지친 가족을 일으키는 단단한 보약이다. 노란 병아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뛰놀던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조용한 침묵. 며칠 뒤, 동생들은 꼬순이의 빈자리를 알아차리고 눈물 바람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여름날의 닭개장은 사랑의 기억이었다. 어머니는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다듬고, 버무렸다. 말보다 손이 먼저였던 사랑의 언어였다.


더위에 몸이 지치고 허기진 날 마당에 뒤뚱거리는 닭이 없다. 어머니도 안 계신다. 어린 날 먹던 그 닭 육개장을 만든다. 닭 한 마리, 대파와 다양한 채소를 넣고 끓인 국물이 진하다. 시원하며 얼큰한 맛이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한다.


닭 육수에 고사리와 고구마 줄기를 넣고, 대파를 길게 썰어 오래도록 끓인다. 집에서 키운 토종닭 대신 마트의 중닭이 들어가지만, 끓는 냄비 안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앞치마와 다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팍팍하고 고단했던 삶을 인자한 미소로 버텨낸 시간. 그 모든 것이 뜨거운 국물처럼 조용히 끓고 있었다.


삶이란 뜨거운 계절, 추운 겨울을 견디며 버티는 오래 끓이는 고단한 국물 같다. 오래 끓고 나면 많은 것이 사라지지만, 남는 건 진한 고기 냄새와 국물 맛이다. 그 힘으로 이 시절을 견딘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육수 속, 여름이 한숨처럼 퍼진다. 그 속에서 지나간 여름의 그림자를 본다.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오래된 편지처럼 가슴을 데운다.



[닭 육개장 만들기]

(재료)

닭 1마리(900g), 고사리 한 줌, 고구마 줄기 한 줌, 숙주나물 250g, 느타리버섯, 대파, 양파

고춧가루 4스푼, 조선간장 3스푼, 액젓 2스푼, 생강 2쪽, 다진 마늘 2스푼, 참기름, 후춧가루


1. 닭을 찬물에 담가 핏물을 제거하고, 기름 덩어리 꽁지를 떼어낸다. 육수를 내야 하므로 찬물에 닭을 넣고 닭 비린내를 없애기 위하여 처음에는 뚜껑을 열고 끓인다. 통후추·양파 반 개, 생강 2쪽, 소주 반 컵을 넣는다. 물이 끓으면 거품을 걷어내고 뚜껑을 닫고 푹 끓여 깔끔한 육수를 만든다.


2.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 줄기는 삶아 4~5cm 길이로 자른 후 고춧가루, 조선간장과 마늘, 다진 파를 넣고 무쳐준다. 느타리버섯, 대파는 길게 썰고, 숙주나물은 살살 씻어 물기를 빼준다. (계량은 밥 수저, 부추, 쪽파 등 취향대로)


3. 푹 삶은 닭고기를 건져 뼈와 살을 분리하고 뼈는 육수에 넣어 20분 정도 더 우려 깊은 맛을 낸다. 찢어놓은 닭고기에 고춧가루, 조선간장, 마늘, 후추,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4. 닭 육수에 양념한 채소를 넣고 채수가 우러나게 20~30분 푹 끓인다. 숙주나물을 추가하고,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에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5. 국그릇에 국물과 채소를 푸짐하게 담고 살코기 무침을 얹어주면 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키는 특별한 보양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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