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기억, 여름의 별미
오랜만에 농수산물 시장에 들렀다. 어시장에는 여름의 싱싱한 해산물이 반짝인다. 단골집 옆으로 민물고기 집이 새로 생겼다. 붕어, 미꾸라지, 메기 등 익숙한 물고기들이 빨간 함지박 속에서 꿈틀거린다. 어린 시절 냇가의 양동이 속에서 파닥거리던 그 시절의 물고기이다. 7월의 여름날 시골집 마당에는 커다란 솥을 걸고 어죽을 끓여 동네 이웃 친지들과 나누어 먹던 그리운 시절이 떠오른다.
“꼬끼오.”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농사일을 시작하셨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 아버지의 발걸음은 낫과 호미를 챙기고 바람에 풀 냄새가 스며든 길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에 밭둑의 풀을 베고 논의 물길을 살핀 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침 이슬을 가득 머금은 풀과 흙 시골 마을의 풍경은 여름날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한낮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면, 동네 어른들은 감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한 사발의 시원한 막걸리로 아침의 고단함을 삭인다. 평상에서 시간은 불볕더위 속에서 흘린 땀을 식히며 마을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잠시 후, 검게 그을린 이웃집 아저씨와 동네 청년들은 ‘천렵’을 떠날 준비를 한다. 커다란 밀짚모자와 물고기를 잡을 그물과 족대, 양동이를 챙긴다.
‘천렵’이란 한여름 더위를 피하여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냇물이나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풀숲을 헤쳐 물고기를 잡으며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자연 속에서 즐기는 피서의 일종이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냇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여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시작한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과 저수지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합쳐진 냇가의 물은 마치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의 속삭임처럼 시원하다. 동네 청년들은 그물을 펼치고 양쪽에서 족대를 잡고 나머지는 돌을 뒤적이고 풀숲을 발로 두드리며 물고기를 깨워 몰이한다. 아이들은 수영복도 없이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힌다. 파닥이는 물고기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엉켜 그 속에 담긴 모든 것이 자연의 모습으로 하나가 된다.
그때의 물고기는 붕어, 쏘가리, 미꾸라지, 송사리, 민물새우, 물방개, 가재 등 각기 다른 모습의 생명체가 한 그물에 잡혀, 사람들의 고단한 여름을 위로해 주듯 꿈틀거리며 힘자랑한다.
물놀이의 끝은 전리품을 들고 오는 전사들처럼 마당으로 모인 사람들은 의기양양하다. 마당 한쪽에는 큰 양은솥이 걸려 있고, 아버지와 동네 청년들이 어죽을 만드는 요리사가 된다. 양동이 그득한 민물고기 내장을 손질하여 물에 푹 삶아낸다. 성글게 짠 대바구니에 건진 물고기는 나무 주걱으로 으깨어 살과 뼈를 분리한다. 살코기만 넣은 솥에는 된장과 고추장, 마늘, 생강, 우거지 등을 넣어 푹 끓인다. 그 냄새는 마을 전체를 감싸고, 여름의 피로를 녹여준다.
“어죽이 다 끓었어.” 감나무 밑 평상에는 소박하게 잔칫상이 차려진다. 새콤한 열무김치, 시원한 오이냉국, 밭에서 바로 따온 풋고추와 오이를 찍어 먹을 된장이면 최고의 만찬이다. 빙 둘러앉아 후후 식혀가며 한 그릇을 먹으면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여름의 시간, 마을 사람들, 고향의 냄새가 고스란히 담긴다. 삼복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맛과 영양이 가득한 보양식이다.
물고기를 삶고 국물이 끓는 소리, 밭에서 바로 뽑아온 쪽파와 부추가 섞인 어죽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고단한 여름을 이겨내는 고향의 음식으로 한 그릇의 추억이 되었다. 동네 분들이 많이 왔을 때면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양을 늘려 나누어 먹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단백질이 풍부한 민물 생선과 신선한 채소를 가득 넣고 영양도 맛도 최고인 여름 보양식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어시장에서 붕어와 메기, 민물새우를 구매했다. 손질한 생선과 민물새우를 넣어 40분 동안 끓인다. 고추장과 된장, 분리한 생선 살을 넣고 불린 쌀을 넣어 걸쭉한 어죽을 만든다.
어릴 적 그 양은솥은 없지만, 커다란 냄비에서 그때의 냄새가 조금씩 피어오른다. 깻잎을 넣고, 들깻가루로 마무리하며, 한 숟가락을 떠먹을 때마다 유년 시절에 먹던 익숙한 그 맛이다. 몸에는 열이 나면서 개울가의 차가운 물이 다시 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듯한 시원한 기분이다. 완성된 어죽은 생선 살과 민물새우 덕분에 감칠맛과 달콤한 맛이다. 생선의 비린내와 흙냄새 없이 담백하게 우러난 국물, 그리고 고향에서 흘러나오는 여름의 향기. 그것은 내가 살았던 그 땅의 기억과 감정, 시간의 흐름이 담긴 이야기다.
처음으로 만든 따뜻한 어죽을 먹으며,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 잎 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고향의 음식이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묻어있는 유년의 맛이다. ‘천렵’을 하지는 못하지만, 어죽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여름을 끓여내는 특별한 보양식이다.
[어죽 만들기]
재료
민물고기 1kg. 민물새우 한주먹. 고추장. 된장 1. 고춧가루 1 멸치 육수 2L. 우거지 한 주먹.
불린 쌀 2 공기. 대파. 팽이버섯. 청양고추 3개. 홍고추 2개. 마늘. 깻잎. 들깻가루. 후추 톡톡
만드는 법
1. 민물고기는 내장을 빼고 깨끗이 손질하여 새우와 푹 끓인 후 체에 거른다.
3. 육수에 생선 살과 고추장. 된장 1. 간장 1을 넣고 끓인다. (밥숟갈 기준)
4. 우거지는 된장과 마늘 등으로 양념하여 넣어준다.
5. 불린 쌀을 넣고 끓어오르면 마늘, 청양고추, 대파 등 향신료를 넣어준다.
6. 완성되면 그릇에 담고 채 썬 깻잎과 들깻가루, 후추 톡톡 취향에 따라 넣어준다.
특별한 보양식 드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