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수수팥단자
얼마 전 친구가 첫 손주 백일 축하 기념으로 떡을 했다며 동글동글한 팥단자를 나워 주었다. 요즘 보기 드문 정성의 굵은 팥고물이 붙어있는 고소한 팥단자를 베어 물자,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이 혀끝으로 되살아났다.
들꽃 피던 산등성이 아래 작고 단단한 집, 어머니는 여덟 식구의 삶을 두 손으로 떠받치며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품고 돌보는 가족은 더 있다. 밭일을 도와주는 누렁소와 아이들의 친구인 진순이라고 부르는 개와 붉은 볏을 자랑하는 수탉과 암탉들,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털이 보슬보슬한 노란 병아리들이 어울려 살았다. 시끌벅적 웃으며 재잘거림도, 아이의 눈물도 가축들의 소리와 엉겨 붙은 작은 집은 바람도 숨을 죽이고 지나가는 곳이다. 밥 짓는 연기와 함께 하루가 피어나고, 해가 저물 때쯤이면 어머니의 손끝에 고단함이 쌓였다.
오래전 그 시절에는 아이들 생일이면 케이크는 없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붉은팥을 삶고, 농사지은 수수를 빻아 반죽을 빚어 정성스레 팥 경단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케이크보다 깊은 사랑이, 촛불보다 오래가는 기도가 담겨있었다. 그 동글동글한 생일떡 하나하나엔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는 입김이 깃들어 있다. 붉은 수수는 목숨 수와 같은 음이 두 개가 들어있어 명이 길다 하고 붉은색의 팥은 나쁜 액운을 막아 아프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10살이 될 때까지 해줘야 좋다고 하며 정성을 들였다. 산골에서 간식거리가 없던 형제자매는 생일이 있는 달을 모두가 기다렸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통팥의 고소하고 달달한 팥단자를 기억한다.
1970년대 초 마을에 홍역이 돌았다. 지금과는 다르게 홍역은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우리 집에는 일곱 살, 여섯 살, 네 살짜리 세 명이 열꽃이 피어 고생했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았으나 가운데 여자아이가 이겨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슬퍼하셨다. 나와 1살 차이 여동생이다. 그 이후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각별하게 정성을 들였다. 생일 새벽에는 천지신명께 잘 보살펴달라고 장독대에 정화수와 팥단자를 만들어 올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그 시절 의료시설도 제대로 없고 약을 구하기도 힘들어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을 못 하고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다. 면역력이 약해서인지 코도 많이 흘리고 눈 다래끼도 많이 생기는 등 영양부족으로 잔병치레가 많았다. 어머니는 돌아가며 아픈 아이들을 돌보며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셨다.
팥을 삶을 땐 첫물을 꼭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어쩌면 인생의 고통도 처음엔 흘려보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고통을 안고는 단맛을 느낄 수 없음을 몸으로 아셨다. 삶은 팥은 부드럽고 포근한 고물로 태어나, 수수경단 위에 올랐다. 수수는 척박하고 억척스러운 땅에서 살아남는 곡식이다. 어머니가 만든 그 떡은, 매우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당신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아이들이 성장한 후 큰오빠가 결혼하면서는 손주들에게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의미로 애정을 담아 팥단자를 만들어 주셨다. 손주들은 할머니의 수수 팥단자가 속은 보드랍고 달콤하고 통팥이 씹을 때마다 자연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며 잘 먹고 무탈하게 성장했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음식이다.
경단을 빚는 일은 노고와 정성으로 마치 한 생을 빚는 일과도 닮았다. 수수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반죽하는 일은 힘겨웠다. 뜨거운 세월을 품은 살갗처럼 연한 붉은빛으로 말랑말랑할 때까지 치댄다. 동그랗게 빚어 끓는 물에 넣으면, 떡은 물 위로 슬며시 떠 오른다. 그것은 마치 고단한 인생의 무게를 견디고 다시 떠오르며 숨을 쉬는 순간처럼 보였다. 팥고물 속에 데굴데굴 굴려주면, 거기 삶의 아픈 흔적이 듬성듬성 묻어난다.
수수팥단자는 사랑이고, 종교보다 깊은 믿음이고 어떤 마법 같은 위로였다. 어머니의 생일떡은 사랑의 말을 대신한다. 수수 팥단자는 어머니의 지극한 손끝에서 딸의 손으로, 그 정성이 이어진다. 특별한 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통팥의 고소함이 붙어있는 수수팥단자를 만든다. 시간은 변하지만, 부모의 정성은 멈추지 않는다. 삶은 그렇게 멈추지 않으며 조용히 이어진다. 수수 팥단자 한 알 속에 세대를 이어가는 세월이 동그랗게 담겨 있다.
모두가 무탈하고 안녕하기를.
수수 팥단자 만들기
1. 깨끗하게 고른 생팥은 씻은 후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여 첫물은 버린다. 팥의 5~6배 정도 찬물을 넣고 설탕, 소금을 약간 넣고 팥이 푹 삶아질 때까지 끓인다. 팥이 통통해지면 손으로 눌러봤을 때 으깨지도록 포실하게 삶는다.
2. 삶은 팥은 절구에 넣고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대충 거칠게 찧어 넓은 쟁반에 펼쳐놓는다. (통팥이 드문드문 보이게)
3. 수수가루 2, 찹쌀가루 1 비율로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농도를 맞춰 익반죽 한다. (오래 치댈수록 쫀득하고 부드럽다)
4. 밤톨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는다. (팥고물을 묻히면 커지니까 너무 크지 않게 경단을 만든다)
5. 끓는 물에 경단을 넣고 떠오르면 1분 후에 건져내어 찬물에 한 번 식혀 준다.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한다)
6. 채반에 건져 물기를 빼고 팥고물을 펴놓은 쟁반 위에서 고르게 굴려 팥고물을 입힌다.
*팥을 삶은 첫물을 버리는 건 팥에 있는 사포닌 성분이 소화를 더디게 하고 떫은맛이 있어 생목을 오르게 하는 것을 줄이기 위함이다.
* 동치미 또는 나박김치와 같이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