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기획1 | 궁궐 건축에 녹아 있는 차경(借景)을 찾아서
빌릴 차(借) 경치 경(景)
'경치를 빌리다'
차경(借景)이란 자연경관을 건축 속으로 끌어들여 마치 외부의 경관이 건축의 일부인 것처럼 활용하는 동아시아 전통 건축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다.
건축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자 벽과 천장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외부와의 경계를 형성하며 ‘폐쇄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때 차경(借景)을 활용하면 경관의 깊이와 폭을 크게 함으로써 공간감을 확장시키고, 결과적으로 원림 속에서 얻게 되는 경험을 건축물의 내부에서 느낄 수 있다. 이는 유한한 건축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한한 공간감을 얻는 듯한 효과를 준다.
전통 건축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차경의 모습은 문이나 창을 하나의 '액자(frame)'로 두고 그 안에 외부의 경관을 '그림(painting)'처럼 담은 것이다.
특히 한 건물에서 식사, 업무, 취침, 접객 등 모든 것이 이뤄지는 서양의 가옥에 비해 우리나라 전통건축은 각 공간의 쓰임에 따라 권역이 나뉘기 때문에 문과 창문, 정원 등 각 건축요소에서 느껴지는 차경의 미학이 있다.
반면 하나의 거대한 건축 복합체 전체가 차경(借景) 기법을 구현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건축이 바로 경복궁이다.
일반적으로 한 왕조의 중심이 되는 궁(宮)은 왕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나름의 장엄함을 드러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념비적인 궁전들은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색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만 봐도 이중 월대 위에 복층 구조로 건립되어 화려한 단청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고궁(古宮)의 전경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이 건축의 마스터플랜이 보인다. 경복궁은 궁궐 전체가 북악산과 인왕산의 원림을 완벽하게 건축 속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거대한 차경(借景)을 완성하고 있다.
경복궁의 위엄은 건축물 안에서만 표현되지 않는다. 담장이 긋는 경계를 허물고 지형(地形)에 완전히 녹아드는 탁월한 차경(借景)을 구현함으로써 경복궁은 자연의 편안함뿐만 아니라 웅장함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굳이 전경까지 보지 않더라도, 북악산과 인왕산이 배경이 된 경복궁을 거닐며 안정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중요한 경관적 요소인 산(山)의 차경借景)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잘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YECCO(예코) 콘텐츠기획팀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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