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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CO Mar 01. 2023

세계 독립의 역사 속 3ㆍ1운동

기념일기획1 | 세계 각지의 독립운동과 한국 3ㆍ1운동의 비

*이 글은 알파고 시나씨(Şinasi Alpago)의 저서 「세계 독립의 역사」를 기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세계의 독립기념일을 보면 독립이 실제 이루어진 날이 아닌 독립을 '선언'한 날인 경우가 많다. 미국은 1783년 9월 3일 국제적으로 독립을 승인받았음에도 7년 전, 독립전쟁 중 독립선언이 채택되었던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했다. 멕시코 또한 1821년 8월 24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독립전쟁을 시작한 1810년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한국의 3ㆍ1운동 또한 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기미독립선언서를 공표하고 독립운동을 전국의 각계각층으로 대중화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배를 받던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일으킨 19세기와 20세기. 한국의 3ㆍ1운동은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과 어떻게 닮아있을까?



멕시코와 한국: 독립의 불씨를 지핀 종교지도자들

스페인을 상대로 멕시코의 1ㆍ2차 독립전쟁을 이끈 지도자들은 바로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당시 지배층의 종교인데다 교황청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천주교였지만, 신부들은 멀리 떨어진 유럽대륙보다 현지 주민들과 훨씬 가까운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좌) 이달고 신부의 절규를 그린 그림 (C)Pinterest / (우) 모렐로스 신부의 회담에서의 모습 (C)Gobierno de México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신부와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 신부가 이끈 독립전쟁은 두 사람 모두 스페인군에게 잡혀 처형되는 바람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멕시코 전역에 독립의 불을 지폈고,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국적 만세운동을 계획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기독교와 불교의 대표자들이었다. 선언문 낭독 후 총독부에 자진 고발을 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독립선언문에 공식적으로 서명하고 이를 배포하여 3ㆍ1운동의 불씨를 지핀 주역들이다.

민족대표 33인의 모습 (C)미래한국


필리핀과 한국: 독립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투쟁하다

필리핀은 하나의 강력한 정당이자 무장독립단체인 카티푸난(Katipunan)이 전국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것이 특징이다. 카티푸난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던 필리핀의 무장독립단체였는데, 설립된 지 몇 년만에 400,000명의 회원을 보유했을만큼 필리핀 독립운동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단체였다.

Proclamation of Philippines' Independence in Kawit, Cavite, June 12, 1898 (C)US Philippines Society


우리나라 또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는데, 필리핀과 차이점이 있다면 단체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상당히 넓은 지역범위에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독립의군부, 대한광복회, 대한독립군, 의민단, 북로군정서, 의열단 등 역사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단체들이 해당된다. 물론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터에 모인 독립운동가들 (C)우리역사넷


인도네시아와 한국: 결정적 순간마다 청년들이 있었다

일본의 항복선언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독립군의 지도자 수카르노(Sukarno)는 잘못된 결정이 대규모 유혈 사태를 불러올 것을 우려해 독립 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8월 16일 아침, 원로들의 결정을 기다릴 수 없었던 청년들은 수카르노를 납치해서 독립선언을 강요했고, 청년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수카르노는 1945년 8월 17일, 드디어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포했다.

(C)Pinterest


독립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이전에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군이 다시 인도네시아를 찾아와 독립선언이 무효라고 주장했는데, 일본군이 철수하고 네덜란드 군이 올 때까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기간에 독립을 선언하고 빠르게 체제를 정비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이후 4년간 네덜란드를 상대로 또 한 번의 독립전쟁을 치른다.


우리나라는 경술국치 이후 독립선언이 몇 차례 선포된 적이 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었다.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낭독한 후 35,000부의 독립선언서를 뿌리는 계획을 세우는데, 당시는 고종 황제가 암살되었다는 소문으로 서울에 긴장감이 감돌고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고종국장 예행연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급기야 손병희의 집에 모인 민족 대표들은 유혈 사태를 우려하여 탑골공원이 아닌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하기로 한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민족 대표 중 누구도 탑골공원에 나타나지 않자, 강기덕 등 학생 대표들은 자발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시위 행진을 했다.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시기에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여러 민족이 있었다. 이번 삼일절에는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독립의 길을 걷고 있는 세계의 국가들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YECCO 콘텐츠기획팀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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