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셰프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에 어느 날 레스토랑도 없고 세계 요리사 명단에도 없는 한국인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the most exquisite) 음식은 무엇일까?" New York Times 는 이 질문에 “세계의 많은 유명 요리사들은 덴마크 코펜하겐이나 미국 뉴욕이 아니라 한국, 그것도 외딴 사찰에서 만들어지는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을 꼽는다.”고 답했다. 요식업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는 셰프의 테이블 시리즈 중에서도 정관스님 편에 시상을 했다.
(C) Netflix
세계 요식업계에 큰 울림을 준 한국의 사찰음식, 이것이 단순히 외국인들의 비건 음식에 대한 관심일까? 불교문화에 생소했던 이들까지 사로잡았던 사찰음식은 도대체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을까?
맛있는 보약
연근, 감태, 무로 구성된 정관스님의 사찰요리 (C)New York Times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찰음식에 기대하는 바는 맛보다는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인 요소들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어도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에 비견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을 맛 본 미식 평론가 Jeff Gordinier 는, "정관스님의 음식이 나를 즐겁고 신나게 만들었으며, 사찰음식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작은 것이 쌓여 가장 큰 것이 된다고 믿는 불교에서, 음식은 나의 습관과 성격을 만들어내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단위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육체와 정신 모두에 평화를 주는 음식을 먹는다. 사찰음식은 육고기와 해산물뿐만 아니라 달래, 마늘, 부추, 파, 흥거(양파)의 오신채를 금한다. 이들은 더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원료로서, 수행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식욕을 돋구는 마늘, 파, 양파도 넣지 않은 음식이 어떻게 미식 평론가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을까?
자타불이(自他不二)
정관스님 (C)Netflix
사찰음식에는 꼭 지켜야만 하는 레시피가 없다. 이 순간 나와 재료에 온전히 집중하여 요리하는 모습은 수행을 떠오르게 한다. 재료가 땅 속에 있을 때부터 함께하며, 그 속성을 이해하고 재료와 하나가 되어 음식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음식은 자극적인 입맛에 가려져 있던 섬세한 미각을 깨우고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같은 채소도 계절에 따라 상태가 다른데 하나의 레시피가 있을 수 없죠. 레시피에 의존하면 거기에 걸려서 다음 생각이 안 일어나요. 일체의 집착을 내려놓고 새로 일어나는 에너지로 나를 발견하는 수행의 이치와 같습니다.” - 중앙일보 정관스님 인터뷰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범인(凡人)에게는 추상적인 가르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추상적인 철학을 깨달은 사람이 재료와 하나되어 만든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그 안에 담겨있는 인간의 본질을 일깨우게 한다.
백양사에서 수행 중인 정관스님 (C)Netflix
‘Philosopher Chef’.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음식을 만드는 이'이기에 셰프이지만 그 안에 수행자의 철학이 담겨있다. 먹기까지의 과정, 먹을 때의 마음가짐, 먹고난 후의 행동을 거치며 ‘음식’이 가지는 총체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음식. 세계 곳곳에서 사찰음식에 찬사를 보낸 것은, 이러한 철학을 음식을 통해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스토리텔링
서운암 장독대 (C)영남일보
사찰음식은 발효음식을 활용한다. 발효음식은 시간을 담은 음식이다. 콩을 심고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그어 여러 음식에 활용한다. 배추가 자라기까지의 자연과의 상호작용, 함께 김장하고 나누는 것, 재료가 버무려지며 보완하는 과정, 숙성까지 걸리는 시간.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통도사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스님들 (C)통도사
불교에서 음식은 식재료의 원천과 역사, 그리고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복합체이다. 자연과의 상호작용, 농부의 노력, 시간을 쓰며 기다리는 과정까지. 사찰음식은 음식과 음식을 만드는 이, 음식을 먹는 이 모두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기독교의 포도주
수도사의 포도 재배 (C)위키미디어
음식을 수행의 방편으로 활용한 경우는 없었을까? 기독교의 포도주는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이 모두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여 교회 성찬식에 사용되어 왔다. 포도주 양조는 신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이라 여겨져 포도주와 더불어 신성시되었다.
만드는 과정을 수행으로 본다는 점에서 포도주와 사찰음식은 닮아있다. 그러나 사찰음식은 완성된 음식 자체의 상징적 의미보다는 음식을 만들며 들어가는 노력, 생명, 시간 등 전체 과정에 더 집중한다. 음식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도 깨달음과 참선을 중시하는 불교의 철학이 드러난다.
연꽃차 (C) Diane Sooyeon Kang
당신이 매일 수행자의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언젠가 좋은 음식을 통해 '나와 자연'에 대한 깨달음이 연꽃처럼 피어나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