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CCO Jul 08. 2023

창덕궁 해설사는 어디서 사진을 찍을까?

창덕궁의 숨은 사진 명소 7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나라의 궁궐 창덕궁. 임진왜란 당시 모든 궁궐이 불타고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먼저 복원되어 무려 273년동안 경복궁 대신 법궁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조선의 임금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할 수 있는 편안한 창덕궁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장엄한 법궁의 모습과 아기자기하고 안락한 휴식의 공간을 모두 지닌 창덕궁. 오늘 YECCO(예코)의 궁궐 청년 해설사들이 선정한 창덕궁 사진 명소 7군데를 소개합니다.


1. 창덕궁 후원 규장각ㆍ주합루

책을 보관하고 사무를 보는 1층 규장각과 토론과 독서를 위한 2층 주합루가 한 건물에 있습니다. 규장각 주합루는 정조의 정책개발과 개혁정치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과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다양한 인재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습니다. 특히, 주합루는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 어진, 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곳입니다.

창덕궁 후원 규장각ㆍ주합루 (C)YECCO 김승연


2. 창덕궁 후원 애련정

조선의 군주들은 연꽃을 좋아했습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 유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진흙이 깔린 호수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지조와 깨끗함이 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군자의 모습과도 같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숙종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의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지어 정자를 조성하였습니다.

창덕궁 후원 애련정 (C)YECCO 김승연


3. 창덕궁 후원 관람정

볼 관(觀), 닻줄 람(纜)을 써서 뱃놀이를 바라본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1907년 제작된 '동궐도형'에 관람정 일원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또는 대한제국 시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동궐도형을 살펴보면 관람정이 위치한 연못인 관람지가 지금처럼 하나의 큰 연못으로 나타나있지 않고, 세개의 작은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관람지는 일제강점기 때 이르러서야 하나의 호수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창덕궁 후원 관람정 (C)YECCO 박현명


4. 희정당 앞에서 바라 본 인정전

희정당은 본래 왕의 침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무를 보는 편전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었습니다. 희정당 앞에는 신기하게도 차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 있고 그 위에 캐노피 형태의 덮개까지 얹어놓았는데요, 여기는 바로 순종황제와 순종효황후가차를 타고 내렸던 곳입니다. 이 장소에서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이 있어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이는 인정전의 모습 (C)YECCO 박정언 / 희정당 현관에 도착한 영친왕 내외 (C)국립중앙박물관


5. 궐내각사 영역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장소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관청들이 육조거리와 같이 궁궐 밖에 위치해있었지만, 매일 긴밀하게 왕실을 보필하고 국사를 논의해야 하는 관청들은 궁궐 안에 위치해있기도 했습니다. 이를 궐 안에 있는 관아라고 하여 '궐내각사'라고 불렀습니다. 궐내각사는 일단 들어서면 미로 같이 얽힌 구조 때문에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발길 닿는 곳 어디를 가도 참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일했던 관원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합니다.

창덕궁 궐내각사 (C)YECCO 김승연


6. 성정각 일원

이곳은 원래 세자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던 동궁에 속했던 곳으로, 나라에 세자가 없을 때는 임금이 신하들과 만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성정각에 가면 ‘보호성궁(保護聖躬)'과 '조화어약(造化御藥)'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왕의 몸을 보호하고 왕의 약을 잘 만든다’는 뜻인데, 일제강점기 때 이곳이 내의원으로 쓰인 흔적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임금을 뜻하는 '성궁(聖躬)'과 '어(御)' 자가 다른 글자보다 조금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이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창덕궁 성정각 (C)YECCO 김승연


7. 낙선재 화계

건물 뒤에 산과 비탈이 많았던 우리나라는, 그 곳에 화계를 만들어 여러 꽃과 식물을 심고 멋진 석물과 굴뚝, 담장을 놓아 가꿨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멋있는 화계가 바로 낙선재 화계인데요, 헌종이 후궁 경빈(慶嬪) 김씨를 위해 낙선재 영역에 석복헌을 지어 건물을 사용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습니다. 또한, 광복 후 시간이 지나 일본에 강제로 보내졌던 조선의 마지막 황실가족이 돌아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창덕궁 낙선재 (C)YECCO 김승연


예코 청년 해설사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본 경복궁의 모습, 어떠셨나요? 앞으로 발행될 덕수궁 시리즈를 기다리며, 이전에 소개했던 경복궁 시리즈도 확인해보는 건 어떠세요? 수많은 재미있는 콘텐츠가 공개될 예정이니 예코의 궁궐 소식을 틈틈이 받아보고 싶다면 오늘 팔로우하기!

.

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김승연

작가의 이전글 튀르키예군이 품은 한국전쟁 고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