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가 제작한 6ㆍ25 영화 '아일라'
6ㆍ25 전쟁을 다룬 영화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만들어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주로 공산군과의 전투에 초점을 맞춘 <태극기 휘날리며>, <인천상륙작전>, <웰컴 투 동막골> 등의 국내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이 영화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과 전쟁 고아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뿐만 아니라 실화 속 인물들이 실제 재회한 모습까지 담아낸 튀르키예 영화, <아일라(Ayla: The Daughter of War)>는 개봉한 해 튀르키예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7년 개봉작 중 관객 수 2위를 기록했다. 목숨이 오고 가는 전투 속에서도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국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 고아원'을 세워서 고아들의 생활과 교육을 지원했던 튀르키예군. 그들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이 안에 있다.
한국으로 파병된 튀르키예군은 미군에 배속되어 실전훈련을 겸한 작전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1월 22일 군우리로 북상하여 최초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청천강 전투에서 미국 제8군 우측부대를 궤멸시키고, 요충지인 군우리로 빠르게 진격하여 유엔군의 철수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이때 튀르키예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군에게 포위되어 치열한 전투를 펼치는데, 튀르키예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중국의 공격이 지연되면서 다른 유엔군 부대가 철수할 수 있었다.
부대의 통신이 두절되어 유엔 기지의 명령을 받아오기 위해 전우들과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다가 매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습격을 받은 슐레이만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타고왔던 차가 불에 타버린지라 어쩔 수 없이 걸어서 목적지로 향한다. 그때 갑자기 들린 인기척. 그는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는데, 그곳에 있었던 건 부모를 잃은 채 울고 있는 한 아이였다.
아이가 겁에 질렸어요. 말을 못해요.
아이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그는 따뜻한 품속으로 아이를 보호하여 피신한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슐레이만과 전우들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데, 튀르키예어로 '달'을 뜻하는 '아일라(Ayla)'였다.
'아일라'는 어때? 얼굴이 달처럼 동그랗잖아. 그리고 달빛 아래서 찾았고.
전쟁을 치루는 상황에서도 아일라는 튀르키예 군인들의 보호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전쟁의 충격으로 말을 잃었던 아일라는 어느새 한국어와 튀르키예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데 무슨 짐이 됩니까?
아일라는 슐레이만을 '바바(baba, 아버지의 터키어)'라고 부르며 따랐다. 터키 군인들도 훈련 중 아일라가 다가오면 훈련을 구경하고 함께 놀게 내버려두었다. 실제 아일라였던 김은자씨는 인터뷰에서 군인들이 자신을 지프차에 태우고 다녔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담요로 코트를 지어줬고, 제 몫의 빵과 우유를 항상 챙겨놓으셨어요. 제가 터키어를 배워 한국 사람과 터키 군인들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통역도 했고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작전을 펼쳐야 하는 군대는 어린 아이를 오랫동안 보살피기는 힘든 환경이었다. 슐레이만은 아일라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귀국을 미뤄보지만, 수원에 튀르키예 군인들이 세운 앙카라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고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을 받던 아일라는 떠나는 슐레이만을 보고 뛰쳐 나온다.
결국, 슐레이만은 아일라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를 짐가방에 숨겨서 배에 타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수색 과정에서 이를 들키고 아일라와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슐레이만은 울먹이는 아일라에게 꼭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꼭 돌아올게.
슐레이만은 터키로 돌아온 이후에도 아일라를 찾기 위해 한국대사관을 드나들지만, 더이상 아일라라는 이름으로 살지 않는 아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1999년 이스탄불 대지진 당시 대피하면서도 슐레이만은 아일라와 찍은 사진들을 잊지 않고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한국 기자의 연락을 받는다. MBC춘천 다큐멘터리팀이 한국ㆍ터키 수교 60주년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아일라의 행방을 찾는 일을 돕겠다고 한 것이다. 앙카라 학원 졸업생에 관한 기록을 모두 찾아보고 추적하면서 그들은 마침내 아일라가 사는 곳을 찾아낸다.
슐레이만과 아일라는 여의도의 앙카라 공원에서 60년 만에 다시 만난다. 아일라는 한국에서 '김은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아들, 손주들과 함께 슐레이만을 보러 온 그녀는 이미 60이 넘은 나이였다. 슐레이만은 그의 아내와 함께 나와 있었다.
왜 이제 찾으셨어요. 진작에 찾아주시지요.
아버지와 딸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60년만에 서로를 꼭 껴안는다. 슐레이만은 아일라에게 챙겨줄 용돈과 터키 간식, 그리고 선물들을 잔뜩 싣고 왔다. 김은자씨는 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넥타이를 손수 묶어드렸다. 아버지는 80세가 넘었고 딸은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슐레이만에게 아일라는 여전히 어린 꼬마였고, 아일라에게 슐레이만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든든한 아버지였다.
서울은 이렇게 달라졌군. 우리 아일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 <아일라>는 주로 공산군과의 전투에 초점을 맞춘 국내영화와는 다르게 국적을 초월한 인류애를 조명하는 영화다. 자신들이 지켜낸 작은 나라가 부강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참전용사들에게도 큰 자부심일 것이다. 연고도 없는 먼 타국에서, 조국도 아닌 나라를 위해 싸웠던 외국인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표한다.
.
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김현수
.
▼ 사진으로 보는 터키군과 전쟁고아
.
.
.
참고자료
하채림. “터키군 무릎 위 韓소녀'가 들려주는 6·25전쟁의 기억”. 연합뉴스. 2017-03-24.
https://www.yna.co.kr/view/AKR20170323204900108
6.25전쟁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코레 아일라(Kore Ayla)>. MBC춘천. 2010-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