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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석 Jan 16. 2017

너, 이거 진짜 팔 수 있어?

스타트업 마케터는 하이브리드 짬뽕 재주꾼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친구 창업가 녀석의 손을 덥석 잡고 '에라이 한번 해보자!'라고 선언을 했던 것이 약 3개월이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는 3년 차이고, 내가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3개월이 된 것이다. 사업이 3년 차라고 하니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이 맞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아무튼 우리는 현재 제로'이므로 스타트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트업!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합류한 이래로 된 매출이 없다. 하- 이놈의 것! 과연 팔 수 있을까.


나의 제법 멋졌던 경력은 뭐였을까.
내가 이러려고 마케팅을 했나.


나는 힘들다 소문이 자자한 FMCG 시장의 대기업 브랜드 매니징팀에서 5년 반을 구르고, 이직하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2년여 쌓아 올린 '닳고 닳은 마케터'이다. 이후 독립 비즈니스를 하며 먹고살다가 다시 가장 터프 오브 터프한 스타트업 마케팅의 세계로 들어와 버린 어쩔 수 없는 마케터.


마케터로서 짧지만은 않은 약 8년여의 경력 속에 나름 획을 그었다며 자부할만한 것들이 몇 있다. 만년 3등을 하던 자사 브랜드를 1등으로 만들어 표창을 받은 적도 있고,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면서 꿍짝꿍짝 만든 홈쇼핑 제품은 수차례 매진도 이뤄냈고. 이어서 중국 관광객에 노크하여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만한 수백억 매출도 빵- 터트리는 멋진 비즈니스 케이스들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아니, 지금 다시 고쳐서 고백하자면 '중심에 있는 줄 알았'다.

마케팅 고민에 연거푸 커피만 드링킹. 드링킹.

기획한 제품들이 매번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름 터져주니, 나는 제법 이쁨을 받는 편이라 딱히 갈굼도 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월급쟁이 생활을 했더랬다. 그러한 평화를 다소 따분하게 여긴 엄청난 오만(;;)과 함께,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가! 등의 거친 고민의 답으로 조직을 떠났지만 회사생활에 정말이지 딱히 불만은 없었다.


독립을 해서 프레젠테이션 컨설팅 디자인 일을 하는 것도 마케팅의 연속이었다. 나를 어떻게 어필하느냐, 나를 어떻게 팔아 내느냐가 핵심이었기에 나는 이제 '나'라는 상품을 마케팅하는 마케터가 되었던 것이다. 항상 고민을 거듭하여 사소한 문구들을 고쳐 쓰고, 노출의 접점을 다양하게 실험하며 슬슬 자리를 잡아갔다. 매출 또한 나쁘지 않아서 제법 일하느라 바쁜 1인 기업가로 사는 것이 익숙해져 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갈증이 하나 생겨났다. 어떤 실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을 하며 느꼈던 기쁨이 조금 그리워진 것이다.


펜대를 굴리다가 되묻는다. 팔수있냐 진짜.

그래서 시작한 새로운 마케팅 일이 이제 막 3개월 여가 되었고! 그런데..! 나름의 자부심을 품을만했던 마케팅의 역사와는 달리,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고 성과가 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꼴랑 3개월을 가지고 무슨 성과를 바라느냐고도 할 수 있지만 긴 시간- 긴 투자를 가지고 승리를 이야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막막한 실적 앞에 나름 베테랑이라 자부했던 마케터인 나의 자존심에 매일매일 스크래치가 파바박- 하아. 내 그 경력들은 다 허상과 같은 것인가! 내가 이러려고 굳이 다시 제품 마케팅에 손을 대었나, 하는 자괴감이. 


스타트업 마케터 이전에,
인하우스 vs 에이전시 마케터


인하우스형 마케터와 에이전시 마케터는 같은 마케터이지만 엄청나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실상 only 인하우스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하우스 마케터는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에서 브랜드의 전략을 수립하고, 익히 들 수업시간에 배워 익숙하실 마케팅 4P 관점의 기획을 주도하는 업무를 한다고 보면 된다. 고민의 시작이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가'에서부터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나는 기존 회사에서는 제품의 콘셉트 구상부터, 그 제품의 원가 설계와 수익률 핸들링, 생산 수량 조정 등 브랜드 전반의 활동에 오지랖을 부리는 일을 했다.


에이전시형 마케터는 '기술자'라고 부를 수 있다. 에이전시에는 완성된 제품이 주어지게 되고, 그 제품이 만나야 할 고객이 정의되어 미션이 내려온다. 이 제품을, 특정 고객군에게 어필하기 위한 최상의 홍보전략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는 세분화가 이루어져 각각의 전문 영역을 갖게 되는데, 광고 제작이 될 수도 있고 sns 운영이 될 수도 있고, 온라인 검색광고 전문이 될 수도 있다. 자기만의 특기를 갖고, 누구보다도 그 분야에 대해서 만큼은 트렌디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이분들은 '기술자', '테크니션'이라고 생각을 한다.


누가 더 대단한 일을 한다, 누가 더 멋지다를 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하우스에서는 종합적 시야에서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아무런 '기술'이 없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단어와 숫자를 넣었다 뺐다 하며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에이전시는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특정 단어에 대한 트래픽이 어디서 나오고, 어느 플랫폼에서 활동을 하는 게 유리할지에 대한 분석, 어떻게 해야 조회 확률이 높아지는지, 릴리즈 되는 콘텐츠의 정교한 제작 등에 대한 테크닉이 능하다. 대신에 산업 전반에 대한 흐름이나, 본인의 영역 외 마케팅 이슈에 대해서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에이전시 마케터라고 할 수 있겠다.


둘다 빡심! 노답노답 ㅎ from fennecfoxx 티스토리

나는 인하우스 마케터였지만, 에이전시에 대한 이해도나 작업방식을 비교적 잘 아는 편이라고 자부했었다. 오랜 취미생활이었던 '사진'활동이 이 모든 것의 씨앗이 되어주었는데, 사진을 찍으려니 포토샵도 알아야겠고, 포토샵을 배우다 보니 영상도 해보고 싶고 하여 내가 다룰 줄 아는 전문 툴의 폭이 여전히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래서 또 역시나 오만(;;)하게도, 에이전시에서 엄살을 부리거나 늦어지는 것들이 있으면 답답해서 내가 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잘 안다고 자부를 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스타트업의 마케팅을 시작하고서는 이 모든 자부심은 정말로 죄송스러우리만치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스타트업 마케터는
하이브리드 짬뽕 마케터여야 한다.


우리 제품을 앞에 펼쳐놓고 한바탕 대표와 회의를 한다. 이런 식의 소구가 어떨까. 어디 유통은 어떨까. 페이스북에 콘텐츠는 어떤 방식으로 기획할까. 인스타그램에 해쉬태그는 어떻게? 참 자잘하게 한도 끝도 없이 논의해야 할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언제나처럼 기획과 전략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세팅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이제 실행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익숙지 않은, 에이전시의 전문 마케터들이 도와주셨던 일들. 한도 끝도 없이 너무도 일이 많고, 정교하지 못하니 삽질을 계속 해댄다. 내가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대행을 할 뿐이야,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오만한 추억이 떠오르며 무릎을 털썩 꿇게 된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면, 전체 커뮤니케이션 플랜 중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 하나만 두고도 온 갖가지 기획과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기업이 아닌 그냥 인간적인 한 사람으로 포지셔닝 하자. 그래서 프로필을 어떻게 하고, 평소 멘트와 콘텐츠는 이런 것으로, 주기는 이틀에 한번 정도로 하자. 여기까지 하고 나서, 그래 하자! 하면 이제 내가 직접 실행을 한다. 마케터로서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쉬운 sns는 현재 인스타그램이다. 근데 이 계정 하나 꾸준하게 제대로 운영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의성에 맞는 해쉬태그와, 타깃 연령대가 좋아하는 표현 등 등 감안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타인의 계정에 가서 계속 반응해주고, 나의 계정으로 방문을 유도하는 작업도 꾸준히 해야 한다. 와.. 참 대단한 일들을 하고 계셨구나 에이전시에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원이 하나도 풍부한 것이 없는 스타트업 마케터는 인하우스 마인드로는 절대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에이전시 마인드로도 성공할 수 없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인하우스의 마인드를 먼저 장착하고 에이전시의 칼날을 모두 갖추어야만 성과가 날까 말까 한 스타트업 마케터가 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짬뽕. 짬짜면 탕볶밥 같은!



결국 답은 체력일지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


양쪽의 영역이 생각보다 큰 갭이 있긴 하지만, 결국 마케팅이라는 것은 '상식선의 고민에서 오는 답'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고객을 설득하는 것은 수준 높은 지식에 있는 게 아니라 결국은 직관적으로 끌려야 하는 것이므로. 마케터는 상식의 범주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어떤 경력의 마케터이냐를 떠나서, 스타트업 마케터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맨파워의 극복을 위해 경험하지 않은 반대 영역의 마케팅적 고민도 결국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결국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수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거창하게 직접 작성 해 놓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한 발씩 한 발씩 직접 이행하는 요즈음, 이 글의 서론에서 언급한 나의 이력서 속 멋진 경력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이렇게 1)계급장 떼고, 2)시스템 없이, 3)에이전시도 없이 철저하게 맨몸으로 부딪혀서 나오고 있는, 지금의 미진한 성과가 사실 '나라는 마케터'인 것이다. 이대로 절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마케터로서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우뚝 세워 낼 것이다! 부글부글 타오르는 눈빛이 된 요즈음, 나는 다시 살아있는 마케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자, 스타트업 마케터 여러분들 모두 화이팅 합시다! 아자아자 화이팅!


마케터들 모두 화이팅 합시다!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컨설턴트이자, 재미있는 패션 스타트업 OSBA 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바보 아빠, 고인석이라 합니다 :) 
Official Instagram : @happy.os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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