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손님2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

by 세아

나한테는 지성이라는 친구가 있다. 지성이는 나의 진짜 친구이다. 반 친구들하고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지내지만, 내가 그들 한명 한명에게 마음을 쏟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성이에게는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내가 신뢰할 수 있고, 말없이도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진짜 친구는 구하기 정말 힘들다.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여러 아이들이랑 학교 점심시간에 교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게임 레벨 이야기부터, 선생님들 험담,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까지. 주제는 정말 다양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목소리 큰 아이가 손뼉을 한번 치며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진지한 이야기인 듯이 목소리를 낮추어

“아 근데 4반 김지성 좀 그렇지 않냐?”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까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맞아 이상한거 같아.”

“걔 지 인맥만 믿고 까불더라?”

라고 한 마디씩 보태면서 지성이 뒷담을 시작했다. 나는 쉽게 나설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한테로 그 화살이 되돌아올까봐 그랬다. 그 뒤로도 한찬동안 욕 섞인 말들이 오갔다. 그런 말을 하며 낄낄대며 웃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저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는 듣기 싫어서 옆으로 빠지려 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면서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아 맞다! 너 지성이랑 같은 학원 다니지?”

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응..”

“와, XX 불쌍해. 너 그 학원 어떻게 다니냐? 너도 참 대단하다.”

놀리는 건지 치켜세우는 건지 빈정대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아이들은 갑자기 나를 ‘김지성이랑 같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 불쌍한 애’로 만들었다. 몇몇 목소리 큰 아이들이 그렇게 몰아가자 다른 아이들조차도 동참하며 나를 위로했다. 내가 지금 왜 위로받아야 하는 건지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아닌데? 나 지성이랑 친해. 걔 괜찮은 앤데?”

참다못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와~ 윤호 진짜 착하네. 그런 애까지 쉴드 쳐주고.”

여전히 자기들이 믿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만들어낸 대답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니라고 계속 우기거나 화를 내면 분위기가 갑자기 망쳐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짐작이 안 왔다. 그냥 빨리 점심시간이 끝나는 걸 알리는 종이 치기만을 바랐다.

“아 그나저나 니들 중간 잘 봤냐?”

“뭘 물어봐. 보면 모르냐?”

“ㅋㅋㅋㅋ”

그 사이에 대화 주제는 저번에 치른 시험 성적으로 바뀌었다. 저 아이들한테는 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일이 그렇게 쉬운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때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아이들은 하나 둘 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나도 내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그렇지만 머리에 들어오는 말들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분명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왔지만 내가 어떻게 내 몸을 컨트롤해서 집에 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건 집에 오자마자 나한테 온 문자 때문일 거다.


야 너가 내 욕 했냐?-


지성이에게서 이런 문자가 와 있었다. 보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분명 없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마음을 다잡고 지성이에게 답장을 했다.


-아니. 나는 너 욕 한 적 없어

와 끝까지 발뺌이네. 됐어.-

-지성아1

-오해야1

-난 너 욕 한 적 없어!1


계속 문자를 보내봤지만 문자 앞에 뜬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남자애들끼리 지성이 뒷담을 할 때 화를 내면서 아니라고 하지 못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 애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나는 그 일로 인해서 여러 명의 친구를 잃었다. 모든 친구를 잃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 아이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들도 그런 나랑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반강제로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 갔다.


"후회와 분노와 절망과 무력감이군요."

사장님이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만족한 듯 말했다.

“그런데... 그런 걸 음료에 넣어도 괜찮나요? 찾는 사람이 많이 없지 않을까요?”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맞아요. 이런 감정들은 찾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감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또 아니에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감정들도 꼭 필요해요. 그리고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이 감정들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답니다.”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 짓는 사장님의 포근한 얼굴에는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나쁜 기억을 떠올리고도 금방 기운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이제 수고했어요. 그만 가 봐도 돼요.”

나는 일어서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들어올때 들렸던 풍경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지더니 나는 어느새 길가에 있었다.


말하는 곰돌이와 지하실에 있는 카페라니. 행복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따듯한 우유라니! 모든 게 다 말이 안 됐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조금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지금껏 속에만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행복을 느끼는 비법을 배웠더니 내 입가에도 웃음이 피어나는 듯했다.

어느새 거세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우산을 접어 잠시 내려놓고 구름이 걷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도 있다. 어떨 때는 폭풍우가 쳐서 그 자리에 서있기조차 힘든 날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른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울해서 침대 밖으로 나가기도 싫은 날도 있고, 나에게 벌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버거워서 감당하기 힘든 날들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나는 다시 우산을 집어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지성이에게 다시한번 사실을 알려볼 것이다. 지성이는 내 친구니까 그 녀석들이 한 말보다 내 말을 더 믿어줄 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운 없던 발걸음도 금세 당당해졌다. 구름이 걷힌 하늘 사이로는 희미한 무지개가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른단 말이야. 후회와 분노와 절망과 무력감을 잘만 반죽하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감정이 나와.”

윤호가 가고 난 뒤 주방에서는 곰돌이가 열심히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반죽이 차례로 4개나 줄지어 서 있었다. 각각 윤호의 이야기에서 뽑아낸 감정 반죽이었다. 곰돌이가 후회를 열심히 치대고 예쁘게 모양을 잡아 주자 반성과 발전으로 변했다. 분노와 절망, 무력감은 한 그릇에 넣어서 섞어 주었다. 그 감정들이 하나로 합쳐지자 신기하게도 우정이 탄생했다.

“결국 윤호씨가 느낀 감정들의 원인은 자기 친구를 위한 마음이었으니 이런 감정들이 탄생한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곰돌이는 빵틀에다가 반죽을 넣어서 모양을 잡고는 오븐에 넣었다. 오븐의 온도가 감정들을 알맞게 익혀 주었다. 따듯한 열기 앞에서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곰돌이는 그새 잠이 들었다. 다시 밤이 찾아왔고 그 밤은 아주 조용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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