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손님

좋아하고, 잘하는 게 없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by 세아

매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들은 어김없이 자기소개를 시키신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 취미부터 특기, 별명, 장래희망까지 술술 잘도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싫다. 솔직히 괴롭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시간에 무얼 말하라고 하는 걸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대한민국 중학생의 반 정도는 나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게 없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씩 이런 나를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꿈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걸 다 알고 태어난 걸까? 그건 아닐 거다. 그들도 나와 다를 것 없이 태어났을 것이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른 법이고 나는 운이 나쁘게 아직 그 재능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미라클 모닝이니, 하루 10분 독서니 그런 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굳이 그런 걸 실천해서 내 장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솔직히 그런 걸 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굳이 내 시간을 그런 것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어른들은 만날 꿈을 찾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그러려면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또 공부를 시킨다. 어른들은 참 모순적인 존재들이다.

TV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아직도 꿈을 찾는 중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해보면 어른들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말 대단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도 꿈을 찾는 중이니까 아직 꿈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학교는 어릴 때부터 꿈이 있던 사람들만 모인 것처럼 모두가 꿈을 정해야 한다. 심지어 꿈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이게 얼마나 모순적인지는 모두가 잘 알 거다.


그래도 꿈을 정해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꿈을 찾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기도 하다. 진로까지 정하지는 못했어도 대부분 진로의 방향은 정한 상태다. 하지만 나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꼭 진로를 정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알바를 하거나 과외를 하면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거세게 몰아붙여서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아직도 꿈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다. 꿈이 있다고 해서 꼭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적성과 안 맞아서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냥 학교에서 수업 듣고, 사회생활하면서, 하라는 공부하기도 바쁜데 거기에다가 꿈까지 정하라니! 차라리 꿈을 정하는 것을 강요당하지 않는 어른들의 처지가 더 났다고 생각한다.

아직 개학한 지는 며칠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등교하기 싫어진다. 같은 반이 된 친한 친구는 없고, 항상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하던 등굣길은 조용하다. 이 조용함이 싫다.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 급식 먹으러 오거나 친구 만나러 오는 거다. 그런데 새 학년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친구가 없어졌다. 그 말은 즉슨 내가 학교에 와야 할 이유 중 한 가지가 없어졌다는 거다.

꼭 학교를 가야 할까? 하루쯤은 빠져도 되지 않을까? 선생님도 아직 아이들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없어진 줄 모를 수도 있고, 없어졌다는 걸 알아봤자 잡아서 잔소리 몇 마디 하는 걸로 끝날 거다. 이 정도 조건이면 꽤 나쁘지 않은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걷고 있던 방향에서 반대로 돌아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교가 나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쯤은 날 위해 보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이 경험을 하면서 진로를 찾을 수도 있으니 선생님들도 이해해 주실 거다.


학교에 안 간다고 생각하며 반대로 걷는 등굣길의 느낌은 색달랐다. 마치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나 혼자서만 역주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변의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고, 삼삼오오 무리 지어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도 눈에 들어왔다. 저 아이들은 학교 가는 걸 좋아하는 걸까? 아이들은 학교 가기 싫다고 짜증 내면서도 표정은 무척이나 환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이대로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되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서 조퇴해 집에서 뒹굴 거리며 하루 동안 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내 복잡한 머릿속을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 하루 쉬고 나면 다음날엔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오늘 같은 날이 또 올 수도 있다. 갑자기 학교 가기 싫어지는 날 말이다.

나도 모르게 집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서 모르는 길로 발을 내디뎠다. 집으로 돌아가진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있을 시간에 교복 입은 청소년이 돌아다니기에 마땅한 곳이 집 근처에 없었다. 그냥 이 주변을 학교가 시작하는 시각 전까지 좀 서성거리다가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놀이터나 아파트단지 쪽으로 들어가서 머리도 식힐 겸 잡생각을 비워볼 생각이었다.


발걸음이 닿는 데로 걷다 보니 어느새 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무들이 아파트 단지 주변을 마치 요새처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주변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없었고, 가게들도 보이지 않았다. 차들도 다니지 않아서 매우 고요했다. 나는 그 고요함이 좋아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벤치에 걸터앉았다. 하늘은 바다같이 푸르른 색이었다. 구름은 마치 찢어놓은 종이처럼 여러 모양을 띄고 하늘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다. 내 잡생각들도 구름처럼 내 머리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머리를 비우려 찾아온 곳이지만 오히려 그 고요함 때문에 머릿속에 잡생각만 더 늘어났다. 그때, 갑자기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하늘처럼 시원할 것 같은 냄새였다.

그 냄새는 한 아파트 쪽에서 오고 있었다. 평소에 맡던 냄새와는 확실히 다른 냄새였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한 아파트의 지하실에 도착했다. 지하실 주변을 관리한 상태로 봤을 때는 몇십 년 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그러나 문고리만은 어제 닦은 듯 깨끗했다. 갑자기 굳게 닫혀있는 지하실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그러면 무단침입죄로 잡혀갈지도 모르지만 왠지 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조심히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하실 안은 학교보다도 더 거대했다. 세상에 이런 건물이 있나 의심할 정도로 지하실 내부가 엄청 컸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지하실 크기였는데 말이다. 조금 캄캄한 지하실 안, 저 멀리서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그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아까 맡았던 시원한 냄새도 더 가까워져 갔다. 어느새 그곳 코앞까지 도착하자 그 불빛이 한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곰돌이 카페’ 참 특이한 카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간판에 쓰여 있었다.

학교보다 거대한 지하실과 그 속에 있는 카페, 그리고 특이한 카페의 이름까지.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지금 학교를 안 간 것 때문에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이런 걸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좀 말이 안 되더라도 일단 저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를 한 잔 마시면 머릿속이 비워질 것 같았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 문에 달린 풍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이전 08화세 번째 손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