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카페에 찾아온 봄2

이상한 사람들만 알 수 있기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그 쓸쓸함

by 세아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단은 중학교 다녀요?”

그 아이가 내 옷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네. 오늘은 학교를 안 갔지만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 짧은 한 마디를 하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힘들었던 걸까?

“몇 학년이에요?”

“2학년이요.”

“어, 뭐야! 같은 학년이잖아!”

그 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뭐야?”

“난 임승율.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정아윤! 여기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아윤이가 자신이 매고 있는 앞치마에 달린 이름표를 보여 주며 말했다. 갑자기 내 교복에 달린 이름표가 부끄러워졌다. 정현 형의 말로는 아직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나와 아윤이는 전혀 다르다. 아윤이는 벌써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찾은 것 같다. 이 카페에 있는 아윤이의 모습은 정말 밝았다.

“오! 다시 오셨군요!”

아까 맡았던 한가한 오후의 냄새가 가득 담긴 빵을 들고 주방에서 곰돌이가 나왔다. 곰돌이는 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양손으로 각각 우리를 끌어와 의자에 앉혔다.

“그런데 이미 오늘 재료는 소진이라서요.. 어떡하죠? 오늘 마침 예약손님도 있어서 말이에요. 이건 남은 재료들로 만든 빵인데 먹으면서 얘기 나누고 있어요. 저는 빵 배달 갔다가 올 테니까 너무 늦는다 싶으면 먼저 퇴근해 봐도 되고요.”

곰돌이가 테이블에 놓인 빵을 가리키며 어서 먹으라고 했다. 그러고선 예쁘게 꾸며진 바구니를 양손으로 들고 카페를 나갔다. 딸랑, 경쾌한 풍경 소리가 고요한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한가로운 오후의 향기는 어느새 차가운 핑크빛으로 내려앉아 우리의 주위에 짙게 내려앉았다.


“오늘 학교 안 갔다고 했잖아, 혹시 왜 안 갔는지 물어봐도 될까?”

한참의 정적을 뚫고 아윤이가 말문을 텄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나를 배려해 주는 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싶어서. 그래서 학교를 안 갔어. 어쩌면 모순적이잖아, 어른들은 말이야. 학교하고 학원에서 공부만 시키면서 잘하는 걸 찾으라고 재촉하잖아. 그런데 난 도무지 내가 잘하는 걸 모르겠어.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모르겠고... 웃기지?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모른다니 말이야.”

내가 말을 끝내자, 아윤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했다.

“아니, 사실은 나도 그랬어. 다른 거에는 관심도 없이 공부만 했었던 적이 있어. 그래서 공부는 잘했지. 그런데 공부 말고 다른 곳에는 신경을 아예 안 썼었어. 그때는 내가 아주 힘들었거든, 어쩌면 공부를 도피처로 사용했던 셈이지. 다른 일에는 흥미나 관심이 생기지 않았어. 사실 공부도 관심은 없었지만 공부를 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가만히 있는 날 방해하지 않으니까 했던 것뿐이었어. 그러다가 어떤 친구를 만났어. 그 친구가 나에게 잊었던 행복이 뭐였는지 일깨워줬어.”

친구 이야기를 하는 아윤이의 얼굴에는 새하얀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지만 그 오랜 방황이 친구 한 명만으로 없어지진 않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 시험시간에 학교를 그냥 뛰쳐나왔어. 그리고 어떤 냄새에 이끌려 곰돌이카페로 들어오게 되었지. 그러다 사장님의 제의를 받아서 여기서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는 거야. 딱히 하는 일은 많이 없지만 새로운 사람들하고 짧게라도 대화해 보고, 꾸준히 출근하면서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게 확실히 일상에 힘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아.”

처음에는 마냥 당당하고 활기차보였는데 아윤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현 형의 말대로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윤이의 마음은 나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였다.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인 걸까? 그 단단함을 나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그래도 넌 대단한 것 같아. 결국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잖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 봐주다니 고마운걸? 그렇지만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여기에 오는 것 말고는 아직 하는 일이 없거든. 남들 다 하는 덕질이나 게임도 흥미가 잘 안 가.”

아윤이의 얼굴에 아까까지는 없던 짙은 쓸쓸함이 드리웠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로 모르고 이상한 사람들만 알 수 있기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그 쓸쓸함이었다. 내 얼굴에도 그 쓸쓸함이 번졌다.

“나도 그래. 보통 좋아하는 게 없다고 말하는 애들 보면 그래도 좋아하는 게임 하나쯤은 있거든. 그런데 나는 다 흥미가 안 가더라고.. 맞다. 오늘, 학교를 안 간 대신 산책했어. 날씨가 좋더라.”

내가 대화주제를 좀 밝게 바꾸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슬픈 얘기만 늘어놓다가 결국 결론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게 없다는 슬픈 생각만 더 깊이 박힌 채로 집에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맞아. 아까 하늘 봤는데 정말 파랗더라. 그런데, 나는 밤하늘이 더 좋다?”

아윤이가 마치 카페 안에 하늘이 있는 것처럼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밤은 뭔가 고요한 것 같아. 차분하고. 뭔가 그때는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

내가 밤하늘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말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 오직 나만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였다. 그럴 때면 이따금 외로워지기도 했지만 별을 하나 둘 세다 보면 그 외로움도 점점 잊혀졌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게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러기에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맞아! 그래서 나는 밤을 정말 좋아해. 어둡게 가라앉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도 좋아.”

아윤이 조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네가 방금 밤이 좋다고 했어. 나도 그랬고.”

“그럼 우리는 방금 좋아하는 게 생긴 거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가식 없이 빛나는 그 환한 미소를 보며 나도 더 크게 미소 지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난 좋아하는 게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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