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카페에 찾아온 봄

반짝거리는 공기가 우리의 주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by 세아

나는 학교를 가지 않기로 결심한 후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날도 좋으니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로부터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우리 동네의 유일한 산책로가 있다. 벤치에서 일어서서 발걸음을 재촉해 산책로로 향했다. 학교를 지나치자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밖에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이 상황이 어색해졌다. 마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달까?

학생들은 학교로, 직장인들은 직장으로 향하고 난 길가에는 사람 대신 동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계속 내 주위를 맴도는 비둘기들, 두세 마리씩 같이 날아다니는 귀여운 참새들,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바닥에 몸을 이리저리 비비며 자유를 만끽하는 길고양이들까지. 아침의 여유로움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는 그들이 이제 길의 주인이 됐다.

그리고 나도 그들 사이에 같이 있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간질거렸다. 길가에 벌써부터 피어오른 꽃들 때문일까? 땅속을 뚫고 나온 초록빛 새싹들 때문일까? 햇빛 반스푼, 하늘 반스푼을 섞은 듯한 산뜻한 공기 때문일까? 사실 그 모든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간질거리는 기분이 전혀 싫지 않았다.

길 건너에 산책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검은색 벽면에 붙어있는 초록색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이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몇 안되던 자동차들은 가만히 섰다. 사람들은 흰색, 검은색 번갈아가며 밟으며 길을 건넜다. 길을 다 건너고 뒤를 돌아보자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색 벽면에는 빨간색 사람이 서 있었다. 길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섰고, 자동차들은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어졌다. 개미보다도 조그만한 점들이 더 조그만한 신호등의 작은 손짓 한 번에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가는 게 놀라울 것 같다. 마치 조그만한 점들이 예쁜 무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모든 것이 신호등의 작은 손짓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다니.


약간 오르막인 길을 3분가량 걷자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산책로가 모습을 보였다. 아직 쌀쌀한 칼바람이 나를 스치고 있는 추운 날씨지만 나무에서는 초록색 잎사귀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 꽃이 펴 있었다. 마치 나무에 새하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그 눈들은 떨어져서 바닥에 소복하게 쌓였고 내가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나에게 봄의 길을 만들어 주었다. 은은한 꽃향기도 사방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슈웅. 내 뒤에 있었던 한 여자가 뛰면서 내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달리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여자의 얼굴에서 희미한 웃음을 본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에 즐거울 일이 뭐가 있을까. 설마.. 달리기? 아까 정현 형과 나눴던 사소한 즐거움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달리면 즐거워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 기억 속에 달리기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다. 대부분 체육 시간에 벌을 받아서 했었다거나, 선생님이 억지로 시켰던 체육 대회 속 달리기 경주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그렇게 달리기를 잘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왠지 지금은 저 여자를 따라서 달려보고 싶어졌다. 가볍게 발목과 다리를 풀어준 뒤에 산책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달리기는 만만하지 않은 운동이었다. 처음부터 멋모르고 빠르게 달렸더니 달린 지 3분도 되지 않아서 벌써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점점 속도를 늦춰서 지금은 빠르게 걷는 것보단 조금 더 빠른 속도가 됐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팔을 저절로 앞뒤로 움직였다. 이제는 달리기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느리게 뛴다고 뛰었는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잠깐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쉬면 포기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산책로 중간에 있는 정자까지 뛰기로 목표를 정했다.


자는 생각보다 멀었다. 분명 전에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걸을 때는 금방 도착했던 것 같은데 뛰어서 가니까 체감상으로는 1시간 정도는 걸리는 것 같았다. 정자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의 기어가는 속도랑 비슷하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정좌가 보이자마자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끌어와서 전속력으로 정자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쓰러지듯이 그 위에 누웠다. 방금 걷고 있을 때까지는 약간 춥다고 생각했는데 뛰고 보니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달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오늘 하루만 뛰어봐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도 뛰는 동안은 머릿속에 있는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비워졌다. 그건 좀 좋았다. 한참 쉬고 빠르게 내쉬어지던 숨도 어느새 적정 속도를 되찾았을 때쯤 배가 고파졌다.

잠깐 편의점을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곧 4시였다. 그쯤이면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쯤에 곰돌이 카페로 한번 들러보라고 했던 정현 형의 말이 떠올랐다. 나랑 비슷한 아이가 거기에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누군지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어차피 카페에 가서 무언가를 사 먹으면 배고픔은 금방 사라질 거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봄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모르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


벌써 4시가 훌쩍 넘었다. 아까까지 이쪽에 있었던 태양은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를 지나서 저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아침에 왔던 곳이지만 오후에 다시 오니 느낌이 색달랐다. 아침에는 고요와 상쾌함이 이 아파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면 지금은 여유와 한가로움이 주위에 짙게 깔려 있었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들의 소리나, 저 나무들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조잘거림이 좋았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오후처럼 한가로운 냄새였다.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된 듯이 나는 이끌리듯 그 냄새를 따라서 지하실 문 앞에 도착했다. 삐그덕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하실 문이 열렸다. 캄캄한 지하실의 저편에는 따듯한 온기를 가득히 품고 있는 카페가 보였다. 그 카페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형상은 1개가 아닌 2개다. 딸랑, 경쾌한 풍경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향해 한 여자아이가 활짝 웃었다. 반짝거리는 공기가 우리의 주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까 달리기를 할 때보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얼굴은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화끈 달아오르고 눈은 갈 곳을 잃어서 이리저리 헤맸다. 분명 나는 이 자리에 있지만 내 영혼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저 너머의 다른 은하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얼음이 되어 누군가 땡을 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온몸이 굳었다.

“어서 오세요!”

그 아이가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마주 인사했다. 너무 고개를 빨리 숙였나? 아니면 인사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도 같다. 쿵쿵, 내 심장소리가 빠르게 내 몸을 뚫고 나왔다. 내 주변의 공기가 모두 사라져 버린 듯이 숨이 턱턱 막혔고, 한겨울에 냉동실에 들어간 것처럼 다리가 벌벌 떨렸다. 눈은 10kg짜리 덤벨이라도 달린 듯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고 귀에서는 오직 그 아이의 목소리만 왱왱 울렸다.


그 여자아이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고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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