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의 고민

그런데 정말 그런 사소한 것이 내 하루를 조금씩 바꾸어나갔다.

by 세아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그렇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한동안 공부만 하면서 폐인처럼 지냈던 아윤이를 어둠에서 끌어내준 건 서안이었고, 어둠을 겨우 빠져나온 아윤이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 건 곰돌이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그리고 아윤이에게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알려준 건 바로 내 옆에 있는 승율이다. 아윤이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자 승율이도 마주 웃었다.

“에휴.. 내가 대체 왜 쟤네들을 소개해 줬을까.”

내가 한탄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덕분에 곰돌이 카페 알바생이 2명이 됐잖아요!”

아윤이가 승율이를 보며 말했다. 분명 아윤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감도 없고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다. 승율이도 부모님 하고 잘 상의해서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에 사진 찍는 걸 배우고 있는데 실력이 꽤 수준급이다. 한 가지 문제는 승율이가 찍은 사진의 반 이상에 아윤이가 담겨 있다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윤이도 요즘 승율이의 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나는 딱히 변한 게 없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있을 뿐 딱히 새로운 취미나 관심이 가는 일이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 집에만 가면 무기력해져서 침대에서 잠들기 일쑤다. 아윤이와 승율이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는 친구가 없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는 아이도 없다.

그래서 특히 텅 빈 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가 가장 힘들다. 다른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비워지지만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면 외로움이 온몸을 덮친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럴 때면 갑자기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무거운 돌이 쿵 하고 떨어진 느낌이 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기에는 내 고민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널렸는데 겨우 이런 것 가지고 고민이라고 칭하는 것조차 미안해진다.

그렇게 혼자서 묻어두고만 있다 보니 무기력함은 갈수록 점점 쌓여만 갔고, 버티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었을 때 곰돌이 카페를 만났다. 덕분에 매일 한 번씩밖에 나오게 되었고 가끔씩 손님들도 만나서 대화하기도 하다 보니 삶을 버티는 것은 조금 수월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 하나를 읽어보게 되었다.


공든 탑

김윤호

전부터 불안정하던 그 탑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빨리 다시 세우려 했지만

서두를수록 탑은 점점 더 무너져만 갔다.


한동안 새까만 어둠과

친구가 되어서 지냈고,

내가 점점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동안

내 주변에 있는 빛들은 천천히 사라져 갔다.


어둠 속에서 눈을 떠도

입에서는 목소리 비슷한 것조차 나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그저 무너져버린 탑만 보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해보듯

어느새 해가 뜨고 주변에도 빛이 물들었다.

탑도 천천히 쌓여갔고

그 탑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전보다 더 보호했지만

탑을 지키려는 나의 몸부림에

탑은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고


다시, 깜깜한 어둠이 찾아왔다.



학교 도서관에서 본 어떤 학생이 쓴 시었다. 유명한 작가들이 쓴 시처럼 멋지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 시는 내 마음을 건드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쏟고 마음이 좀 가라앉자 나도 저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내가 직접 내 아픔을, 내 고민을 말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표현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실력은 초등학생과 엇비슷하게 나빴지만 내 마음은 조금 더 밝아졌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아무도 느낄 수 없었던 아주 사소한 변화였다. 전과 비슷하게 무기력했고, 똑같이 집에 가면 계속 잠만 잤다. 그런데 멍을 때리다가도, 길거리를 걷다가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는 언제나 핸드폰 메모장 앱이 함께했고, 그 메모장은 어느새 내가 쓴 시들로 꽉 채워졌다.

정말 사소한 변화였다. 딱히 취미라고 하기도,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기도 뭐 한 사소한 변화. 그런데 정말 그런 사소한 것이 내 하루를 조금씩 바꾸어나갔다. 이제 더 이상 곰돌이 카페에 가지 않아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활기가 생겼고, 학교에서도 엎드려서 자는 대신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한두 마디씩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와 더 붙어 내 얼굴은 차츰 밝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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