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매그놀리아>

B급 말고는 뭐를 좋아하는데?-(1)

by Mr Pink

글 특성상 매그놀리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취향을 설명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짧게 말하면 너무 가볍고 길게 말하면 나부터 피곤해진다.

사람들은 짧게 줄여서 말하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우면 취향이 아니라 체크리스트다.

그래서 그냥 영화 얘기를 꺼낸다.

영화가 나 대신 말해줄 때가 많아서 좋다.

내가 말하면 이상한 농담이 먼저 튀어나오니까.

영화는 그래도 조금 더 진지한 척이라도 한다.

(아주 조금 진지하고 그리고 더 있어 보이기도 하니깐)


예전에 B급 영화 좋아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건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겉은 시끄럽고 빠른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훨씬 느린 편이다.

말 안 하고 오래 묻어두는 스타일.

귀찮은 성격인데 이상하게 영화 볼 때만큼은 성실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유전 혹은 가정환경 때문이겠지)


그럴 때 꺼내는 영화 중에 하나가 '매그놀리아'이다.

매그놀리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듣는 순간 분위기가 조금 묘해진다.

"그 무거운 영화?"라는 얼굴을 한다.

맞다 그 무거운 영화

근데 정말 이상하게 어떤 날의 나에게는 가벼워진다.


매그놀리아는 볼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된다.

기분이 날카로울 때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느껴지고 내 마음이 조금 무뎌진 날엔 이상하게 가벼워진다.

영화가 사람처럼 변덕스럽다. 사람보다 덜 실망시키고, 가끔은 사람보다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대사는 이거다.

"나는 정말 줄 사랑이 많은데...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랑이 넘치는 타입도 아니고 사랑을 잘 주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줄 곳을 모르는 마음'은 기가 막히게 이해가 된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다루는 것이 서툰 사람에 가깝다. 그게 문제다.

(지독한 애정결핍이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으니)


그런 점에서 매그놀리아는 내 얘기를 대신해 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잃고, 사랑을 붙잡고 싶어 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사랑을 오해하고, 사랑을 잘못 건네고,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어떤 사람은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 앞에서 멈춰서 있고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너무 늦게 울고

어떤 사람은 너무 빨리 도망친다.

영화에 나오는 그 누구도 사랑을 잘하지 못한다.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된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마음들, 잘못 들고 갔던 마음들, 말하지 못했던 말들, 웃으면서 숨겼던 마음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그게 불편한데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든다.


매그놀리아는 거창하게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혼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흐트러진 사람을 보여준다.

사람이 원래 그런 식으로 사랑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걸 건조하게 카메라 앞에 올려놓는다.


나는 그 정직함이 좋다.

사랑을 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

준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못 주는 사람들

주고 싶어서 준비까지 다 해놓고

막상 건네려니 손이 굳어버리는 사람들

그 안에 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내 안의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감정이 든다.

완벽히 정리되는 건 아니고 그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 정도만 깨달아도 충분하다.


매그놀리아는 내가 어떤 종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조용하게 알려준다.

우회도 없고, 미화도 없고 그냥 사람의 마음의 리얼한 그 모양이 있다.

그게 매그놀리아가 나를 오래 붙잡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당신은 뭘로 진짜 당신이 되는가? 영화든, 음악이든, 아주 사소한 무언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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