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사랑도 영화로 배웠어?-(2)
글 특성상 이터널 선샤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게 사라지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헤어지면 끝이고, 전화번호 삭제하면 미련도 같이 사라지고, 사진까지 지우면 마음도 정리되는 줄 알았다.
근데 인생을 조금 더 살다 보니깐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 빨리 배웠다.
삭제는 쉽고 망각은 어렵다.
사람 마음은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그냥 생살이라서 한 번 눌린 자국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이터널 선샤인을 봤을 때 그게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너무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웃겼다.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하는 행동이 진지할수록 더 웃길 때가 있지 않은가
지우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꼭 그렇다.
처절하고, 바보 같고, 그래서 또 아리도록 슬프다.
영화 속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사랑을 잊고 싶어서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말 그래도 '초기화'를 해버린다,
근데 진짜 사랑이 그런다고 사라지나?
아니다.
지울수록 더 선명해진다.
없애려 할수록 오히려 더 도드라진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에 들어오는 대사가 있다.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지울 수는 있지만 사랑을 잊는 것은 달라요."
이 대사 살아보니 정확한 말이었었다.
사람은 잊을 수 있다. 근데 사랑을 잊히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를 데리고 남는다.
좋았던 순간과 망가졌던 순간과 헛소리하던 말투와 외면하고 도망치던 기분 같은 게
전부 덩어리로 남아 있다.
그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생각한다.
조엘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붙잡으며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줘"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지우고 싶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닫는 자면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은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이기도 하니깐
나는 가끔 누군가를 완전히 지워보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좀 웃기다.
사진을 삭제하고, 카톡방을 나가고, 프로필을 가리고, 심지어 마음에서 지우겠다고 억지로 새로운 취미들을 끼워 넣던 날들
근데 어김없이 지울수록 고요함은 사라지고 더 시끄러워졌다.
'왜 이렇게까지 지워야 하는 거지?'라는 나에게 스스로 하는 그 질문이 더 아팠다.
사랑을 지운다는 건 기억을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지우는 행위다.
근데 그게 가능한가?
삶은 결국 내가 했던 오답과 같이 사는 과정이다.
그 오담을 떠나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오답도 이미 나의 일부라서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이 끝났어도 그 사랑을 했던 나는 아직도 남아 있구나'
그 사실이 조금 아프고 조금 웃기고 조금 안쓰럽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 정도면 됐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는 마음이라면
그건 이미 나의 일부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