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사랑도 영화로 배웠어?-(완)
글 특성상 어바웃 타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
사랑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는 걸 알아간다.
조금 더 어릴 때에는 운명 같은 걸 믿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 보다 그날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지금은 운명보다는 아침에 알람을 몇 번 미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사랑은 결국 멋진 장면 때문에 깨지는 게 아니라 지친 날 대충 흘려버린 말들 때문에 금이 간다.
그 말이 이상하게 더 현실적이다.
사랑은 거창한 프러포즈보다 퇴근길에 이유 없이 맛있는걸 하나 사 오는 사람이 더 크게 남는 감정이니까
그러니깐 사랑은 커다란 결정보다 자잘한 하루들로 움직인다,
할 말을 던지고 후회한 날, 말 아끼다가 어색해진 날, 둘 다 피곤해서 괜히 날 선 날
그런 사소한 것들의 합계가 사랑을 만든다.
그래서 어바웃 타임은 로맨틱하기보다
조금 웃기고 조금 먹먹하다.
영화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시간에 대해 말한다.
시간이 지나야 만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지'를 이해하는 그 기묘한 인간성
주인공 팀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근데 그 능력을 쓰는 이유가 너무 인간적이라 웃기다.
소개팅 말아먹으면 되감기, 어색한 말 했으면 되감기, 실수했으면 다시 되감기
나 같은 사람한테 저 능력을 줬다면
하루에 열 번은 넘게 되감다가
시간의 신에게 안 좋은 말을 들었을 거다.
"쟤는 그냥 성격이 문제야" 이런 식으로
시간은 바뀌어도 성격은 안 바뀐다.
이 영화가 은근슬쩍 말하는 진실 중 하나다.
되감기 한다고
사랑의 마음이 리셋되는 건 아니다.
그날의 기운, 그날의 피곤함, 그날의 민감함, 그날의 부끄러움
이건 시간을 되감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같은 하루라도 서 있는 마음의 각도는 매번 다르니깐
그래서 팀이 어느 순간부터 되감기를 안 쓰는 선택을 하는 장면이
묘하게 아름답고, 좀 웃기기도 하다.
되돌릴 수 있어도 그냥 산다.
망한 말도 그대로, 어색한 표정도 그대로
그날은 그날의 감정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팀이라면?
아마 다음 날 또 시간을 되감고 있을 거다.
이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이 생겼다고 사람이 갑자기 성숙 해지는 건 아니니다.
어바웃 타임이 말하는 사랑은 엄청난 순간에 있지 않다.
멋진 이벤트도 아니다.
누구나 피곤하거나 예민하거나 별거 아닌 일로 울컥하던
그 평범한 날들 속에 있다.
그리고 믿기 힘들지만 그 어정쩡하고 난감한 날들이 사랑을 가장 튼튼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명대사들이 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사랑은 특별한 날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늘 같은 평범한 날에도 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말을 되게 싫어했다.
너무 진부해서
근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진짜라는 걸 알았다.
사랑은 별일 없는 날에 숨겨져 있다.
기념일 보다 그냥 월요일 저녁의 표정이 더 중요하고
멋진 말보다 지친 날 나오는 한숨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놓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었던 말들, 지나쳤던 표정들, 어색해서 얼버무린 대화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전부 중요한 장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아는 것들
나는 늘 뒤늦게 알았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어바웃 타임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에게 불가능한 주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후회했어도 괜찮다고 틀렸어도 괜찮다고 실수하고 돌아와도 괜찮다고
사람은 원래 계속 틀릴 거고 사랑은 계속 엉성할 거라고
중요한 건 '지금 살아 있는 장면'을 좀 더 느끼는 것이라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런 생각이 남는다
'사랑은 특별함은 특별한 날에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날을 버티게 해주는 마음에 있다.'
그걸 알면
사람은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웃기고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이 정도면
사랑에 대해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시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