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6주를 살며 꼭 가기로 한 곳이 피렌체와 시에나, 피사가 있는 토스카나 지방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소렌토, 폼페이, 카프리 섬이 있는 캄파니아 지방이다.
피렌체와 나폴리는 이번 답사 여행에서 이미 방문했지만 주변의 소도시들은가지 못했으니 피렌체와 나폴리를 기반으로 더욱 알차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리 세상을 많이도 돌아다녔던 J도 캄파니아 지방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처음 가본 나폴리를 J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죽하면 여기서 한 달 살기 숙소를 잡으려고까지 했을까.
나폴리에서 외박을 하면서 찾아갈 소렌토와 폼페이, 카프리 섬을 기대하며 이번에 다녀온 나폴리의 지하도시 소테라네아 (Sotterranea)를 소개해본다.
로마,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각보다 인기 높은 도시는 아니다. 지저분하고 볼 것 없다며 나폴리에 내린 사람들은 바로 폼페이 유적이나 카프리섬을 향해 떠나버리곤 한다. 그러나 나폴리는 아름다운 항구뿐만 아니라 더 멋진 역사지구를 가지고 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명성에는 '과연 그럴까?' 싶은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나폴리항에서는 고풍스러운 누에보성뿐만 아니라 멀리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도 볼 수 있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들도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니 나폴리에 도착했다면 다른 데로 가기 전에 먼저 여기를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지난번에 갔던 날이 하필이면 휴무일이라 박물관 관람도 다음번 방문 리스트에 올려놨다.
나폴리는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에서 시작하여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폼페이와 함께 번성했던 도시로 시내 중심가에는 가로, 세로로 뻗어있는 로마의 가로망이 그대로 남아있다.
중세 이후 남 이탈리아를 지배하는 나폴리왕국의 수도였으며 현재까지도 남부 이탈리아의 명실상부한 중심도시이다.
게다가 나폴리 피자가 있다.
나폴리 피자의 대표 격인 마르게리따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왜 나폴리 피자가 유명한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줄 서서 들어간 지노에 또또 소르빌로 (Gino e Totò Sorbillo) 피자집에서 사람들은 작지 않은 피자를 1인당 한 판씩 시킨다. 풍미 가득한 얄팍한 피자 도우부터 위에 얹은 토핑까지 눈과 입이 즐겁다.
우리는 여기서 나폴리 피자집을 한 끼에 두군데나 가서 먹게 됐다.
나는 몇 년 전 이 집에 와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자신 있게 일행을 다시 데리고 왔는데 입구에 공사막이 쳐져있어 그 집을 지나친 채 같은 소르빌로란 이름이 붙은 옆집에 들어가 버렸다. 안의 구조가 아무래도 낯설고 썰렁하여 혼자 살짝 다시 나가봤다. 두 칸 옆집이 내가 기억하던 원조 피자집이었다.
이미 모두 자리를 잡은 데다 화장실까지 이용해 버렸으니 뭐라도 시킬 수밖에. 게다가 우리가 개시 손님이다. 할 수 없이 피자 대신 다른 플레이트를 조금 시켰다. 그 맛도 괜찮았다.
그러나 분위기나 모든 것이 원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결국 점심을 두 번 먹게 됐지만 두 집을 비교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고 모두들 배를 두드리며 흡족해했다.
다음에 올 땐 또 하나의 원조 피자집 디마테오를 가 봐야겠다.
나폴리 역사지구에서는 로마시대의 주택가, 즉 도무스에 살고 있는 나폴리 서민들의 생생한 일상을 함께 하며 볼거리 가득 찬 돌길을 거닐어 볼 수 있다. 거의 한 블록마다 보이는 듯한 거대한 성당과 활기찬 가게들이 늘어서있는 스파카 나폴리 (Spacca Napoli)에서는 어디서나 길 끝 언덕 위로 엘모어 성 (Castel Sant'Elmo)이 보인다. 스파카는 자른다는 뜻으로 가르마를 타듯 시가를 둘로 나눈다는 뜻을 갖고 있다.
보메로 언덕 위, 엘모어성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산타루치아 해변과 복잡한 스파카나폴리, 멀리 베수비오화산까지 바라보면 나폴리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폴리의 아름다움은 지상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폴리 역사지구에는 나폴리의 지하 세계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나폴리 소테라네아 Napoli Sotterranea 즉 나폴리 지하 도시다. Underground Naples.
고대 그리스 시대 나폴리, 당시 네아폴리스가 만들어질 때 그리스 사람들은 신전과 성벽에 필요한 융회암을 캐내기 위해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집을 지어 도시를 만들었다.물길의 중요성을 알았던 로마 제국 사람들은 이 구덩이들을 이어 방대한 지하 수로로 만들었다.
도시에 필요한 분수와 주택용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거미줄처럼 넓게 뻗어나간 수로 터널은 깊은 땅속에서 좁은 터널과 지하 광장 등으로 확장됐다. 물길을 따라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면서 도시의 샘이 되었던 이곳은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최고의 피난처가 되었다.
어른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디좁은 길을 따라 어둠 속에 미로 같은 길을 지나가자니 혼자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겠다. 지금은 어디서나 불을 밝힐 수 있지만 그 옛날은 쉽지 않았을 텐데.
문득 카파도키아 지하도시가 생각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 엄습하던 두려움.
그러나 좁은 길을 빠져나오면 수십 명은 너끈히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나오고 한 바가지 떠서 마셔보고 싶은 깨끗한 물이 흐른다.
하늘로 뚫린 공기구멍을 통해 들어온, 지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햇빛만 못 본다 뿐이지 이렇게 쾌적한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실제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보관하는 장소나 식료품 창고, 와인 저장고도 있다.
나폴리 역사지구에 가면 로마 시대의 돌길을 걷다가지하 도시에도 한 번 내려가 보시길.
활기찬 대도시 지하에 광활하게 뻗어있는동굴 속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풍경은 나폴리에서만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지구상에는 곳곳에 지하도시가 있다.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지하 7층까지, 최대 2만 명이 살 수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 그러나 그곳은 지상에 아주 작은 마을 만이 있을 뿐이다. 지상의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찾아가기는 너무 멀다.
사람들이 빡빡하게 모여 사는 거대 도시 아래 자리한 지하 도시는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단 바로 피신하기가 쉽지 않은가. 이제는 지구 멸망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최후의 보루로 먼저 나폴리 소테라네아를 떠올릴 것 같다.
땅속 깊은 곳에서 접하는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은 지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지구에는 한 조각 몸 피할 곳이 있구나 하는 든든함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