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게임은 슬롯머신이었다.

05. '운'을 살 것인가, '실력'을 쌓을 것인가

by 아마추어게이머

내 첫 비디오 게임 데뷔 무대는 유치원 때 삼촌들을 따라간 오락실이었다. 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락실에 죽치고 앉아있던 삼촌들은, 할머니 앞에서 "조카들이랑 놀아주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 남매를 데리고 곧잘 오락실로 향했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는 코흘리개가 뭘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내 인생 첫 게임은 조작이 매우 간단한 슬롯머신이었다. 보상은 없었으나 사행 행위를 완벽하게 모사하고 있었으니, 지금 기준으론 최소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이었을 게다.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내 사연은 아마 9시 뉴스 메인에 떴을지도 모른다.


"7세 아동, 사행성 게임에 빠지다...!"


돌이켜 보면 진정한 야만의 시대임에 틀림없다. 비록 나의 첫 게임은 슬롯머신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후 내 삶은 사행성과 거리가 멀었다. 학교 앞에서 했던 뽑기조차 그다지 큰 흥밋거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도박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보고 듣게 되었다. 그것도 성인이 아닌 청소년 도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소식이었다. 나처럼 어릴 때 우연히 오락실에서 접해본 것도 아닐 텐데,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도박을 시작하게 된 걸까?

내막을 들여다보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디바이스를 타고, 게임의 탈을 쓴 도박이 아이들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도 칼을 빼 들었겠는가. 2024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었고, 카지노를 모사한 게임장에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는 고시가 시행되었다. 사행성 게임이 아이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국가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법이 바뀌어도, 아이들 손 안의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다.


나는 게임물 전문지도사 이자 게임물 모니터링 경험자로서, 넓게 보면 게임이라는 범주 안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게임과 도박을 엄격히 구분하려 노력한다.


일단, 명확히 하자면 게임은 도박이 아니며, 도박은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도박이 게임을 친숙한 매개체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박이 화려한 그래픽과 레벨업 시스템 같은 게임적 요소를 모방하고 있고, 반대로 게임 안에도 도박처럼 우연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 속의 확률형 아이템은 돈으로 확률을 사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노력 없이 운에 기대어 더 빠르고 강력한 보상을 주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간다. "뽑기나 도박이나 운인 건 똑같잖아요?"라며 경계심을 허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게임과 도박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경계선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게임과 도박은 무엇이 다를까?

첫째, 투명성의 차이다. 게임은 법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100% 공개해야 하지만, 불법 도박은 그 확률을 조작하거나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둘째, 환전 가능 여부다.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게임은 획득한 아이템이나 점수를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 반면, 도박은 현금화를 목적으로 한다.


흔히들 묻는다. "그럼 포커나 고스톱 게임은 도박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도박이 아닌 [사행행위 모사 게임물]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하다. 도박의 룰을 따르고는 있지만, 현금으로 환전되지 않고 법의 규제 안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사행성이 짙기에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 기준보다 더 중요한, 우리 아이들에게 꼭 알려줘야 할 차이점이 있다. "결과를 누가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게임은 나의 노력과 실력이 결과를 만든다. 내가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전략을 짜고, 컨트롤을 해서 성취를 이뤄낸다. 그 과정의 즐거움이 게임의 본질이다. 그러나 도박에는 노력과 실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오직 운과 욕망으로 결과를 만들 뿐이다.


어린 시절, 의미도 모른 채 기계 앞 버튼만 누르던 코흘리개였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게 내가 주도하는 놀이가 아니라, 기계가 던져주는 우연에 목을 매는 일이었다는 것을.


지금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도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게임하지 마"라고 혼내기 전에 한 번쯤 물어봐 줘야 한다.
"지금 네가 하는 그 게임, 네 실력으로 하는 거니? 아니면 운으로 하는 거니?"


우연한 행운보다 정직한 노력을 믿는 것.
이것이야말로 슬롯머신 키드였던 내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진짜 게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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