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카미디어 PCARMEDIA Feb 09. 2022

닷지 바이퍼 : V10 퓨어 아메리칸 스포츠카

수요 명차 극장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포니카'라 불리는 스포츠 쿠페 삼인방-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닷지 챌린저일 것입니다. 이들은 고성능 V8 엔진을 얹은 중형차, '머슬카' 장르에서 파생된 모델로, 사실 초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부터 정통 스포츠카로 기획된 모델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정통 2-시터 스포츠카로 여겨지는 건 쉐보레 콜벳입니다. 처음부터 유럽산 스포츠 쿠페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고,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의 메이저 브랜드에서 대량생산되는 아메리칸 스포츠카의 대표주자입니다. 인지도나 인기, 성능 등 여러 면에서 콜벳에 대적할 미국산 스포츠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콜벳의 아성에 도전했던 전설, 바이퍼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런 콜벳의 아성에 도전하고, 실제로 콜벳을 제법 위협했던 스포츠카가 있습니다. 바로 닷지 바이퍼입니다. "전설적인 쉘비 코브라의 재림"을 모토로 등장한 바이퍼는 콜벳에 비해 그 역사는 짧지만, 강렬한 디자인과 성능, 그리고 상징적인 V10 엔진으로 오늘날까지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메리칸 슈퍼 스포츠카로 기억됩니다.


트럭 엔진에서 시작된 스포츠카 프로젝트
바이퍼에 트럭 엔진이 얹혔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지만, 트럭 엔진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인 건 맞습니다.

흔히 닷지 바이퍼 하면 '트럭 엔진으로 만든 스포츠카'라고 이야기합니다. 후술하겠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트럭 엔진을 그대로 얹은 차는 아닙니다. 하지만 바이퍼의 역사가 트럭 엔진에서 시작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1988년, 당시 크라이슬러 제품 개발 담당 부사장이었던 밥 루츠(Bob Lutz, 후일 GM의 부회장까지 역임했고, GM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빈카운터스'라는 회고록으로 유명합니다)는 크라이슬러 산하 브랜드 닷지의 픽업트럭을 위한 V10 엔진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풀사이즈 픽업트럭들은 성능 경쟁이 한창이었는데, 닷지는 기존 V8 엔진보다 성능이 강력한 V10 '매그넘' 엔진을 도입해 경쟁자들을 압도할 계획이었죠.

밥 루츠. 미국 자동차 산업의 거물이었던 그는 바이퍼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양산을 앞둔 V10 엔진을 살펴보던 그는, 이 강력한 엔진으로 스포츠카를 만들면 대중적인 닷지 브랜드의 헤일로 카(halo car)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라이벌 쉐보레의 콜벳과 같이 말이죠.


루츠는 콜벳의 대항마가 될 스포츠카가 6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AC-쉘비 코브라와 같은 콘셉트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AC-쉘비 코브라는 당초 영국 AC에서 만든 '에이스'라는 경량 로드스터에 캐롤 쉘비(Carroll Shelby, 영화 <포드 v. 페라리>에도 등장했던 레이서 출신 자동차 제작자였습니다)가 포드의 V8 엔진을 얹어 만든 고성능 스포츠카였습니다.

오리지널 쉘비 코브라. 지금도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로드스터입니다.

쉘비 코브라는 스틸 튜뷸러 프레임 차체에 고성능 엔진을 얹고 군더더기를 싹 덜어내 아주 과격하고 조종하기 어려운 차였습니다. 하지만 '날것'인 만큼 운전 재미 하나는 보장할 수 있었고, 더구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배기량 엔진을 얹은 로드스터이니만큼 대중적인 인기도 보장할 수 있었죠.


밥 루츠는 점차 구체화되는 'V10 엔진을 얹은 현대적인 코브라'의 구상을 당시 크라이슬러 디자이너였던 톰 게일(Tom Gale)에게 전달합니다. 톰 게일은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중흥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본인 또한 엄청난 자동차광이었습니다. 그 또한 스스로 코브라의 현대적 재해석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루츠의 제안에 곧바로 스케치를 들고 와 화답합니다.

톰 게일은 '코브라 부활 프로젝트'를 듣자마자 과거에 그렸던 스케치를 들고 와 화답했습니다.

이렇게 불과 몇 달 만에, 트럭 엔진에서 시작된 하나의 아이디어는 클레이 모델을 거쳐 구동까지 가능한 프로토타입이 됐습니다. '쉘비'와 '코브라'의 상표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독사의 이미지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바이퍼(Viper)'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퍼 콘셉트카는 19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대박'이 났습니다.


V10 엔진에 바퀴를 단 차
바이퍼의 프로토타입 콘셉트카. 19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얻었습니다.

모터쇼에 등장한 바이퍼 콘셉트카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습니다. 코브라로 대변되는 대배기량 퓨어 로드스터의 재림에 고객들은 양산이 결정되기도 전에 차를 예약하고 싶다며 크라이슬러 본사에 편지를 보내 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와 이사회는 닷지 브랜드가 시도한 적 없던 고성능 로드스터의 상업성에 의문을 품고 결재를 미뤘습니다. 하지만 밥 루츠와 총괄 엔지니어였던 로이 쇼버그(Roy Sjoberg)가 뜨거운 반응을 들고 가 이사회를 설득했고, 마침내 2년이라는 짧은 개발 기간과 7천만 달러에 불과한 개발 예산이 주어집니다.


기존 모델과 플랫폼을 공유하지 않는 완전 신차를 개발하는 기간과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바이퍼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애초부터 '코브라의 부활'을 콘셉트로 한 만큼, 강력한 파워트레인과 인증 법규를 충족할 최소한의 장치들만 있으면 됐으니까요.

트럭용이었던 매그넘 엔진은 람보르기니의 손길을 거쳐 최강의 스포츠 엔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우선 제대로 된 엔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V10 엔진의 기본 성능이 걸출하다 해도, 트럭용 엔진을 그대로 스포츠카에 얹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던 람보르기니의 엔진을 사용하는 방안도 제시됐으나 미국산 스포츠카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때문에 바이퍼의 엔진은 매그넘 엔진과 같은 OHV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되, 경량화와 성능 강화를 위해 헤드와 블록을 주철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전면적인 재설계를 거칩니다. 이 작업은 고성능 알루미늄 엔진 개발 노하우가 풍부한 람보르기니가 담당했습니다.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한 바이퍼는 V10 엔진에 바퀴를 달아놓은 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사실 엔진 외에는 특별히 공들여 설계할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저 V10 엔진을 적절한 위치에 올려놓고, 바퀴를 달고, 이를 조작할 수 있는 운전석을 배치하는 게 끝이었죠. 대량생산 승용차에서 중시되는 편의성이나 거주성, 고급감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차는 코브라의 후예였으니까요.


애초에 바이퍼의 상징과도 같은 긴 노즈와 프론트 미드십 레이아웃은 모두 V10 엔진을 중심으로 설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얻어진 부산물이었습니다. 즉, 바이퍼는 V10 엔진을 얹은 스포츠카가 아니라 V10 엔진에 바퀴를 달아놓은 차나 다름없던 것입니다.

순수한 달리기에 집중한 덕에, 바이퍼는 빠르게 양산차로 거듭났습니다.

덕분에 개발은 빠르게 이뤄졌고, 정말로 2년여 뒤인 1991년 말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에 두 대의 선행양산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상적인 프론트 미드십 스포츠카의 비례, 좌우 측면에 튀어나온 남성적인 배기구, 그리고 V10 엔진의 포효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이듬해 1월, 양산 버전인 바이퍼 RT/10의 고객 인도가 시작됩니다.


미국산 독사가 돌아왔다!
바이퍼는 첨단 기술 따위 없이 오직 주행 성능에만 집중한 퓨어 로드스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은 첨단 기술의 각축장이나 다름없습니다. 90년대 초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내로라 하는 자동차 회사들이 내놓는 스포츠카들은 터보차저, 4륜구동, 전자제어식 서스펜션 등 각종 첨단 기능을 앞다퉈 탑재하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바이퍼의 인테리어. 튜닝용 스티어링 휠처럼 생긴 저것이 놀랍게도 순정 사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퍼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첨단 신기술은 커녕 ABS, 아니 심지어는 윈드실드 외에 제대로 된 유리창도 없었습니다. 마치 군용차처럼 캔버스탑과 비닐 창문이 달려 있었고, 옵션으로도 에어컨을 장착할 수조차 없었죠. 안전장비는 3점식 안전벨트가 전부였고, 대시보드는 플라스틱과 싸구려 비닐 투성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퓨어 로드스터였죠.

V10 엔진은 바이퍼의 그 자체로서 바이퍼의 존재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바이퍼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8.0L의 무식한 배기량에 람보르기니의 손길이 닿은 V10 엔진이 있었으니까요. 오직 바이퍼 만을 위해 탄생한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당대 미국차 중 최고 수준이었던 400마력이었고, 64.2kg.m의 무지막지한 최대토크는 불과 3,600rpm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일 쇼크와 함께 사라진 옛 황금기의 머슬카들 이후로 이런 성능을 내는 엔진은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게다가 2톤 넘는 거대한 차체를 지녔던 옛 머슬카들과 달리, 바이퍼는 323kg 짜리 V10 엔진을 얹고도 공차중량이 1,490kg에 불과했습니다. 0-100km/h 가속은 4.6초면 끝났고, '쿼터 마일'이라 불리는 400m 드래그는 12.6초 만에 주파했습니다.

바이퍼는 양산차로선 많이 허술했지만, 모든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이퍼는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차 특유의 헐렁한 핸들링 감각은 어쩔 수 없었지만, 바이퍼는 유럽산 슈퍼카들과 견줘도 손색 없는 우수한 코너링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토크, ABS와 트랙션 컨트롤 따위 없는 날것의 주행감각은 등골 오싹한 운전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마치 바이퍼의 롤 모델이 된 코브라의 그것과도 같았죠.

생산량이 극히 제한된 바이퍼를 사기 위해 웃돈까지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이퍼는 연간 3,000대만 생산됐습니다. 때문에 이 과격한 스포츠카를 사려고 줄 선 사람들 사이에는 엄청난 경쟁이 붙었고, 심지어 정가의 3~4배의 웃돈을 주고 사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덩달아 닷지 브랜드는 단순한 대중차 브랜드가 아닌, 미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포츠카를 만드는 회사가 됐습니다. 바이퍼를 닷지의 새 얼굴, 헤일로 카로 만들고자 했던 밥 루츠의 전략이 먹힌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닷지가 그룹 내에서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담당하는 데에는 바이퍼의 공이 컸습니다.


물론 바이퍼에도 아쉬운 요소들은 있었습니다. 우선 스타일을 중시하다보니 스포츠카 답지 않게 공기역학 성능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공기저항계수(Cd)는 0.495로, SUV나 고속버스보다도 나쁜 수준이었죠. 강력한 성능과 가벼운 차체에도 최고속도가 257km/h에 불과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또 캔버스탑이 주행 중 날아가 버리는 등 실용성이 떨어지는 점, 아무리 그래도 90년대 대량생산 회사의 양산차 치고는 지나치게 편의사양이 부족한 점 등이 지적됐습니다.

1996년에는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SR II가 공개되며, 쿠페형 GTS도 라인업에 추가됐습니다.

이에 1996년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버전(코드명 SR II, 이를 2세대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에서는 여러 부분이 개선됩니다. 범퍼 형상 개선으로 공기저항을 크게 줄였고, 쿠페 버전인 GTS가 추가됐습니다. GTS는 에어백, 에어컨, ABS 등 편의사양과 안전사양이 대폭 강화됐는데요. 헬멧을 쓰고도 편하게 탈 수 있도록 쿠페 버전에 처음 적용된 더블 버블 루프는 훗날 바이퍼의 대표적인 디자인 요소로 남습니다.


SR II에서는 엔진의 최고출력이 421마력으로 높아졌고, 1998년에는 다시 한 번 개량을 거쳐 460마력을 내게 됩니다. 쿠페 버전은 엔진 강화와 공력 성능 개선에 힘입어 0-100km/h 가속 시간이 4.3초로 줄고, 최고속도는 312km/h로 높아졌습니다.

유럽 회사들은 바이퍼를 우습게 봤지만, 바이퍼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그 성능을 증명했습니다.

또 SR II에서는 최초로 퓨어 레이스 버전인 ACR이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프로 모터스포츠에도 출전하기 시작합니다. 유럽의 강호들은 "무식한 엔진을 얹은 미국산 스포츠카"라며 바이퍼를 무시했지만, 불과 출전 1년 만인 1997년에 FIA GT2 클래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며 괴물같은 저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1세대 바이퍼는 2002년 단종되고, 3세대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습니다.

1세대 바이퍼는 2002년, 그룹 차원의 지원 하에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2세대(코드명 ZB I)의 등장과 함께 단종됩니다. 2세대 모델은 많은 부분의 개선이 이뤄졌지만, 자연흡기 V10 엔진을 얹은 퓨어 스포츠카의 아이덴티티 만큼은 그대로 계승했죠. 뒤이어 2013년 출시된 3세대에서도 세상에 둘도 없는 바이퍼 만의 정체성은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2017년, 바이퍼는 안전 규제 강화로 단종 수순을 밟았습니다. 심지어 바이퍼를 생산했던 공장조차 사무실로 대체되면서, 마치 쉘비 코브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듯 그 뒤를 이은 바이퍼 역시 이제는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습니다.

이제는 단종됐지만, 바이퍼는 여전히 미국 스포츠카의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이퍼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 중 하나입니다. 상태가 좋은 차들은 아직까지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잊을 만하면 부활설이 언론을 타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오래도록 회자된다는 건, 바이퍼만의 매력을 대체할 수 있는 차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해도 독사의 계보를 잇는 아메리칸 퓨어 스포츠카, 바이퍼를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