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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서 가장 막히는 도로 중 하나인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한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 양재IC부터 동탄IC에 이르는 32.3km 구간에 대한 지하화가 추진되며, 이와 별개로 서울시 차원에서 한남IC~양재IC 구간의 지하화를 추진 중입니다. 이 밖에 경인고속도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등 수도권 주요 고속도로의 지하화 계획도 밝혔는데요.
앞서 개통한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인천 북항 구간이나 신월여의지하도로, 서부간선지하도로 등의 경우에도 진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 터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새로 개통하는 고속도로의 경우 지하 터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기존 지상 및 고가도로의 지하화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어두컴컴하고 공기도 탁한 터널보다 지상으로 달리는 쪽이 더 좋습니다. 길이 막힐 때는 창 밖의 풍경을 볼 수 있고, 아무래도 사고가 났을 때도 터널보다는 지상도로가 안전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지하 고속도로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상에 더 이상 고속도로를 지을 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 지하화 고속도로의 공통점은 대도시권(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부산권)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도시권은 여러 개의 도시가 끊임없이 이어진 연담도시(聯擔都市) 형태로, 드문드문 빈 땅이 있다 하더라도 고속도로 노선을 새로 깔 만한 공간은 부족한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신규 노선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도로가 포화상태였던 경인고속도로나 서부간선도로의 경우, 이미 도로 양 옆으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확장 공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입체화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죠.
여러 개의 도로를 입체화하는 방법에는 고가화와 지하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가화가 지하화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공사기간도 짧아 기존에는 도시권에 고속도로를 신설할 때 고가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내부순환로나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도 그런 경우인데요.
고가도로는 하천이나 기존 도로를 따라 건설함으로써 토지 수용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모든 구간에서 그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때문에 일부 구간에서는 토지를 수용해야 하는데, 과거와 달리 지가가 오르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토지 수용을 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게다가 고가도로가 들어서면 도로 주변의 일조권 침해, 소음·분진 등 공해, 슬럼화 등으로 발생하는 민원이나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는 수 년 간의 교통 혼잡은 덤이죠.
반면 지하화의 경우 기본적인 km 당 건설 비용은 고가도로보다 비싸지만, 토지 수용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공법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건설 비용과 시간도 줄었습니다. 최신 지하화 공사 현장을 가 보면 진출입로 외의 구간에서는 지하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를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지하화를 통한 확장 외에도 기존의 지상도로에 대한 지하화 요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상도로가 소음·진동·분진 등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것 외에도 도로 양쪽의 지역 간 단절을 유발하기 때문인데요. 미국 보스턴의 '빅 디그(The Big Dig)' 지하도로의 경우처럼 기존 도로를 지하화한 뒤 지상 공간을 녹지나 공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커 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수도권과 같은 대도시권의 경우, 그저 지하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미 지하철, 수도·가스 배관, 전기·통신 배선 등 지하에 엄청나게 많은 기반 시설들이 깔려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의 대도시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대심도 개발입니다.
대심도란 지하 40m 이하의 깊은 지하 구간으로, 일반적인 지하 공간 개발이 이뤄지는 천심도(지하 5m 이내), 중심도(지하 5~40m)보다 깊은 땅 속입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하는 만큼 공사가 어려워지지만, 토지 보상 의무가 없어 지상 및 지하 구조물을 무시하고 공사를 할 수 있어 미래 대도시 교통망의 핵심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대심도 공사의 또 다른 장점은 도로 간의 2~3중 입체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경인고속도로 서울 구간의 경우, 지상도로는 일반도로화해 접근성을 높이고, 지하 1층 도로는 현재와 같이 모든 차량이 이용하는 도로, 지하 2층 도로는 여의도에서 신월IC까지 빠르게 연결하는 대심도 도로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행선지에 따라 교통량을 3개의 도로로 분산시켜 사실 상의 도로 확장 효과를 얻는 건 물론, 지상 공간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산은 물론 하천도 지하로 통과할 수 있어 도로 직선화와 선형 개선을 통한 평균속도 향상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 덕에 최근 대도시권에 건설되는 많은 지하도로들이 대심도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부산 내부순환도로(만덕~센텀 간 지하도로), 부산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등이 대심도로 건설되고 있으며, 철도 분야에서도 GTX, 고속철도 및 지상 전철 지하화 등의 과정에서 대심도 개발을 채택 중입니다.
물론 지하 개발이 능사는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최신 지하도로는 첨단 안전설비를 잘 갖추고 있지만, 그럼에도 화재나 대형 교통사고 발생 시에는 대피 및 대응이 지상도로보다 어렵습니다.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렸을 때 배수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 침수의 우려도 있습니다.
또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공사 후 지하수 유실로 일부 지역에서 건물 붕괴나 땅꺼짐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시공 과정에서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지상 구조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지상에서의 도로 공사보다 훨씬 신중한 계획 수립 및 시공이 요구됩니다.
그 밖에도 대규모 환기 설비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주변 지역의 환경 오염 우려, 지상 대비 교차로나 중간 진출입로(인터체인지) 설치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 변화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좋든 싫든 미래의 도로망에서는 지하도로의 비율이 늘어날 것이고, 일상적으로 지하도로를 이용하는 비율도 늘어날 것입니다. 장점 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지만, 더 윤택한 교통 환경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겠죠? 지하도로에서는 늘 더욱 안전에 유의해 운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