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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Mar 08. 2022

100년 만에 부활한 구세주? 전기차의 역사

카 히스토리

2020년대의 자동차 산업에서는 전기차에 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2015년 디젤게이트 사건 이후 내연기관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전기차는 주행 중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현실적인 미래차의 대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 기준 650만 대에 달해 전체 신차 판매량의 8.5%를 차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길에서 전기차를 보기 어렵지 않고, 주변에도 전기차 오너가 한두 명씩 있기 마련이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공서 관용차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증가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지만,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도 먼저 발명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때 주류 운송수단으로 각광 받다 몰락한 뒤 100년 만에 돌아온 전기차, 오늘은 그 탄생과 발전사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긴 전기차의 역사
인류는 유사 이래 보다 편하고 빠른 탈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사진은 퀴뇨의 증기차.

바퀴의 발명 이래 탈것을 인력 외의 힘으로 움직이려는 노력은 수천 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배처럼 돛을 달거나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방식도 고안됐지만 모두 실험에 그쳤고, 탈것의 동력원은 오랫동안 인력 또는 말이나 소 같은 동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죠.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장치를 사용해 추진하는 탈것을 만드는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보기 시작했고, 증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18세기 초부터는 많은 발명가들이 자동차의 상용화를 위한 연구에 뛰어듭니다. 같은 시기 기관(engine) 외에도 전기로 구동하는 전기 모터가 발명되면서, 이 모터로 구동하는 전기 자동차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계 최초의 전기 탈것은 1832년 경 영국의 발명가 로버트 엔더슨(Robert Anderson)이 만든 전동 마차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 차는 전기로 천천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일회용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를 다 쓴 뒤 계속 갈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운송수단이라기보단 전기 모터의 실증 및 시연용으로 제작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트루베 삼륜 전기차의 레플리카. 마치 자전거에 커다란 구동바퀴를 달아놓은 듯한 형태였습니다.

반복 충전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가 1859년 프랑스에서 발명되며 전기차의 잠재력도 크게 높아집니다. 1881년에는 프랑스의 귀스타브 트루베(Gustave Trouvé)가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울 수 있고 재충전이 가능한 삼륜차를 발명해 공개합니다. 이 차는 비대칭 구조로, 왼쪽의 큰 바퀴가 모터와 연결돼 구동력을 전달하고 오른쪽 앞바퀴로 조향하는 방식이었는데요. 비록 특허 출원과 상용화에는 실패했지만, 트루베의 전기차는 칼 벤츠의 삼륜 내연기관차 '파텐트-모터바겐'보다도 5년이나 빨리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트루베가 삼륜차를 선보인 뒤 몇몇 엔지니어와 발명가들은 전기차의 가능성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런던 지하철의 전동화를 추진한 영국의 발명가 토마스 파커(Thomas Parker)는 전기 모터가 매연을 내뿜는 증기기관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 1884년 영국 최초의 전기차를 만들어 시판합니다. 이처럼 초기의 전기차 산업은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1886년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내연기관차가 처음부터 혁신적인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앞서 증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가 이미 도로 위를 돌아다니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가장 주류였던 이들 세 종류의 자동차는 각자 장단점이 있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태동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확실한 건,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는 것입니다. 초기 내연기관은 지금보다 훨씬 시끄럽고 고장도 잦았습니다. 대규모 석유 시추 및 정유 산업이 정착되기도 전이라 가솔린 가격도 비쌌고요. 반면 전기차는 조용하고 상대적으로 고장도 적은 데다, 이미 대도시에는 전력망이 깔리기 시작했던 시기라 충전도 비교적 용이했습니다.


어려운 변속기 조작법을 익힐 필요도 없고, 낑낑거리며 핸들을 돌려 시동을 걸 필요도 없었으며, 증기 자동차처럼 보일러를 데우느라 1시간씩 물을 끓이지도 않았죠. 어짜피 당시의 교통 환경에서 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일은 거의 없었기에 짧은 주행거리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기차는 그야말로 최적의 도심형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잡한 내연기관이나 증기기관이 없으니 대량생산도 더 빨리 시작됐습니다. 1902년 스투드베이커가 미국 최초의 대량생산 전기차를 선보였고, 영국에서는 1897년 택시용 전기차가 대량 납품됩니다. 1900년 기준 미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3만 3,842대에 달했고, 전체 자동차 중 전기차의 비율은 38%로 내연기관차의 두 배 가까이 됐습니다. 전기차의 첫 번째 황금기라 할 수 있었죠.


조금 더 빨리 전기차 시대가 '올 뻔'했던 이야기
여러 발명과 발견, 그리고 내연기관차의 대량생산으로 전기차는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전기차의 '좋은 시절'은 갑작스럽게 끝을 맞이합니다. 1910년 최초의 전기식 시동장치가 출시되면서 내연기관차의 가장 큰 문제였던 시동의 번거로움을 해소했고, 자동차의 고성능화와 도로망 발달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해지면서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는 조금씩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텍사스, 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 등 미국 여러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며 기름값이 저렴해지고 주유소도 곳곳에 지어져 내연기관차의 운행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몰락에 쐐기를 박은 건 헨리 포드의 모델 T 대량생산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극도의 생산 효율화와 원가 절감을 통해 자동차의 대중화를 추구했던 모델 T는 1908년 출시된 뒤 매년 더 저렴해졌고, 1913년에 이르러서는 전기차 대비 절반의 가격에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전기차의 발전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전자·전기 기술의 정밀도가 현저히 떨어졌던 20세기 초의 기술로는 배터리의 성능이나 충전 속도를 향상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고, 가격을 낮추기도 힘들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렬 하이브리드 방식도 고안됐지만, 철도 외의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결국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 내연기관차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기차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나마 전기차는 도심형 초소형차나 골프카트 따위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1920년대부터 약 70년 간의 자동차 산업은 철저히 내연기관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증기기관 자동차는 1930년을 전후해 완전히 '멸종'했지만, 그나마 전기차는 특수한 용도로 종종 사용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주로 장거리 주행이 필요 없는 제한된 구역 내의 우편·우유 배달 차량이나 골프 카트 등으로 전기차가 활용됩니다.


물론 크고 작은 제조사들이 꾸준히 전기차의 프로토타입이나 콘셉트카, 혹은 소량의 양산차로 전기차를 선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유의미한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동력원에 대한 '스터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GM 임팩트 콘셉트카. 현실적인 전기차의 등장에 미국 자동차 산업은 격동기를 맞이합니다.

전기차가 다시금 자동차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90년의 일입니다. GM은 최신 기술력을 쏟아부어 당장 실현 가능한 전기차 콘셉트카 '임팩트(Impact)'를 LA 오토쇼에 출품합니다. 이 차는 그저 상상에 불과했던 전기차를 현실로 옮겨 왔다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를 만들 기술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1998년부터 무공해차(Zero Emission Vehicle, ZEV)의 판매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GM EV1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 투입돼 지금 기준으로도 썩 나쁘지 않은 차였습니다.

GM은 임팩트 콘셉트카의 양산을 추진하고, 1994년 GM EV1을 출시합니다. EV1은 2인승 소형 쿠페로, 137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1회 충전으로 60마일(97km)를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배터리가 개선되며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247km까지 늘어나 현재의 전기차와도 비슷한 수준까지 발전했죠.


이 차를 계약한 사람들은 전기차 특유의 경쾌한 가속력과 뛰어난 경제성, 정숙성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GM은 호기롭게 내놓은 이 차가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끄는 건 시기상조라 판단했고, 2002년 리스 형태로 계약했던 차량들을 모두 회수해 폐기하고 프로젝트를 덮어버립니다. 캘리포니아의 ZEV 규제도 소송에 휘말리며 흐지부지되면서, 반짝 등장한 전기차는 다시금 자취를 감추고, 하이브리드 자동차(HEV)가 대표적 친환경차로 부상합니다.

EV1이 직접 전기차 혁명을 불러오진 못했지만, 다음 세대 전기차의 단초를 마련합니다.

EV1이 계속 판매됐다면 전기차 대중화 시대는 더 빨리 올 수 있었을까요? 혹자는 이 차가 석유화학 기업들의 로비로 사라진 것이라며 GM의 프로젝트 포기를 비판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는 전기차를 상용화하는 건 무리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하지만 EV1이 뿌린 씨앗은 다음 세대 전기차 등장의 단초가 됩니다.


100년 만에 부활한 전기차는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테슬라는 전기차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습니다.

2000년대 들어 주로 도심형 초소형 이동수단이나 소형차 위주로 근근히 개발되던 전기차의 패러다임을 바꾼 건 2008년 출시된 테슬라 로드스터입니다. 테슬라는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와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이 세운 회사인데요. 이들은 GM EV1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미래 탈것으로서의 전기차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전기차 스타트업을 세운 것입니다.


이후 젊은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합류하며 테슬라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얻었고, GM EV1의 구동계를 만든 AC 프로펄션 사의 파워트레인과 로터스 엘리스의 차체를 결합해 첫 양산차 로드스터를 출시합니다.

테슬라는 전기차의 외연을 확장하고 대량생산 전기차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테슬라의 등장은 여러 모로 혁신적이었는데요. 특히 "주행거리가 부족해 도심에서 느리게 돌아다니는 소형차"라는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무너뜨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친환경차도 럭셔리하고 스포티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낸 점에서, 테슬라는 후일 출시되는 양산 전기차들의 기준을 제시하게 됩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였던 닛산 리프. 2010년대 들어 양산 전기차가 눈에 띄게 늡니다.

2010년에는 일반인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대량생산 전기차, 닛산 리프가 미국에 출시되며 전기차 전쟁의 서막을 엽니다. 르노, 스마트, 쉐보레, 볼보, 포드, 폭스바겐 등 여러 회사들이 2010년대 초 양산 전기차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테슬라는 2012년 최초의 전기 럭셔리 세단인 모델 S를 출시하며 전기차 시장의 저변을 넓혀 나갑니다.


현대적인 설계의 전기차가 속속 등장했지만, 여전히 전기차에 대한 제조사들과 소비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주행거리가 짧고 값비싼 전기차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었고, 제조사는 낯선 전기 파워트레인 대신 내연기관으로도 충분히 환경 이슈에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5년 발생한 디젤게이트는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습니다.

디젤게이트는 내연기관의 대한 회의론과 전기차로의 전환을 불러온 중대한 사건입니다.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이 발각되면서 발생한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내연기관에 대한 회의론이 크게 확산됐고, 주행 중 배출가스가 전혀 없는 전기차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미래차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죠. 또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조사 입장에서도 규제를 충족하는 내연기관을 만드는 것보다 전기차를 개발하는 게 더 경제적인 선택이 됩니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위해 대대적인 구매보조금 정책까지 시행하면서, 전기차는 1910년대 도태된 지 100년여 만에 다시금 자동차 산업의 중핵으로 떠오릅니다. 한 세기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전자·전기 공학 덕에 전기차는 이제 내연기관차와 겨룰 수 있을 만큼 저렴해지고, 성능이나 주행거리, 충전 속도 같은 단점들도 빠르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이상적인 친환경차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인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전기차가 가장 이상적인 친환경차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특히 생산 단계의 희토류 채굴 과정에서의 오염, 친환경 대체에너지로의 완벽한 이행의 어려움, 사후 배터리 폐기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전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 관점에서 본다면 전기차의 환경 오염도 적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 전기차가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미래에는 더 멋진 전기차가 등장하겠죠? 전기차의 발전을 기대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연기관의 쇠락과 현실적 친환경차로써의 전기차의 성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대책 없는 비판보다는, 당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죠? 앞으로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들어오게 될 전기차의 미래 발전을 기대해 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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