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트렌드
최근 "차 타고 다니기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상승세였던 기름값이 연초부터 무섭게 치솟으면서,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점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3월 28일 기준 전국 평균 유가는 휘발유 2001.01원/L, 경유 1920.24원/L에 달합니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 당 2000원을 넘은 건 지난 2012년 10월 이후 처음입니다. 그나마도 당시에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되지 않아 리터 당 약 168원 가량 저렴했던 걸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미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이처럼 급변하는 유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저유가 기조가 이어져 왔던 만큼, 갑작스러운 기름값 상승은 큰 부담인데요. 기름값이 폭등하는 원인은 무엇이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까요?
큰 맥락에서 보자면 글로벌 유가는 지난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해 안정적인 저유가 기조를 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2020년에는 감산 합의가 지체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유류 소비가 급감, 기름값이 뚝 떨어지는 일도 있었죠. 이후 주요 산유국의 감산 합의가 이뤄졌고, 2020년 중순 이후로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 왔습니다.
그러던 유가가 요동치기 시작한 건 2021년 하순의 일입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팬데믹 종식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유류 수요도 급증한 것이죠. 여기에 팬데믹 종식을 앞두고 물류 수요가 크게 늘면서 세계적인 물류 대란 사태가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유가도 폭등세를 보였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유류세 20% 인하 조치를 시행하면서 지난 몇 달 간 일시적으로 유가가 안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물류 대란 등으로 계속 불안정하게 요동치던 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폭등세로 전환했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산유국이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 불확실성이 커 졌고, 여기에 러시아를 규탄하는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와 수출입 규제까지 더해져 유가가 치솟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는 어느 정도 조정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油)의 가격이 배럴 당 110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향후 국제 정세에 따라 배럴 당 150달러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유가 급등에서 특이한 점은 경유 가격의 폭등입니다. 통상적으로 국내에서 경유 가격은 휘발유 가격의 80%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생산 단가는 경유가 더 비싸지만, 경유에 비교적 적은 세금이 붙어 소매가는 더 저렴하게 책정돼 왔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경유 가격이 약 32% 오르는 가운데 휘발유 가격은 23% 상승에 그쳐 현재 경유 가격은 휘발유 가격의 96%에 달합니다. 심지어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비싼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유 가격이 오르는 건 국내 만의 추세가 아닙니다. 물류 대란과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 겹치면서 화물차 등 운송 분야와 산업 분야에 주로 사용되는 경유 수요가 늘었고, 이로 인해 가격이 빠르게 오른 것이죠.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따라잡으면서 이로 인한 물류 비용 상승이 이어질 우려도 제기됩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건 정유사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유가가 치솟는 와중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물류·여객 수요는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유사 입장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이 높아지고,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높은 정제마진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정유사 역시 급격한 유가 상승이 달갑기만 한 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극대화되지만, 급등한 유가가 언젠가 하락하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유가 상황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수요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어 장기적으로는 실적 악화를 겪을 우려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가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석유는 모든 산업의 기본 원자재 중 하나이자, 운송 부문의 핵심 연료입니다. 이러한 유가가 통상적인 물가상승률을 넘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면, 이로 인해 생산 및 물류 비용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팬데믹과 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유가 부담까지 가중될 경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을 우려가 커 집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현재 세계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며, 에너지 수급까지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가 완전히 뒤틀렸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눈덩이처럼 굴려져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기업과 일반인들입니다. 전경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 당 150달러를 넘으면 국내 주요 제조기업 중 70.1%가 적자 전환될 우려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 악화와 물가 상승은 서민 경기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어떨까요? 유가 상승으로 인해 자동차 운행이 줄고 수요가 감소하는 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유류비 부담이 큰 가솔린 차량의 판매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젤차는 연비가 좋긴 하지만 지난해 요소수 대란에 이어 경유값의 가파른 상승을 겪으며 경쟁력을 잃고 퇴출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반면 고효율 하이브리드나 순수전기차 수요는 늘면서 전동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들 차량 역시도 장기화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공급난이 이어지는 상황인 데다, 유가 상승 자체가 산업에 주는 부담이 적지 않아 올해 자동차 회사들은 전반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가운데, 향후 팬데믹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물류와 관광이 재개되는 추세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기에 유류 수요는 꾸준히 늘어 유가의 하향세 전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현재로선 가장 큰 관건은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러시아에 가해진 각종 제재가 하루 아침에 풀릴 가능성은 낮습니다. 다만 원만한 협상을 통해 전쟁이 종식된다면 불확실성이 사라지며 서서히 유가가 안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군사적 수단을 포기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통제하려는 기조를 이어갈 경우, 추가적인 유가 상승 가능성도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고유가 기조가 적어도 내년까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특히나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막막하고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민생 부담을 덜기 위해 유류세 추가 인하를 검토 중이지만, 이 또한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입장입니다.
특히 각종 중국산 원자재 수급난과 요소수 대란 등을 거치면서 에너지, 원자재를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을 신뢰할 수 있는 서방세계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잇달아 터진 여러 악재와 그 피해를 생각한다면 국가적인 차원의 전략 마련이 요구되는 건 사실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가 상승으로 인해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건 일반 시민들입니다. 모쪼록 빠른 시일 내로 팬데믹의 혼란이 잦아들고,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되찾아 널뛰는 국제 유가도 진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