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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Jan 03. 2022

전기차 시대에도 엔진은 달린다

합성연료 e-퓨얼 이야기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전동화(electrification)일 것입니다. 엔진의 고동감과 배기음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세계적인 탄소 감축 기조가 이어지는 한 장기적으로 전기차가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100년 넘게 쓰여 온 내연기관이 하루아침에 퇴출 대상으로 낙인 찍힌 건 환경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갈 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이산화탄소 감축이 지구촌의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필연적으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주행 중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또는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다시 연료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탄소 배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계속 높아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미 전세계에 15억 대나 있는 내연기관차들을 폐차하지 않고 계속 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이를 실현해 줄 주인공이 바로 e-퓨얼(e-fuel)입니다.


e-퓨얼은 전기 기반 연료(electrofuel)의 약자입니다. 생산 과정에서 대량의 전기를 사용해서 붙은 이름인데요.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이 수소와 대기 중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인공적으로 탄화수소 화합물을 만드는 겁니다. 즉, 탄화수소로 이뤄진 화석연료가 폭발 반응을 일으킨 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배출하는데, 이 과정을 거꾸로 해서 다시 연료를 생산하는 거죠.

위 사진에서 보듯이 e-퓨얼의 생산에 필요한 전기는 친환경 신·재생 발전을 통해 얻습니다. 이산화탄소는 이미 대기 중에 넉넉히(?) 있기 때문에, DAC(Direct Air Capture)라는 장치를 사용하면 손쉽게 포집할 수 있습니다.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하는 데에는 1925년에 고안된 피셔-트로프슈(Fischer-Tropsch) 공정을 사용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온·고압의 반응로에서 철, 코발트 등의 촉매 반응을 일으켜 액화 합성연료를 생산해 내는 공정입니다. 합성 연료인 만큼 정제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차량용 휘발유, 경유는 물론 항공유나 선박용 연료로 만들 수도 있죠. 말 그대로 친환경 맞춤형 합성 연료라 할 수 있습니다.

e-퓨얼의 장점은 탄소중립성입니다. 생산에 필요한 전기는 친환경적인 발전을 통해 얻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다시 끌어다 사용하니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볼 수 있죠. e-퓨얼이 사용되면서 탄소를 배출하지만, 어차피 그 탄소를 다시 모아서 연료로 만드니까 속된 말로 '퉁'치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장점은 보급의 용이성입니다. 기존의 내연기관은 특별한 개조 없이 e-퓨얼을 즉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충전 인프라를 새로 깔아야 하는 전기차, 수소차와 달리 기존의 주유 시설도 그대로 쓸 수 있죠. 게다가 인공적으로 연료 특징을 조성할 수 있으니 화석연료 대비 연료 품질이 좋고, 이는 연비와 출력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충전 인프라 구축이 어렵고 저품질 연료를 쓸 수밖에 없었던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보급하기 훨씬 유리합니다. 전동화가 인프라를 구축할 능력이 있는 '선진국들만의 리그' 라는 비판을 받는 걸 생각하면,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대체연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 덕에 e-퓨얼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거대 정유기업인 엑손모빌, 쉘, 렙솔 등이 e-퓨얼 관련 기술에 수조 원대의 투자를 시작했고, 포르쉐·아우디 등 몇몇 자동차 회사도 발빠르게 e-퓨얼 개발 및 생산에 참여 중입니다. 특히 에너지 밀도 문제로 전동화가 어려웠던 항공기, 선박 등에 쓰일 것으로 기대되면서, 전기차 배터리보다 성장 잠재력이 훨씬 크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에너지 변환 효율이 나쁩니다. 전기를 직접 구동에 사용하는 전기차와 달리, 전기를 사용해 e-퓨얼을 생산해 다시 내연기관을 돌려야 하니 비효율적일 수 밖에요. 또 주행 중 배출가스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해 도심 대기오염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죠. 하지만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e-퓨얼은 완전한 전기차 시대가 오기 전까지 내연기관의 생명력을 연장시켜 줄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e-퓨얼은 언제쯤 보급될까요? 관건은 가격입니다. 전기를 많이 쓰고 공정 효율이 낮아 생산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훨씬 비싸거든요. 현재의 공정 효율을 기준으로 e-퓨얼의 소비자 가격은 2030년 리터 당 4,000~5,000원 선이 될 전망입니다. 휘발유나 경유보다 적어도 3~4배는 비싼 셈이죠. 내연기관을 정말 사랑하는 부자나 콜렉터가 아니고선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입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전망을 긍정적으로 잡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 공정의 효율이 높아지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2050년 경에는 지금의 가솔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각계각층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 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쨌거나 엔진을 사랑하는 자동차 마니아로서 e-퓨얼의 등장은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내연기관차를 몰면서도 지구에게 덜 미안해 해도 되니까요(저는 법으로 금지되기 전까지는 엔진 달린 차를 탈 거거든요). 여러분은 가까운 미래에 e-퓨얼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공존한다면, 어떤 차를 선택하실 건가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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