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Feb 18. 2024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존중하고자 하는 태도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러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멋진 말 같은데 뭔 소리인가 싶지? 곰곰 해석해 보면 이런 뜻일 거야. 행복한 가정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공통점을 나눈다면, 불행한 가정은 애정이든 돈이든 자녀든 제각각의 이유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읽다가 조직 공동체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떠올렸어. 일이 어렵더라도 다 같이 희망의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노라면 웃을 수도 있고 꽤 살만하겠지. 하지만 갖추어진 게 아무리 많아도 서로 뭘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면 뒤에서 욕하고 오해의 말들을 쏟아내어 불행하겠지.

한명수, <말랑말랑 생각법>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긍정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집합보다 행복할 수는 있다. 단, 주변에 소위 행복하다는 가정을 보면 의외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개개인의 집합체인 경우가 많았다. 나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보고 남에 대한 기대와 의존이 낮을 때 오히려 함께 있어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불행한 가족은 개개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일원들의 고개를 억지로 돌려가며 통일하려는 압력이 존재할 때 억울함이 생기고 분열이 시작됐다. 즉 각기 다른 개개인이 모여도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받느냐의 유무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같은 곳을 보고 비전을 공유한다면 물론 일할 맛 나는 회사가 되겠지만 승진의 기회도 월급도 다 다른 구성원들이 모여 같은 이유로 다 같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마당에 회사에서 일률적인 목표를 강요하고 견딜 자신이 없으면 떠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회사에 다니면서도 불행한 채로 탈출만을 꿈꿀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고 의사결정이 매번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 때, 그 회사는 많은 구성원이 다닐만한 회사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행복한 집단의 비결은 존중과 배려인 것 같다. 서로 다른 곳을 보는 것 까지도 괜찮지만 그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때 그 집단은 각기 다른 명목으로 분열되기 마련이다.


다르더라도 이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저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공통점을 나눈다고 표현한 것도 아마도 그런 뜻일 것이다. 서로 존중해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공통분모가 행복한 조직을 만든다면, 그 배려가 깨져서 불행해지는 것은 매우 쉽고 그 이유 또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서로 다르더라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다 함께 행복해지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가 충분하다면.

이전 06화 그저 곁에 있어줄 수 있을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